노을 비낀 숲에서

비유에 관한 객설 2: 존재의 피부- 비유의 숲을 거닐며

해선녀 2004. 3. 7. 10:37

내가 그 오래 된 극장을 다시 찾았을 때, 무대에는 고운 장막이  내려져 있었고 석은 텅 비어 있었다. 사람들이 덕지덕지 포스터 자국이 붙은 벽에 이제 막 ‘개판’ 공연 포스터를 떼어내고 긁어내면서, 새로운 포스터를 붙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서니 햇빛이 가득한 거리를 그 곳에 그 작은 극장이 있다는 것조차 모를 것 같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세상은 정말이지, 개판이야' 라고 하는 말을 하였다. 나는,  그 '개판' 속으로 걸어들어 갔다.

 
그래, 저 계단만 내려서면 그 '개판'으로부터 완전히 빠져 나올 있는, 목욕탕에서 때를 벗기듯, 그 관념의 때를 홀랑 다 벗어버릴 수 있는 그런 위대한 관객이 있을까? 그런 위대한 배우가 있을까 

 관념의 안경이 없이는 우리는 세상을 볼 수가 없다. 아니, 그
안경은 벗을래야 벗을 수가 없다. '개판'이라고, 따옴표를 붙이는 건 그 '개판'이라는 관념은 모두 제 눈의 안경에 비친 개판이라는 뜻이다. 다른 사람은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게 볼 수도 있는 똑 같은 세상을 내가 다시 본 과로는  개판이더라는 것이다. 국 그 '개판'은 언제나 다른 이들이 안경을 끼고 본 세상을 내가 다시 안경을 끼고 보는, 말하자면, 옥상옥이다.
 
그러나 우리는 끊임없이 한 극장에서 다른 극장으들고나면서 내 안경을 다른 안경과 비교해 본다. 나는  끊임없이, 내가 본 세상에서 내가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인생의 배우인 동시에, 또한 마찬로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세상을 내다시 보는 관객이기 하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내가 배우인지, 관객인지를 구별할 수가 없다. 굳이 구별한다면, 그것은  상대적이고 임의적인 역할규 정일 뿐, 영원한 배우도 영원한 관객도 없다.  
 
배우는 세상을 항상 비유법으로 말한다. 종국적으로는, 우리의 언어는 모두, 은유 법이다. 아무리 무대가 아닌 곳에서 직설적으로 말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으로 어떤 '현실'도 다 완벽하게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를 가리키면서 ‘이것이 개다’ 라고 말한 들, 그것은 개의 한 예일 뿐이지, 그것이 개의 모든 것이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개라고 부르는 것 중의 하나 다.'라고 한다고 해도, 여전히, 그 개'라는 '현'은 다 드러내어지지 않는다. . 더구나, '다'도 아니고, '개판'이라니, 어것이 개판이란 말인가. 
  
존재는 은유로서 또 다른 은유를 이해하 고, 은유로서 또 다른 은유를 낳으면서 변 화해 간다.  비단 언어만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행위 일체가 다 그렇게 우리를 변 화시킨다. 행위는 우리의 생각에 동반하 는 또 다른 비유법, 존재의 껍질이다.   따 라서 리는 끊임없이,  ‘그가 내게 행 동은 일까? 그에 대한 내 언행은  옳았는가?‘ 그 비법을 해독하고 정하며 존재를 확인하고 변화해 나간다 
 
엄격한 의미에서 '개판'의 따옴표를 완전 히 떼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개판’이 또 다른 ‘개판’을 낳 다. '개판'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는 단지, 그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개판만을 본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어떤 ‘개’인지, 우리는  다시 배우 아닌 관객이 되어 또 다어, 은유의 숲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관념의 때이든, 관념의 안경이든, 또는 존 재의 집이든, 그것을 극장 벽의 포스터를 떼어내듯 우리로부터 떼어낼 수 있다는 생각은 그러므로, 무모하다. 모든 언행은  때마다 그 안에 우리의 영혼담을 수  으되, 그것은 영혼과 따로 떼어내서 존도 없는, 우리 살아 있는 한,그 마다의 우리 존재의 피부와도 같은 것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존재의 피부를 통과해서 그 영혼을 더욱 깊숙히 들여다 보려는, 관념의 숲 산책이나 할 수 밖에. 그것은 우리 존재 자체가 그렇듯이, 평생 을 걸려없을 것이지만, 우리는 그 저, 아있는 안만이라도,  내내,  그 변화무쌍한 존재의 피부를 그 때마다 만보고, 더듬어 보고, 긁어 보기도 하면서그 영혼을 더 가까이 느끼고 만나려는 노력을 치지 않을 뿐이다.  
 
존재의 피부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있 는, 말하자면 가장 영혼적인, 진피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일까? 혹자는 그것을 유모라고 하였다지만, 나는 그런 경지일단 접어 두고,  내가 요즈음 끄적이면서  이르고자 하 詩語가 바로 그것이 닌가 각한다.
 
詩란 문자 그대로, 말로짓는 것, 말의 숲 속에서 절을 는 것니,  그 도량이 어느 만큼이겠는가. '개판'에서 그 깊은 속까지, 하고 많은 말들 중에서 나의 가장 깊은 곳을 찾아가는 산책길은 고도 먼 길일 것이다.나는 배우의 언어에서 어느 새, 관객의 언어로,  내 안에 있다가도 어느 새 내 밖으로,  의식의 흐름을 따라 말을 한다.  가 잠시 전에 떠나왔던 '개판'이라는 말조도, 진짜 '개판'이어서,  진짜 개 같다가도 어느 새 참신한 어가 되어 곳곳에서 에 출몰한다.  그 은 그러므로, 잡하고 로는 너무 우거더  갈 길이지 않아서, 내게는 아주 아주 깊고 매혹적인 여인의 눈과도 숲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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