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와칼라 스프링에서

해선녀 2004. 3. 4. 17:40

 

 

 

 

 

 삼천만 년에 걸쳐 형성되었다는, 그러나, 아직도 그 시원을 알 수

없다는 그립고 그립던 플로리다의 와칼라 스크링으로 갔습니다.  

젊은 시절, 비키니차림으로 물가를 찰방거리다가  커다란 고무

보트를 스프링 깊숙이 저어 들어가서 띄워 놓고 그 안에 드러누워

떠도는 구름을 바라보던 곳, 그 맑고 깊은 물 속 푸른 수초들 사이로

 자맥질하면서 수영을 하던 곳, 강물을 따라 유람선을 타고 흘러

가다가 숲으로 나와서 눈부신 하얀 집의 인적 없는 아치 문들을

바라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던 곳

 

깊은 밀림으로 강을 따라 흘러 들어가면.  따 햇살 아래 게으른

악어들이  나무 등걸 위에 줄줄이 와 누워 있고 애닝고 새들이

 뱀처럼 길게 물속을 날다가  배쓰 한 마리씩을 입에 물고 나와 알아

듣지 못할 온갖 리로 물과 숲을 흔들던 곳,  그 신비의 원시림

 

스프링에서 흘러 나온 강물에는  페티코트를 받쳐입은 귀부인들

같은 싸이프러스 나무들이 여전히 아랫도리를 수면 위에 띄우고 

스페니쉬 모쓰를 쇼올처럼 가지마다 너울거리면서 아직까지도

그 때의 무도회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모터를 끄자,  아, 요란한 유람선 소리에 꽈악, 꽈아악  마주

소리치던 그 새들이 그림처럼 조용해졌습니다. 칠흑같은 정적이

흘렀습니다. 깊은 삼천만 년의 정적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불현듯, 저 백두산 천지 못에서 물살을 가르는 괴물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늘을 가리던 적송 사이로 부는 유황냄새 가득

 찬 바람 내음도 맡았습니다. 망막에서 아련히 영점으로

사라져 간 악어의 시야로  백두산 그 너른 천지가 떠올랐습니다

 

아, 저 애닝고 새들은 시원과 시원 사이를 날아 왔던 게야. 

그 천지못에서 흘러내리던 장백 폭포수가 그리워서, 

싸이프러스의 펼친 치마폭 아래에서 그 소리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인 게야. 그런 게 틀림없어  쏴아 쏴아 쏴아,

장엄하게 내려 꽂히던  그 폭포의 소리를 붉고 푸른 옷을

입은 온갖 피부의 사람들이 그 정적 속의 새들과 다 함께 듣고

있었습니다.

 

스프링의 멀고 먼 전설 속을 나는 어느 새 아메바가 되어 헤엄쳐

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나무뿌리 밑을 흘러서 내 지느러미를

스치는 물소리는 엄마의 자궁 속처럼 얼마나 신비롭던지요

 

아, 천지의 밑바닥이,금빛 태양이 물결치는 동해를 거쳐 여기

플로리다의 깊은 스프링을 뚫고 올라와솟아 나고 있는 것이구나. 

그렇지, 시원과 시원은 연결되어 있었던 것을. 저 속으로 계속

거슬러 가면 바이칼 호수까지 가닿을 수 있을 지도 모르지 수면

위로 떠오른 춤추는 싸이프러스들,그 치맛자락 밑에서 내가

헤엄치고 있었던 것은 겨우 내 젊은 시절도 아닌, 삼천만 년

중의 먼 어느 날이었을 지도 몰라.... 

 

잠시, 상념에 잠겼던 사이에  정적 속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움직이지 시작하고 유람선에서 내린 나는 알록 달록 예쁜

물고기들이 되어 버린 디지털 카메라를 든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또 한 마리의 낯선 물고기가 되어 그 삼천만중의

알 수 없는  어느 바위 빈틈을 빠져 나와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있는  알지 못할 곳으로 헤엄쳐 갔습니다. 이제

어느 바위 틈으로 헤엄쳐 들어가서 어느 시원으로 나가게

되는 걸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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