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결국, 변덕이 아니라, 가장 진실된 마음으로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 눈을 뜨는 것이다. 모름지기, 사람은 그래야 할 것이다. 전에는 나 자신에게나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우들에게나, 실명으로 진행되어 가는 눈의 상태에 대햐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자’는 결론적인 말을 하는 데만 너무 급급했다. '언젠가, 곧, 좋은 치료 방법이 나올 것이다, 그러므로, 숨도 안쉬고 그 다음은 '우리는 결코 절망하지 말고, 언제나 희망을 가지고 밝고 명랑한 삶을 유지해야 한다'로 몰아쳐 들어가기 바빴던 것이다. 그것은 물론,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태도 때문이었다. 나는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지 않는, 나답지 않다고 생각되는 상황에 처해서도, 나는 그런 상황 속에 있는 나 자신을 가장 이상적인 나의 모습으로 풀어가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 그것이 아무리 허접한 일인 것 같아 보였어도,.그것이 나에게 주어지고 내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인 한, 나는 무엇이든지 했다. 그것은 불편하고 힘든 일이지만 반드시 처리되어야 하고 꼭 처리해낼 수 있는 과제들일 뿐이었다. 나는 당연히, 어둡고 힘든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내 자신의 신음소리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내가 감당해낼 수 없는 주위의 요구들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다 들어주려고만 하였다. 나는 너무오지랍 넓게. 일 욕심이 많았다. 만능인간이기나 한 것처럼. 그러나, 요즘은 정말, 몸과 마음이 많이 아프다. 거리를 걸어가다가도 자칫, 발목을 삐고 무릎을 깨기도 한다 집에서도 시야가 좁은 왼쪽 눈두덩을 부딪쳐서 멍이 드는 일이 많다. 나처럼 시력이 어중간한 환자들일수록,그렇게, 거의 언제나 몸의 어딘가에 멍이 들어있다. 그래서 더 외롭고 힘이 들어 좌절과 소외를 느낀다 나 자신도 이제 그런 실정으로 들어가 있으면서도, 나는 아직,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런 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말, 눈이 영 보이지 않게 된다면, 그 때도, 나는 그래도 기를 쓰고 산에 올라갈 것인가? . 나중에, 정말로 산에 오르고 싶다는 순수한 욕망이 새로이 생긴다면 몰라도 지금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식구들의 수발을 지금처럼 혼자서 다 들어 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바람직하기나 한 것인가? 어차피,너무 무리한 일까지, 눈이 좋은 사람 못지 않게 끝까지 해냈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도 아니고,그렇다고 부당한 편견과 소외감을 당연시하고 싶지도 않지 않은가. 적어도, 지금의 나로서는, 더 이상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아직은 내가 해낼 수도 있지만 좀 힘이 들 것 같은, 월악산 등반에서 나는 빠지겠다고 전화를 하였다. ‘경계선에 서 있는 존재’임을 굳이 감추고 무리해서 온갖 곳에 무작정 다 따라 나서려는 나 자신을 이젠 더 이상 방치하지 않기로 했다. ‘눈 때문에 바깥출입도 잘 못한다더라’는 말을 조금 미리부터 듣게 되는 것이 무에 그리 억울할까. 나는 나에 대해서 누가 무슨 말을 하는가에 너무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신경써서, 아들아이에게 쓰레기 봉지를 좀 들고 내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밥상을 차리면서, ' 신경써서' 밥은 네가 좀 퍼담으라고 부탁했다. 내 족쇄들을 하나씩 들여다 본다. 나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채웠던 족쇄들이 너무 많다. 어제는, 너무도 자유롭고 당당해 보이던 사람의 차를 타고 사당동 고가를 넘어 집으로 오면서, 내 마음 상태 때문이었던가, 놀랍게도, 그녀의 마음 밑바닥에도 나보다도 훨씬 더 많은 불안과 우울이 쌓여 있다는 걸 알았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집안일도 많은 부분을 할당 시키면서 그렇게 ‘자유롭게’ 이 곳 저 곳을 마음 내키는대로 쫒아다니는 것 같던 그녀도, 너무 많은, 스스로 찬 족쇄들 때문에 그렇게 끌려다니는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적어도 본인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한, 그것으로 그녀도 나처럼, 스스로 불안을 가중시키고 우울을 자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로 인해,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혼자서 떠맡고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내가 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그를 진정으로 위하고 나를 전정으로 위하는 일인가를 지금 부터라도 더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그러나, 그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무엇보다도 진실로 그것이 나와 그 사람에게 부당한 족쇄를 채우는일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일이 너무도 어렵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열쇠를 모르고 있을 경우가 많다. 내가 뻔히, 이것이 아닌데 싶은 길을 타의에 의해서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나는 그것을 누구에게 자문을 받아야 할까? 나도 곧, 기도의 대상이 필요한 것이겠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 부터 일단, 나 자신을 돌보는 노력을 해나가기로 한다 나는 참으로 이것을 원하는가. 내가 그것을 진정으로 잘 할 수 있는가, 나는 우선, 내 자신의 한계를 인정 하고, 좀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나 자신의 시간표를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너무 철이 들지 못했다. 자유는 먼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두통 약을 먹고,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신다. 언니가 오겠다고 전화를 했다. 저번에 올라갔던 뒷산, 관악산 산책로에 이젠 꽃이 피기 시작했는가고, . 그래 함께 오르리라. 그 청순하던 길을 천천히, 갈 수 있는 곳 만큼만 오르며, 그 길에 나무들이 이제는 얼마나 비웠던 가지를 채우려 움을 틔우고 있는지 살피리라. 끝도 없이 마음을 비웠다가는 다시 채우는 그 길과 나무들에게 물어 보리라. 너희들은 어떻게 자유롭느냐고. 한 자리에 꼼짝 안하고 있는 그 한계를 딛고 서 있면서도 어떻게 자유로울 수가 있느냐고...
생각이란 차면 넘치고, 넘치고 나면 또 채워지는 것,내적 충동과 외적 자극에 의한
일시적 반응이 아닌,강제와 억압에 의한 어쩔 수 없는 행동도 아닌,진정으로 자신의
내면에서 원하는 바 그 생각에 따르는 일, 자유롭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요즈음, 때로는 그야말로,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그런 마음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미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모순에 빠질 위험을 경계도 하지만, 그러나,그럴수록,
변해 가는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태에 정직하게 귀를 기울이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하는 생각을 점점 더 많이 하게 되었다. 특히,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병으로 인한
中途失明의 위험에 처하게 되면서부터, 나는 정안인의 삶에서 실명인의 삶으로
가고 있다는 그 길 위에서 언제나 변해 가고 있는 나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조건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