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호숫가에서

해선녀 2005. 7. 17. 10:59

 

 

 

1. 호숫가의 저물녘

 

 

물 위를 날고 있는

새 한 마리처럼 자유롭게

물속에 잠긴 산그림자처럼 고요하게

호숫가 정경 속에 서 있었네. 

한숨소리인가, 플루트 소리인가

새 한 마리 산너머로 날아 가고

방풍림을 빠져 나온 느린 물살이 

산그림자조차 지우며 뒤따라 갔네.

자욱히 피어 오르는 물안개에

세상이 모두 고개숙이는 여름날 저물녘

그리하여 우리는 이렇게 존재하노니

예쁜 이름 하나씩 목에 걸고 

호반의 펜션들이 하나 둘 불을 밝혔네.

 

 

 

 

2. 호숫가의 밤

 

 

왕왕 짖던 개도 잠들고

휘파람을 불던 새도 잠들고

호숫가 펜션의 밤은 깊어만 갔네.

너는 누구지? 나는 나야.

그런데, 내가 누구더라?

친구여, 눈을 감고 생각해 보니

사방으로 뻗어간 나뭇가지들처럼

우리들 마음은 그저 오래된 습관뿐이네.

성격이 팔자이고 팔자가 성격이라면

운명이라는 이름도 참 우스운 거야.

기고 날고 걷는 습관이 모두 달라도

우리가 가는 길이 무에 그리 다르리.

 

 

.

'노을 비낀 숲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존재의 변주곡  (0) 2005.07.23
막내에게  (0) 2005.07.20
그것이 진정 사랑이라면  (0) 2005.07.10
운명이라는 게 있다면  (0) 2005.07.04
비오는 아침의 수다  (0) 2005.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