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어떤 초보자의 가을 노래

해선녀 2013. 10. 6. 19:25

 

 

시월이 되어도 

정쟁이 그칠 줄 모르는 티비를 꺼버리고

바이얼린 통을 들고 서면

나도 순하고 여린 구절초가 피어 있는 마당 한 쪽에서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는 나무 한 그루가 된다.

저 새는 힘을 쓰는 것보다 힘을 빼야  

더 잘 날 수 있다는 걸 언제 알았을까?  

 

나는 아직도, 저 정치꾼들 못잖게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깽깽깽, 삑삑삑,

활을 눌러대며 소리를 구걸하고 있는데 말이다. 

내 마른 가슴에서 뻗어 나온 힘줄들의 끝,

내 손가락들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엷어진 가을햇살에 그잖아도 바스라져 가는 잎맥들을 

굳은살이 베기도록 누르며 다그치고 있다.    

 

아, 이 고질병. 나도 힘만 뺄 줄 알면, 

이슬이 내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고,

그 이슬방울들이 내 가슴을 적시며 오르내리는 물관을 타고

흙속 내 뿌리들이 내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을.  

그리하여, 언젠가, 내가 부르지 않아도

새들이 내 어깨 위에 무시로 날아와 앉아 노래하고

내 노래도 행복해 하며 들어 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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