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 한 마리
일없이 앉아 있곤 하는 곳,
떠돌던 구름 한 두 조각이 머뭇거리며
내게 말을 건네려다가 흩어져 가면,
노을빛으로 물든 하늘 속으로
참새도 헤엄질쳐 가버리는 곳.
예, 거기랍니다.
골목안 저 멀때같은 전봇대 꼭대기
젊은 날, 전화를 걸고 싶을 때마다
그의 이름만 솜사탕처럼 거기에 걸어 놓던 그 곳.
찻잔을 들고 창가로 다가가니
하늘은 더 낮아져 어둠 속을 흐르고
숲쪽에서는 어린 새들이 잠이 들었는지
잠자리를 다투는 소리도 그쳤어요.
얘들아, 나는 오늘도 그 친구를 만나지 못하였단다.
어미새가 새끼들을 다독거려 놓고
다시 전봇대 위로 돌아올 수도 있을까요?
초가을 저녁 공기가 싸늘하여 창문을 닫으려는데,
아직도 그 새를 기다리고 있던 전봇대만
혼자서 가로등 불을 밝히고 섰는데,
위안처럼 저녁안개가 사방에서 모여 들고 있네요.
골목입구에 나타난 누군가가 지나가다가
내 창문쪽을 올려다 보네요.
지나가세요. 골목을 벗어 나시고 나면 창문을 닫을게요.
내 창문은 거친 소리를 내며 닫히거든요.
당신도 혹시, 오늘,
기다리던 사람을 만나지 못하였는지, 발걸음이 더디군요.
육신의 눈이 어두워지면
영혼의 눈이 밝아진다.
나도 그런 말에라도 기대고 싶어 했지요.
무슨 예언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지만, 이젠 알지요.
그건 모두, 막연한 희망이고 위로였을 뿐이라는 것을.
못보고 못만나니, 거기에 갇힐 일이 없다구요?
제 안에 갇히는 착각과 환상은 위대할까요?
그저, 순하게,
내게 닥쳐 오는 모든 저녁들을
저 안개처럼 얼싸안을래요.
내게 보이는맠큼만 보고
어둠 속에서 더 빛나는 저 가로등처럼은 아니어도
내 안에 작은 등촉 하나 밝혀 놓고 기다릴래요.
아무도 오지 않아도 죽는 그 순간까지
삶의 모든 순간들이 보석처럼 귀하고 감사한
그런 날들이 그치지 않기를 기도할래요.
2013년 추석에, 양평집에서
모든 것은 지나가리니...: http://blog.daum.net/ihskang/13733546
저녁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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