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오네 집

Here Comes the Sun

해선녀 2013. 3. 20. 07:21

***********태오에비 페북에서**********

 

여기 사우스 다코다 버밀리언의 화창한 일요일, 나는 집밖으로 나가서 좀 걷다가, 갑자기, 내가 달려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 시작했다. 아, 그런데,나는 겨우, 80세 노인만큼의 느린 속도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똑바로, 혹은 빨리, 달리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나는 달렸다. 

 

한 동료 지휘자가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자기는 지금 무슨 악보를 공부하고, 다음 컨써트는 무엇이고...그러면서 물었다. 너의 다음 과제는 무어냐고?  수영...나는 대답했다.   나는 뇌졸증 후 많은 것을 잃었다. 달리기, 수영, 자전거타기, 골프, 노래하기, 서있기 (나는 지휘할 때 앉아서 해야 한다.)

 

그런데, 한 가지, 내가 결코 잃지 않은 것이 있다. 희망이다.

 

나는 다시 달리고 싶다. 

나는 다시 노래하고 싶다.

나는 다시 바이얼린을 키고 싶다.

나는 다시 서서 지휘하고 싶다.



). 나는 이런 것들이 다 실제로 이루어질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무엇을 바라고 있을 때, 그것이 이루어지고 안지고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 것도 진실로 달라진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It was a beautiful sunny day here in Vermillion, South Dakota. I went outside for a walk. Suddenly I felt like it would be alright if I started running. So I started running. only as fast as a 80 year old grandpa...It was impossible to run ...straight or fast but I was running.

One of my fellow conductors was telling me about what scores he was learning and what concerts he had coming up...and asked me "so what's your next project?" I said..."swimming".

I lost so many things after the stroke, running, swimming, biking, golfing, singing, standing (I have to sit when I conduct).

There is one thing I've never lost, however, and it is hope.
I hope to run again.
I hope to sing again.
I hope to play the violin again.
I hope to stand up and conduct again.

I don't know if any of this will come true.
But usually when you hope for something...you don't really know if it's going to happen or not anyway. So I am thinking nothing really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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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18일 월요일 저녁, 서울로부터 두번째 원격지원을 받았더니, 이제 컴이 쓸 만해졌네요. 영 낯설던 자판의 글짜 위치도 이제 좀 익숙해졋고...

 

내가 여기  온 지도 일주일이 넘고 있네요. 전엔, 겨울에 와있다가 초봄에 가곤 했는데,  이번엔 봄을 여기서 보낼 것입니다. 한국엔 꽃샘추위라더니, 여기도 며칠, 봄볕이 아주 따뜻하다가, 주말엔 다시 추워졌다가, 어제는 바람이 불어 현관문 밖에 설치해 놓은 가리개가 종일 투덕거리는 소리를 내어서 처음으로 혼자 있게 된 시간이 좀 어수선했습니다. 자꾸, 누가 온 것인가, 내다 보게 되고...이제 곧 다시 여기 생활에 익숙해지겠지요. 문밖을 내다 보아서 윗집 사람의 빨간 토요타 차가 보이지 않으면, 악기도 좀 만져 볼 요량인데, 저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인가, 낮에도, 차가 집에 있네요. 

 

지난해 왔을 때, 저 사람이 있으면, 마음놓고 플륫을 불 수가 없었어요. 여긴 하도 땅이 널으니, 아파트라는 것이 높아 봐야, 단 2층, 내 방의 환기구를 통해 윗층의 발자국 소리도 너무 가깝게 들리는데, 내 삑삑거리는 악기 소리는 또 오죽하겠어요. 한 건물의 옆집들은 사이마다 차고가 있어서 좀 낫지요. 이번엔, 아이들도 에프터 스쿨을 좋아해서, 다섯 시가 지나야 귀가하니, 연습할 시간이 더 있을까 싶고, 태오와 준오는 아직 작은 싸이즈들을 쓰고는 있지만, 좀더 자라면 쓰게, 아이들이 막 쓰다가 부셔뜨려도 크게 아깝지 않을 싸구려 바이얼린도 하나 들고 왔는데...ㅎ

 

뭐, 되는대로  해야지요...금요일 저녁엔 여기 한국인 교회 목사님 부부와 한국인 가족들을 초대해서 성경공부 시간을 가졌습니다. 에비의 환송과 내 환영까지, 에미가 다 겸해서 그리 정했던가 싶었습니다. 에미는 잘 하는 돼지갈비 오븐구이와 녹두빈대떡을, 나는 가져 온 말린 취나물과 고사리로 나물을 만들었습니다. 사모님은 잡채도 만들어 오고, 내가 가져 온 두텁떡과 모찌에, 승하네가 구워 온 과일케잌까지, 저녁상은 푸짐했습니다. 늘 온화하고, 열정적이기보다 지적이어서 좋은 목사님이, 성경의 어느 구절이었던지도 잊었지만, 예수는 베드로가 앞으로 예수를 부인하게 될 것을 아시면서도 변함없는 사랑을 주셨다는 이야기를 읽어 주셨습니다. 스승이나, 부모는 물론이겠지만, 누구에게라도, 우리는 그래야겠지요...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 본다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그를 대하는 일이 아프고 힘들더라도, 그 사랑을 거둔다면, 그것은 결국, 자신에 대한 사랑을 거두는 것이겠지요. 그잖아도 늘같이 착하고 선한 사람들이 모두, 다시 다짐하는 시간들이 되엇\엇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기도제목을 말하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에, 에비는 뜻밖에도, 내 눈에 대해 말하면서 기도를 부탁하더군요. 마음으로 모두 모두 감사했습니다.   

 

수 시티의 한인교회는 2년 전, 오목사님과 신도들 사이에 재정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신도들이 떠나는 바람에, 오목사는 LA 쪽으로 떠나갔고, 여기, 버밀리언의 교수나 학생들은 이제, 싸우스 다코다에서 제일 큰 도시라지만, 한국인 신자들이 겨우 삼십 명쯤이나 모일까 말까하는 이 교회로 다니게 되었지요. 하지만, 에미는 일요일마다 멀리, 아이오와나 네브라스카에서 오는 학생들의 렛슨 때문에 요즘은 교회를 거의 빠지게 된다네요. 참한 색시깜이던 황교수도 지난해 서울로 떠났고, 성우네도 이번 여름학기 끝나면 어디론가 다른 주로 떠날 것이고, 교수는 이제 달랑, 두 가족, 우리 태오네와 승하네만 남는답니다. 승하네도 큰 도시의 학회에 다녀 올 때마다, 어서 한국인이 더 많은 큰도시로 옮기고 싶어진다네요. 다들, 몇 년 살다 보니, 거의 대학촌이기만 해서 즐길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이 작은 도시가 너무 답답해진 것 같습니다.

 

에비는 내년 봄학기에야 코스웤이 끝나고, 그러고 나서도, 논문도 서야 하니, 새 job을 얻어 다른 곳으로 가기까지, 적어도 2년은 더 여기서 살 것이랍니다. 나는 그러니, 이번에는 집을 사지는 않더라도, 세라도 얻어서,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에서 사는 게 어떠냐고 하고, 에미는 에비가 job을 얻으면 무조건, 함께 떠날 터인데, 그 사이에 관리도 어려운 하우스를 또 살 이유는 없다고 하고...똑 같은 상황이 똑같지 않은 판단의 이유가 되네요. ㅎ 내가 당장, 서울생활 다 그만 두고 여기로 와서 내내 함께 살면서 집을 돌보겠다고 하지 못하면서, 무슨 이야기가 되겠는지요...쥐뿔나게 하는 일도 없으면서, 아직은 서울을, 그것도, 봉천동을 떠나지 못하는 이 생의 습관을 확 던져 버리지 못하겠습니다. 내 눈만 성하다면, 한 일년만 그렇게 살다가, 에비가 코스웤 끝내고 돌아온 후에 나는 다시 돌아 가도 되련만, 그 땐 분명, 내 눈이 영 더 안보일텐데, 아이들 마음 아프게 하면서까지 굳이 돌아가겠는가, 그게 또 그렇지요...

 

그래도, 엄마, 나, 직장 다시 잡으면, 그 땐 꼭 단독주택에서 함께 살아요. 말하는 아들이 고맙습니다. 뭐, 같은 집에서는 아니더라도, 가까이는 살아도 되겠지요. 그 땐, 아이들도 다 컸을 것이어서 내 이 미약한 도움이나마 별로 필요치도 않을 것 같고, 내가 지들에게 짐될 일만 있을 터인데...무엇보다도, 이번엔 일반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말고, 따뜻하고 한국인도 많은 곳 어디, 웬만한 학교에 가서 안정되게 살겠다고 하는 말에 제일 안심이 됩니다. 에미도, 전에는 내가 학교쪽으로 job을 얻는 게 좋지 않느냐고 하면, 가르치는 일보다는 연주하는 게 더 좋다고 하더니,학교에 있어 보니, 역시, 여기 저기 너무 자주는 아니게 연주도 할 수 있으니, 언제 또 다른 데로 옮겨야 할지 모르는 오케스트라보다는 학교가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어서 더 좋다는 생각들을 하게 된 모양입니다. 에미도, 언제든, 에비가 가는 곳으로 따라갈 생각이어서 그렇지, 그 동안 참하고 예쁘게 잘 해왔겠다, 조금만 더 있으면 6년을 채우게 되어서, 이 학교에서 종신 테뉴어를 받을 수 있거든요. 우리나라처럼 정년이라는 것도 없어서 지금 에비와 함께 살고 있는 첼로교수도, 이제 파트 타이머로나 가르치겠다고는 하지만, 나이가 76세라네요... .에미가 마지막으로 재어 본 에비의 배둘레는 지난해 내가 왔을 때보다 2인치 줄어서 40인치였습니다. 38인치만 되면 얼마나 좋겠노ㅎ 어쨌거나, 건강만 하거라...내가 바라는 건 오직 그것뿐이다..

 

Life is fine as long as there is ice cream.
Even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I will still have this picture to look 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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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안경들 하며...갈수록 3부자가 닮아 갑니다. 태오까지 얼굴이 저렇게 빵빵해졌군요..ㅎ .토요일엔 수 시티로 가서 점심을 먹고 여기 저기 몰을 돌아 다녔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앞서 가는 에비의 발걸음이 한결 빨라졌습니다. 에미는 내게 화장품을 사주고, 나는 준오에게 롤러 스케이트를 사주겠다고 했는데, 에미가 준오는 태오 것을 물려 받아 쓰면 된다고 해서, 태오에게 스케이트 보드를 사주었습니다. 플로리다 시절, 에비가 딱 저만 했던 나이에, 스케이트 보드를 멋지게 타고 놀던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저도 그렇게 잘 탈 수 있을 거라며, 에비가 떠나는 일요일 아침에도 열심히 아빠에게 배우기도 하였습니다. 오월에 오면, 더 많이 가르쳐 줄게...

     

      

  • How to cook - 3

    1. Go to Maestro Jerry's place
    2. Watch him do his thing.
    3. That is all.
                                                                                                                                                                                                                                                  
    사진: How to cook - 3

1. Go to Maestro Jerry's place
2. Watch him do his thing.
3. That is all.
  • 저 친구는 요리를 아주 잘 하나 봅니다. 그의 집에 가서 보기만 하고, 닭고기와 야채를 한꺼번에 텀벙 집어 넣고 볶아 본 것이 전부였다는 에비가 요리를 해보겠다고 해서 여러가지 야채를 넣은 닭요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제, 그거 하나는 제대로 할 것 같습니다. 학교 기숙사 식당에서 주로 먹지만, 어중간할 때도 많을 것이므로...아니, 응용하면 뭐라도 할 수 있겠지요.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이제껏 요리를 가르치지도 해보려 하지도 않았던 거였지만, 이제 저도 해야겠지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