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바람 찬 바람에
태오네서 돌아온 지 오늘로 닷새, 아직도 나는 태오와 준오가 눈에 밟힌다. 아마, 내내 그럴 것 같다. 이런 노래라도 부르며 손주 녀석들과 더 오래 눈을 맞추고 손을 맞추며 놀지도 못하엿구나...아침이라는 말, 바람이라는 말의 뜻이라도 가르쳐 주어 가며 눈을 맞추며 손을 맞추며 놀다 왔으면 좋앗을 것을...생각하면 아쉬움뿐이니 더 그럴 것이다.
그래도, 일본 대지진 때문에 빟애기 스케쥴이 바뀌는 바람에, 아이들과 함께 오마하의 동물원에서 하루를 더 보낼 수 있어서 좋앗다.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기고 샤핑하고 외식하는 것으로 마지막 저녁을 보낸 후 이튿날 새벽에 나만 떠날 예정이엇던 것인데, 공항까지 가서 되돌아 오는 바람에 그리 된 것이다. 대지진의 소식은 봄바람 속에 흘려 보내면서 사람들은 평화롭게 긴긴 겨울을 지낸 끝에 찾아온 봄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기다림의 나날이 언제는 아니엇던가마는, 요즘은 유난히, 큰넘, 작은넘, 모두 나를 기다리게 한다. 큰넘은 6월 학기 개강을 앞두고 건강이 엔간해지기를 기다리게 하고 작은넘은 9월 학기 새로 입학할 학교가 정해지기를 기다리게 한다. 큰넘의 아이들은 이제 더욱 식언이 들기를 기다리게 하고, 작은넘의 아이는 어서 건강하게 태어나서 잘 크기를 기다리게 한다. 나는 그들의 모든 기다림들 뒤에 줄을 서서 또한 기다리는 행복을 누리고 잇다. 이럴 때, 신앙인들은 그 기다림을 기도의 행위에 담아 온몸몸과 마음으을 집중하련만, 나는 그저, 이 넘들에게 짠하니 마음의 줄만 캥겨 잇을 뿐이다. 기다림이 힘겹기도 하지만, 그것이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나태하고 싱거울까 생각하면, 에네들의 기다림은 그 자체로 내게 효도가 되고 있다.
어제는 큰넘의 한약을 지어 받아서 우체국에서 eMs로 부쳤다. 중풍에 좋다는 약이다. 내가 떠나 오기 바로 전에, 튼넘이 LA에서 잠시 다니러 오셧다는 한의사에게 두어 번 침을 맞앗는데, 침은 더 이상 못맞더라도 한약은 꼭 먹으라고 했다고 한다. 같이 귀국해서 제대로 침도 맞고 한약도 먹고 그랫으면 좋겟는데, 여름학기 개강 때가지 남은 날들을 가족들과 보내기를 더 원한다. 지금쯤 어디까지 갓을까, 혹시, 액체라, 어디서 걸리지 않을까, 주말이 끼었으니, 화요일에나 가 닿을라나...그 짧은 기다림에도 마음이 그 한약과 함께 또 떠나고 잇다....
호텔까지 들고 가서 밤늦도록 마무리해 보려고 애쓰던 태오의 털모자는 결국 그냥 짐가방에 넣고 왓다. 에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털실로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목도리라도 하나 만들까 하고 시작햇지만, 코를 몇 개로 하는 게 적당할지도 모르겟으면서 막연히 떠나가다 보니 너무 넓은 듯하여 그 폭대로 어깨를 덮고 목부분에서는 줄엿다가 다시 넓게 만들어 머리 부분으로이어 올라 가다가 머리 꼭대기에서 마무리를 하는 형식으로, 떠가면서 게속 변형을 해나가다 보니, 결국, 모자에 목도리가 달린 모양이 되엇는데, 내가 봐도 영 어설프기 짝이 없는 나 자신의 모습 그대로다.
하도 떴다 풀었다를 반복해서 실도 다 낡고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하다. 가기 전에 다쳤던 팔은 아직도 대바늘 끝에 손가락의 미세한 힘을 모으는 일이 잘 안되엇고 두 개뿐인 대바늘은 그나마 탱탱한 철사로 연결되어 있어서 자꾸만 코가 늘어지고 빠졋고, 막판에 겨우 사 온 마무리 코바늘은 너무 가늘어서 내 눈으로는 빠진 코들을 제대로 건져 올리기가 어려웠다. 언제 실과 바늘을 더 사서 다시 만들 수 잇을까/ 이젠 내 눈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어도 손끝으로 더듬으면서 코를 빠트리지도 않고, 빠트린 코도 제대로 끌어 올릴 수가 있을까? 이게 내 어두어진 눈 대신 손끝으로 더듬으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는 좋은 연습이 될 수도 있겠다.
사실, 코를 빠트리는 건, 눈탓만은 아니다. 살아 오면서 내내, 사람들과의 관게가 그래 왓다. 말과 생각과 행동들 사이에 빠진 코들을 뻔히 보면서도 걸어 올리지 못하고 만다. 누구는 연민과 공감이 없는 관게 탓이라고도 하지만, 적어도, 서로의 말의코를 빠트리지는 않으면 좋겟는데, 늘 내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상대방이 제대로 알아 듣지 않는 듯한 관계 속에서 산다. 여기서 막내들하고도 좀 그랫지만, 너무 오래 다른 문화로 살아서인가, 태오네하고도 자주 그랫다. 그들도 그랬을까? 내가 하는 말귀를 잘 못알아 듣는 것이다. 세대차이라고만 할 수 없는, 말에 대한 감각이 서로 너무 다르다. 내 존재는 나와는 너무 다른 일의적인 말의 의미들 사이를 부유할 분이다..연민과 공감의 부족 이전에, 서로 다른 상상력 때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내 말뜻이 엉둥한 코를 꿰고 풀어지고를 반복하는 사이에 내 존재가 자구만 수척해져만 가는 것이다. 언제 다시 판을 짤 수 잇는 날이 올까? 헤어져 잇으면 점점 더할 것이라는 에감은 들지만, 그렇다고, 적어도 지금은, 아이들 말대로 당장 여기를 걷어 치우고 가서 함께 살 자신도 없고, 가까이서 살면서 부담을 주고 싶지도 않다.
막내는 요즘 데라웨어 대학의 입학허가를 기다리고 잇다. 미국의 경제사정이 아직 회복되지 못해서인지, 충분한 장학금과 생활비를 주겟다는 학교가 줄어 든 듯...하와이대학에서만 좀 빠듯하지만 그럭저럭 살 수 잇을 듯한 오퍼를 받앗지만, 정작 더 원하는 전공은 델라웨어 쪽이다. 그런데, 지금은, 말 그대로, 대기번호 1번인데, 이미 오퍼 받은 학생들이 모두 수락할 것 같단다.. 그럼 첫학기는 그냥 등록금 다 내고 가서 공부하다가 천천히 장학금 받지, 뭐, 하니까, 그러느니, 그냥 하와이에서 공부하다가 나중에 다시 신청해 보든지 하겟단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더 기다리기 위해서 하와이에는 며칠 더 말미를 얻어 놓고 잇다. 꼭 그 학교가 아니더라도, 형제들이 좀더 가깝게 오갈 수 잇는 곳이면 좋겠고, 언젠가 어느 블로그에서 소개되엇던 그 학교가 산도 좋고 물도 좋은 자연 속에 있어서 아빠도 좋아할 것이라며 권했던 것인데, 알고 보니, 필라델피아나 볼티모어가 인인근에 잇고, 뉴욕과 워싱턴도 세 시간 거리란다....
그러고 보니, 작년 어느 날 꾸엇던 꿈이 또 생각난다. 어느 강가를 달리다가 강을 건너야 하는데, 그가 좀 얕은 곳을 골라서 물속으로 차를 몰기 시작햇고 차가 전진하면서 점점 물길이 깊어져서 차가 물밑에서 잠수함처럼 둥둥 뜨기 시작햇을 때, 그가 운전대를 버리고 차 앞에서 차를 끌어 당기고 막내가 운전대를 잡고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서 마침내 건너편 어느 큰바위 위에 올라섰던 꿈...그는 두 팔을 벌리고 자, 봐라, 해냇지, 하는 듯한 몸짓으로 서 잇엇고 우리는 강아지 팻지까지 그 바위 위로 기어 올라 갓엇다...물은 맑고 깊엇고, 여느 때처럼 조마조마, 이 사람이 왜 이런 길로 우리를 끌고 가는가, 불안하엿던 나도 그제야 안도하엿던 꿈....
그래, 어느 대학으로 가든지, 너는 용타. 공부 같은 건 안하겠다고, 대학은 엄마 아빠 원하니 다녀는 준다고, 대학입학하자 마자, 머리에 노랑물이나 들이고 다니던 아이가 지금 그렇게 애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기특하다. 행복은 얼마나 높은 가지에 오르느냐가 아니고, 자벌레가 지구의 축에 맞추어 움직이듯, 어떤 높이에서든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환경에 순응하며 그 움직임의 축을 지키고 잇으면 행복한 것이다. 자신이 노력하고 잇다는 신뢰감,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으리라...
그래서, 나도 또한 너희들 뒤에 서서 기다리는 것이다. 너희들의 하는 양을 바라 보며, 나 자신의 행위 축도 추스리는 것이다. .너무 가가이에서 보조를 맞추는 일은 어렵지만, 천천히 천천히 움직이면서 내가 할 수 잇는 일을 찾는 것이다. 그나마라도 할 수 잇는 나 자신에게 나는 고맙고, 더 느려져서 높은 가지가 어지러우면 더, 더 낮은 가지로 기어 내려가서 너희들의 기다림의 몸짓과 지구축과의 각도를 잘 맞추면서, 끊임없이 내 가지를 오르내릴 것이다.
오늘은 주말, 이제 충분히 쉬엇다 싶은데도, 점심을 먹자 마자 또 골아 떨어졋다. 깨고 나니, 벌써, 저녁, 태오네는 아직 일어날 시간이 아니겠구나. 푹푹 더 자고 일어나면 태오의 축구연습에 모두 따라 나서게 될까/ 거기 있을 땐 막내들이 움직이는 시간에 귀기울이고, 여기 잇으니 또 쟤네들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인다. 이제 나도 다음 주부터는 슬슬 이 기다림들 사이 사이로 불어 드는 봄바람도 좀 즐기리라. 아니, 나만의 기다림이 무엇이엇던지, 그것을 다시 찾는 일이 더 중요하겟지...당장은 저 누수문제로 얼룩진 아파트를 수리해서 매수자에게 제대로 넘기는 일이 나를 좀더 오래 붙들고 있겟지만, 복지관에서 공부하고 운동하고 주말에는 양평집에나 가서 길도 더 정비하고 꽃도 심을 생각만 해도 봄날 저녁의 행복이 조용히 나를 감싼다. |
강일선도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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