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시에미 변덕

해선녀 2011. 2. 19. 05:08

 

오늘도 태오는  뒷문을 겨우 비집고  빠져 나가서  이마에 불을 켜고 기다리고 서 있는 스쿨버스를 향해 눈밭을 달려 나갓다. 대엿새, 4, 5십도에 오르는 따스한 날씨인데도 워낙 많이 쌓여 잇던 눈이 뒷문이 잇는 그늘 쪽으로는 녹지 안아서  아직도 문이 다 열리지 않고, 길은 석거리고 미끄럽기까지 하다. 주차장 한 켠으로는 웬만한 동산만한 눈산이 솟아 있다. 눈을 치우는 차가 쌓아 놓은 저 속까지 다 녹으려면 3월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태오가 눈사람에게 입혀 놓앗던 모자와 목도리는 혹시 거기서 나올까?  나는 그 ㄷ땐 이미 한국으로 돌아가고 없을 것도 같다.

 

집에 올 때는 서두를 일이 없어서 느긋하게 앞문으로 오는데 ,어제는 돌아 올 시간에 또 나가 섯더니, 녀석이 나를 발견하고는 눈이 푹푹 쌓인 직선 길로  마구 달려 오다가 부츠가 눈속에 파묻히면서 넘어지는 바람에 장갑까지 눈속에 묻혀 버렷다. 얼른 다가가서 아이를 빼내어 끌어 안고 나오려니  꼭 곰인형 같이 눈 위에 엎어졌던 녀석이 속소무책으로 와서 안기는데, 겁도 나고 한편으로는 재미잇다는 눈빛이다. 긴 속눈썹에 크고 맑은 이 녀석의 눈빛은 언제나 나를 유혹한다. 이젠 이렇게  가까이서라야 겨우 보이는 너의 눈빛.....이것도 내가 ㅂ몰 수 잇는 마지막 날들이겠지...그래, 눈 위에 엎어지는 것도 재 미있지?하하하...그래도, 저 쪽으로 돌아 오지 그랫어?  부츠를 겨우 빼내고 보니 신발끈 고리가 벌써 망가져 있다. 학교에 가면 다른 신발로 바꾸어 신는데도 버스와 집 사이 몇 십미터 안되는 길을 오가면서도 꼭 어릴적 제 에비처럼 보이는대로 눈과 얼음을 툭툭 차고 다니니 그럴 수 밖에...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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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와 우유와 삶은 계란 두 개로 간식을 먹고는 곧바로 개러지에서 자전거를 꺼내어 타기 시작한다. 나도 슬슬 나가서 눈이 녹은 부분까지만 잠시 걸으며  햇볕을 즐긴다. 나무 위에서 까지들이 떼떼거리며 법썩을 떠는 품이 혹시, 동면을 끝낸 뱀이라도 벌써 기어 올라와서 둥우리를 엿보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 아니면,  암놈이 알이라도 낳아서 숫놈이 저리 환호를 하고 잇나  설마, 이 좋은 날씨에 부부싸움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새들의 언어를 알아 들을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끼리의 말귀도 잘 못알아 들으면서...ㅎ  이름모를  오래된 나무들이 듬성듬있는 이 아파트 동네는 제법 아늑한 것이, 혹시, 더 예전부터 수우족들이 살아 오던 동네인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돌아 오기를 기다리며 촛점이 잘 안맞는 눈으로 페이스 북을 들여다 보고 있던  에비도 곧바로 커피잔을 들고 나온다. 이제 현관앞 의자에 앉아 커피를 즐길 만도 하다....  며칠 전엔 마이너스 22도였는데 연일 영상이더니주말쯤에는 또 다시 추워질 거라나... 여기도 4월까지는 날씨를 못믿는단다. 그래, 시에미 변덕 같은 날씨라는 말도 있더니.....그저, 그 안에서 즐길 수 밖에...ㅎ .

 

그래도, 웬만하면, 내일은 나도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버스 정류장까지 가서 태오를 기다려야겠다.  그 동안 나는 아직 한 번도 거기까지는 갈 엄두를 못내었었다. 눈차가 엔간히 눈을 치웟어도 이렇게 말짱하게 집앞 공동 주차장과  길들이 햇볕에 그 바닥을 드러난 적은 없었으니까... 내가 지팡이 타령을 했더니, 에미가 정말 지팡이 하나를 사왔는데, 아, 등산용이 아니고 진짜 지팡이이다. 한국에 가서도 쓰실 수 있을 것 같아서요...그래, 그러면 되겠구나...가벼운 재질의 접이식이라, 웬만한 가방에 넣고 다녀도 되긴 하겟는데, 웬지, 이제 진짜 노인이 된 거라는실감이 나서 사실은 마음이 좀 떨떠름하다. 아, 이래서, 옛사람들이 자식은 부모에게 지팡이를 사드리는 게 아니라는 말도 했나 보다...뭐, 나도 이제 곧 흰지팡이라도 사서 들고 다니리라 생각해 놓고, 이런 멋쟁이 까만색 지팡이를 사왔는데도 그런 생각을 하다니...참, 못말릴 시에미 변덕이다. ㅎㅎ

 

어제는 성우네 저녁초대에 나도 갔었다. 교회에는 따라 가겠지만, 누구네집 초대에는 너희들끼리만 가거라 햇던 것인데, 이번엔 여러집이 모여 노는 것도 아니고  나를 대접하기 위해 일부러 우리집만 불렀다는데야, 어찌 안갈 수가 있겠는가? 전통식 삼계탕이 아주 맛있다.  에미가 연주여행 가 있는 동안 그렇게  매일 준오를 데이 캐어에 데려다 주고 데려 오고  해준 건 물론이고, 애들이 좋아하는 돈까스도 만들어다 주는 그 성의가 고마워서 우리가라도 초대해야 할 것 같았는데, 이러니, 정말, 너무 고맙다. . 멀리 수 시티에 사는 조아네도 일부러 음식과 과일을 잔뜩 사다 주고 갔었다.  에미는 참, 댓가를 바라지 않고 퍼주는 마음들이라고 말한다.  그래, 그래도 유유상종이겠지... 나는 겨우, 에미가 파나마에서 내 몫으로 사온  Palo Alto라는 커피 한 봉투를 미처 챙기지 못한 누구 있으면 갖다 주라고 도로 내놓은 게 전부다. 예, 그러고 보니, 깜박햇네요. 저 산삼 한 뿌리를 갖다 주신 분, 그 뿐께 갖다 드려야겟어요. 나중에 따로 챙겨야겟지만...어머니는 대신 다른 거 사드릴게요. 그래, 난 안그래도, 갈 때 스타박스나 좀 사서가려고 했다...사람들 만나고 어쩌고 하고 싶지 않았던 내가 아무래도이러다가 언제  어떤 변덕을 더 부리게 될 지 모르겠다는 불안감?마저 든다...ㅎ

 

그러고 보면, 고집과 변덕은 종이 한 장 차이인가도 싶다. 아니, 고집이라는 바다 위에 뛰노는 잔물결이 변덕이라고 할까...내가 고기라면 바다밑을 기는 가자미처럼 엎드려도 있다가 소금쟁이처럼 가볍게 반짝이는 물결 위를 기어갈 수도 있는 그런 괴물같은 물고기가 아닐까? 그 사이를 오르내리는 동안에도 부단히  변신을 하는 물고기...변신이 미처 다 안되었는데 움직임이 너무 빠르면 다시 가라앉거나 떠올라서 버벅대고 비틀거리는 물고기...아마, 그래 놓고도, 또 다시, 부단히, 그리고 무단히, 아니, 무단하지 않게바닷속 ,환경에  따라  변신을 계속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난 물고기... 이거 뭐, 비극 같군...아니, 뭐, 무슨 비극처럼은 아니고, 그런 자신을 포함한 그 변신의 무대를 즐기는 물고기...그러고 보니, 해마가 그런 물고기던가? 둥둥둥 끄덕끄덕 기우뚱. 우뚱...오르내리기를  즐겨하는 물고기...ㅎㅎ

 

.어제 이어서 오늘 또 쓰기.....오늘은 금요일,  저녁엔 수 시티의 조아네서  또 모인단다. 성경공부와 겸한 가족모임이데 어머니도 당연히 오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한다. 참내, 이번엔 모여 노는 모임도 아니라니, 가서 정말,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되는 건가? 정말? 또 변덕이 일어나려고 한다. 다들, 그렇게 권하는데 내가 자꾸 피하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지만, 왜 자꾸  그냥 나 하는대로 냅머려 두지 않는 걸까? 좀 불편하다. 하지만, 이런 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도 그렇고...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 로마법대로 좀 따라도 되겠지..그러나, .무엇보다도 너네도 진심으로 나를 위해 그런다는 걸 내가 왜 모르겠는가.....그리고,, 너희들 마음에 그게 편해진다면....낼모레, 일요일엔 수 시티에서 있을 에미의 트리오 연주에는 가고 싶다고 햇던 건데, 거기서 로버트라는 제자의 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게 되어 있다나...저번에도, 캐슬이라고 불리는 그 집의 초대에 나는 안갔는데, 이번에도  안가려면 저 음악회부터 빠져야 할 판이다....이렇게 생각이 많아지니, 시에미 변덕이라는 것도 그렇게 무단하지만은 않았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드는 건  내가 시에미가 되어서 그렇겠거니...ㅎㅎ

 
카멜레온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친구 하나가 생각난다. 그도 나처럼 망막색소변성증을 앓고 있는 환자였는데, 한다하는 기업체에서 일하던 아주 명민한 친구였다.  나는 몇 사람의 젊은이들과 함게 같은 환우들의 협회를 만든 적이 있는데, 그 후 이 친구도 한동안 그 회장을 맡아서 열심히 일을 했었다.  그러다가, 점점 더 눈이 나빠지자, 그는 회사를 그만 두고, 밴드를 조직하여 열심히 노래하는 가수가 되었다. 머리를 까치집처럼도 만들고 노오란 물감을 드리기도하여 고음의 괴성을지르기도 하는 그의 밴드음악이 내 귀에는 너무 낯설고 그의 슬픔을 너무 생짜로 노래하는 듯도 하여 거북스럽기도 했지만, '눈이 내리네'를 불어로 부르는 그의 낮은 못소리는 참 사람을 애수에 젖게 한다.  아주 젊어서는기계체조 선수도 하였다는,  명랑하고 기발한 그는 아마, 한동안 그렇게 지내다가 또 어떤 변신을 하게 될 지 모를 일이다. 처음 그를 협회에서 만낫을 때, 왜 하필이면 카멜레온이냐고 물어 보지 않앗지만, 지금은 그의 뜻을 짐작할 만하다. 내면에 남모를 심지가 있는, 그리고 그 원심력으로 온사방을 주유하지만, 결코 그 심지를 놏치지 않는 그런 변주곡 같은 카멜레온을 꿈꾼지 않았을지...

 

오늘은 날씨가 더 훅하여 아침에 드디어 뒷문이 활짝 다 열렸다. 주말부터라면, 내일부터 또 날씨가 추워진다는 건가? 그게 그렇게 정확하다면 변덕도 아니지, 정말...ㅎㅎ 오늘따라 커피를 대여섯 잔은 되게 끓여 놓고  에미가 사온 검은빵을 씹어 먹고 있다. 온갖 잡곡을 다 넣고 만든 빵인데, 커다랗고 거무튀튀해서 고집스럽게 생겻지만, 구수하고 오돌오돌 씹히는 게 있어서 나는 참 좋다. 한국에 갈 때 이 빵이나 한 가방 가득 넣어 가서 냉동실에 넣어 두고 한 달은 밥 안해 먹고 살아 볼까나? 예전에, 소련군들이 이런 빵을 들고 다니면서 한 번 뜯어 먹고 베고 자고 또 한 번 뜯어 먹고 베고 자고 그랬다던가?  아버님은 이북에서 고등중학교 교감으로 계시면서  그들이 와서 학교에 진을 쳐도 밥을 해주고 국군이 왓을 때도 밥을 해주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나중에 국군이 교장과 교감을 세워 놓고 총구를 겨누었는데, 관사에서 밥하는  아주머니가 그 사람은 절대 빨갱이가 아니예요, 소리쳐서 그 총살을 면했다고 하시더만...에비에게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니, 그냥,  웃는다. .그 많은 세월의 변덕을 이 음악 밖에 모르는 넘이 어이 다 꿰고 이해하랴...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