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의 언어와 내부의 로고스
「교사론」의 내용은 대체로 학습자의 입장에서 본 대화에 관한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 발췌문은, 교사가 가르치고 있을 때 학습자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언어소통의 초기단계로서, 두 단계로 나뉘어진다. 1)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던 하나의 지식 단위가 사고, 즉 내적인 “언어”나 “로고스”를 이루는 단계. 이 때의 지식단위나 내적 언어란 비물질적이고 일반적인 것으로서, 어떤 특정 언어로 규정되지 않는 그런 것이다. 2) 내적 언어가 신체적인 신호를 통해서 외적으로 표현되는 단계. 특정 언어의 용어로 되어있는 이 내적, 비물질적 사고의 신체적인 표현을 일반적으로 “언어”(verbum)라고 일컫지만, 그것은 “목소리”(vox), 즉 신체적인 소리라고 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이렇게 외적으로 나타난 소리는 단지 의미나 사고가 신호로 나타내어진 것이고, 사고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적인 “언어‘이다.
「교사론」의 설명에 따르면, 외적 언어의 기능은 언어소통의 수화자인 학습자가 교사의 말에 대하여 자기 마음 속으로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스스로 검증해 나가도록 촉발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의 탐구를 통해서 하나의 “언어”(즉 사고)를 이끌어냄으로써 그러한 검증을 할 수 있으며, 그것은 곧 외부의 교사가 해 준 말을 검증해 보는 준거이다.
36)세상의 모든 찰나적인 것들의 근원으로서의 영원한 진리를 만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준거를 가지게 되고 자기 자신이나 외부와의 관계에서 이성적으로 행위할 수 있도록 삶의 形式을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러한 근원에서 나온 지식은, 언어와 마찬가지로 우리 내부에 축적되어 있다가, 우리가 말을 할 때 다시 살아 나오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 나온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로부터 떠나버리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남에게 말을 할 때에는 그 언어에 목소리를 보태는 것일 뿐, 말을 내뱉는다고 해서 언어가 우리의 바깥으로 나가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각적으로 지각되는 다른 신체적인 신호를 사용할 경우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말을 듣고 있는 상대방에게도 그와 비슷한, 즉 말하는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떠나가 버리지 않는 그런 무엇이 생겨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 속으로 먼저 말을 하지 않고는, 행동이나 말로서 신체의 어떤 부분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인정하거나 비난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먼저 마음 속으로 말하지 않은 것은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37)무엇이 진리인가를, 즉 진실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우리 기억 속에 들어 있었던 지식들은 그것들에 꼭 부합하는 언어를 만들어내게 된다. 언어는 그 지식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지식에서 나온 생각은 마음 속으로 말하는 언어이며, 이 내적 언어는 그리스어도 라틴어도 아니고 어떤 다른 언어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을 하고 있는 상대방의 마음 속으로 지식을 전달할 필요가 있을 때, 우리는 그 지식을 나타낼 수 있는 신호를 사용하게 된다. 보통은 소리로, 혹은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라도 상대방의 귀나 눈에, 즉 신체적인 감각에 무엇인가를 제시함으로써 우리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언어를 상대방의 감각에 지각되도록 하는 것이다. 가시적 언어라고 할 그런 무엇인가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고개를 끄덕거릴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처럼 신체적인 신호들은 상대방의 귀나 눈에 제시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지금 바로 앞에 있지 않는 사람에게 말을 하기 위한 방법으로 고안된 것이 문자이다. 즉, 언어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대상을 말로써 표현하는 신호이지만, 문자는 그러한 언어를 다시 신호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부로 소리가 나는 언어는 우리 마음 속에서 빛나고 있는 언어를 신호화한 것일 뿐, 사실, 실제로 “언어”라는 이름에 걸 맞는 것은 바로 이 내적 언어이다. 입으로 말해지는 언어는 언어의 소리에 불과하고, 단지 내적 언어와의 유사성 때문에 언어라고 불릴 뿐이다. 내적 언어는 그것이 외부로 표현되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소리를 이용한다. 우리의 내적 언어는 어떻게든지 그것이 인간의 감각에 노출될 수 있도록 특정한 소리를 동원함으로써 신체적인 소리로 번역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신의 말씀을 인간의 감각 앞에 명백하게 드러내기 위해 신이 인간의 육체를 취함으로써 우리 앞에 육신으로 현현하는 것과 같다. 우리 내면의 언어가 소리로 되었다고 해서 그 자체가 소리로 바뀌어져버리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신의 언어도 그렇게, 육신이 된 것이며, 그렇다고 육신으로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인 것이다. 내적 언어는 그 자체가 파괴되어 소리로 바뀌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의 언어가 육신으로 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신체적인 形式을 취함으로써 소리가 된 것이라는 말이다.....
한 편으로, 모든 음성 언어는 침묵 속에서도 언어로서 우리의 생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입술은 움직이지 않고 마음 속으로만 노랫말을 읊을 수 있는 것이다. 음절 한 마디 한 마디, 리듬뿐만 아니라 노랫가락까지도, 마음 속으로 조용히 음미하는 사람에게 그대로 들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듬과 가락은 분명히 “청음”이라는 신체감각과 관계되는 물리적인 현상에 속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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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삼위일체」, ⅸ, 12
37) 「삼위일체」, ⅹⅴ,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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