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오네 집

태오네를 기다리며

해선녀 2008. 12. 26. 05:53

 

 

  

 

한밤중에 잠이 깨어 

또 애들 생각을 한다.

오마하에서 댄버로 댄버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서울로

지금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

 

비행기 안에서 준오 녀석 보채지 않을까?

태오는 시근이 들어서 좀 참겠지만,

녀석 울면 감당이 불감당일 터인데.

 

하릴없이 불동네 마실이나 슬슬 돌며

컴질하는 내 발밑에서 팻지도 걱정이 되는지

지난 번 태오가 두고 간

장난감 자동차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하품을 하다가  발가락을 닥는다.

 

 내려다 보이는 내 발톱도 길구나.

 한밤중에 잠이 깨어 무슨 일을 못햇으랴만,

그래도 차마, 발톱은 못깍겟네

 

예전에 울엄마가 그러셧지.

한밤중에 손발톱깍는 건 아니라고.

왜엿을까? 왜? 왜?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같아서? 

그래, 말자. 내일, 잊어버려도 할 수 없고.

 

할모니, 할모니 발톱이 왜 이리 길어요?

아, 그건...너 기다리느라고 그리 길어졋지?

아니, 왜요? 왜 발톱이 길어져요?

녀석아, 알 거 없다. 네 발톱이나 좀 보자.

 

내 눈도 눈이지만,

이제 태오는 너무 커서 내가 되로 안고

발톱을 각아 줄 수나 잇을까?

별것이 다 걱정이니 잠이 올 리가 잇나.

저 양반도  잠이 안오는지 거실에서 뒤척이네.

그래, 그러니, 이 나이가 되면

딴방은 몰라도 딴 이불을 쓰는 게야.

 

잠이 드는 듯한 사람을 가만 놓아 두고

살금살금 안방으로 들어가는데

호팻지도 따라 들어 온다.

야, 너도 네 방에 가서 잠이나 자.

너도 애들이 오면 찬밥될까 걱정인 게지

 

 사는 게 다 그런 거란다

밀릴 땐 밀릴 줄도 알아야 하는 거야.

그게 어디, 내내 그렇겠니

발톱도 너무 길면 저 혼자서

구부러지기라도 하는 거라고. 하하하.

 

 

 

 

 

 

잠을 기어이 못들고

끄적거린 낙서에 사진 올리려고

팻지 하품하는 사진을 찍고 잇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여기 샌프란시스코예요.

한 시간 늦는데요.

왜? 왜? 몰라요. 왜 그러는지.

눈이 많이 와서 그런 게지.

여긴 남쪽인데 눈은요.

 

어디서 온 눈 때문에

어디서부터 밀렷는지 모르는 게지.

아니, 눈을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인지도 몰라.

그런 사람들은 무얼 해도 늦기 일쑤란 말이지.

 

하하. 무얼 자꾸 알려고 해.

살다 보면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이던 걸.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 말 않고

잠이나 푹 자 두는 게지. 그럴 때.

 

다행히, 준오가 보채지 않앗고

태오는 그림 그리고 게임하느라고

그렇게 얌전히 잘 오더란다.

글쎄, 이제부터는 또 모르지.

 

며느리가 옆에서 그런다.

저녁준비는 해 놓지 말라고.

원당시장통의 삼십 년도 넘은

혜성만두와 떡볶이를 먹고 싶다고.

하하, 그건 다음 날 언제 먹으면 되지.

난, 태오 데리고 만두 사러 가고픈데..

 

하긴, 먹고 싶은 것부터

먹는 것이 좋은지

먹고 싶은 것일수록

아껴 두엇다 먹는 것이 더 좋은지,

인생은 갈수록 알 수가 없네.

아으, 졸린다, 이제, 정말,

나도 좀 자 둘 테니, 어서 오기나 빨리 와.

준오 안고 싶어.

 

그러고도 30분 후,

또 한 시간 더 늦겟다고 전화가 왔고

우리는 아예 일어나 앉은 채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해를 맞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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