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잠이 깨어
또 애들 생각을 한다.
오마하에서 댄버로 댄버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서울로
지금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
비행기 안에서 준오 녀석 보채지 않을까?
태오는 시근이 들어서 좀 참겠지만,
녀석 울면 감당이 불감당일 터인데.
하릴없이 불동네 마실이나 슬슬 돌며
컴질하는 내 발밑에서 팻지도 걱정이 되는지
지난 번 태오가 두고 간
장난감 자동차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하품을 하다가 발가락을 닥는다.
내려다 보이는 내 발톱도 길구나.
한밤중에 잠이 깨어 무슨 일을 못햇으랴만,
그래도 차마, 발톱은 못깍겟네
예전에 울엄마가 그러셧지.
한밤중에 손발톱깍는 건 아니라고.
왜엿을까? 왜? 왜?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같아서?
그래, 말자. 내일, 잊어버려도 할 수 없고.
할모니, 할모니 발톱이 왜 이리 길어요?
아, 그건...너 기다리느라고 그리 길어졋지?
아니, 왜요? 왜 발톱이 길어져요?
녀석아, 알 거 없다. 네 발톱이나 좀 보자.
내 눈도 눈이지만,
이제 태오는 너무 커서 내가 되로 안고
발톱을 각아 줄 수나 잇을까?
별것이 다 걱정이니 잠이 올 리가 잇나.
저 양반도 잠이 안오는지 거실에서 뒤척이네.
그래, 그러니, 이 나이가 되면
딴방은 몰라도 딴 이불을 쓰는 게야.
잠이 드는 듯한 사람을 가만 놓아 두고
살금살금 안방으로 들어가는데
호팻지도 따라 들어 온다.
야, 너도 네 방에 가서 잠이나 자.
너도 애들이 오면 찬밥될까 걱정인 게지
사는 게 다 그런 거란다
밀릴 땐 밀릴 줄도 알아야 하는 거야.
그게 어디, 내내 그렇겠니
발톱도 너무 길면 저 혼자서
구부러지기라도 하는 거라고. 하하하.
잠을 기어이 못들고
끄적거린 낙서에 사진 올리려고
팻지 하품하는 사진을 찍고 잇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여기 샌프란시스코예요.
한 시간 늦는데요.
왜? 왜? 몰라요. 왜 그러는지.
눈이 많이 와서 그런 게지.
여긴 남쪽인데 눈은요.
어디서 온 눈 때문에
어디서부터 밀렷는지 모르는 게지.
아니, 눈을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인지도 몰라.
그런 사람들은 무얼 해도 늦기 일쑤란 말이지.
하하. 무얼 자꾸 알려고 해.
살다 보면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이던 걸.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 말 않고
잠이나 푹 자 두는 게지. 그럴 때.
다행히, 준오가 보채지 않앗고
태오는 그림 그리고 게임하느라고
그렇게 얌전히 잘 오더란다.
글쎄, 이제부터는 또 모르지.
며느리가 옆에서 그런다.
저녁준비는 해 놓지 말라고.
원당시장통의 삼십 년도 넘은
혜성만두와 떡볶이를 먹고 싶다고.
하하, 그건 다음 날 언제 먹으면 되지.
난, 태오 데리고 만두 사러 가고픈데..
하긴, 먹고 싶은 것부터
먹는 것이 좋은지
먹고 싶은 것일수록
아껴 두엇다 먹는 것이 더 좋은지,
인생은 갈수록 알 수가 없네.
아으, 졸린다, 이제, 정말,
나도 좀 자 둘 테니, 어서 오기나 빨리 와.
준오 안고 싶어.
그러고도 30분 후,
또 한 시간 더 늦겟다고 전화가 왔고
우리는 아예 일어나 앉은 채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해를 맞앗다.
'태오네 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오와 준오 2009. 1. / 집에서 (0) | 2009.02.04 |
---|---|
태오와 준오 2009. 1. / 낙성대 공원 (0) | 2009.01.11 |
크리스마스 스팩타큘라~~~~~ (0) | 2008.12.22 |
태오 다섯 번째 생일...... (0) | 2008.08.24 |
준오 돌날.... (0) | 2008.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