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Augustine의 교육론(번역)

제 3 장 학습자의 심리 - 1

해선녀 2005. 2. 28. 08:15
 

 

제3장 학습자의 심리

 


현대의 어느 아우구스티누스파 학자는 아우구스티누스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철학적, 심리학적으로 개념화하고 분석한 최초의 사상가였다”고 말한 바 있다..1)  아우구스티누스 이전의 사상가들은 實在와 神性이라는 궁극적인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우주로 눈을 돌렸던 것과 달리,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비밀이 모두 인간의 내면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한 지식의 총체를 우리는 “신과 영혼”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삼위일체」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영혼의 작용을 ‘하나 속의 셋’ 이라는 비유에 대한 긴 설명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이해, 기억, 의지에 대한 광범한 자료들을 연구함으로써 무한 존재의 본질, 즉 신의 특질에 대한 진정한 통찰에 이르고자 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심은 우선 영혼의 비물질적 본성을 밝혀내고, 더 나아가서 비물질적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無”인 것이라는 견해에 반대하는 주장을 펴려는데 있었다. 공기는 비가시적인 것이지만, 공기로 채워진 주머니가 있다면 그것은 빈 주머니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감각에 잡혀지지는 않지만 인간의 모든 행위를 주도하고 지시하는, 살아있는 본체가 영혼이라면 그 보다 더한 실체가  무엇이 있겠는가?

 

살아 있는 것은 신체가 아니고 영혼이다. 그러므로, 영혼이 신체를 통제하는 것이지, 신체가 영혼을 통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모든 행위를 신체에 대한 영혼의 작용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예컨대, 감각적 수용이라는 것도 영혼이 환경의 자극에서 오는 물리적인 효과를 영혼의 의지에 따라 인지하는 일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가설적 원리에 의하면, 열등한 존재는 그보다 우월한 존재에 대해서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의 발췌문은 그러한 인간심리에 대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예리한 통찰을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그가 인간의 마음이라는 풍요로운 창고를 탐색했던 「참회록」에서 기억에 대해 설명했던 유명한 글로 끝나고 있다. 그로써 그는 교육의 위대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것은 결국, 우리는 교육을 통해서, “자신을 알라” 라는 지상명령에서 출발하여 신성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영혼의 기원과 본성  

                           

2)理性: 너는 무엇에 대해 알고자 하는가?                                         

아우 구스티누스: 제가 기도해 온 모든 것들에 대해서입니다.

이성: 그것들을 간단히 요약하면?

아우: 신과 제 영혼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이성: 다른 것은 더 없는가?

아우: 절대로 없습니다.


신은 인간을 위해 영혼을 창조하였을 때,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의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도 인간이 이성과 이해심에서 더 우수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신은 신의 이미지에 따라 인간을 창조했다. 다른 피조물들에게는 마음이라는 것이 없다. 3)인간은 무엇에서 동물보다 더 우수한가? 그것은 인간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이해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성을 가진 생물이라는 것, 그것 하나 때문에 금수보다 낫다는 말이다.

 

4)나는 여기에서, 당신이 영혼에 대해서5)* 여러 번 내 이름을 언급하면서, “우리는 영혼이라는 것을 저 머리 좋은 아우구스티누스 주교가 주장한 것처럼, 귀신과도 같은 비물질적인 존재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그러면, 먼저, 영혼은 내가 말한 대로 비물질적인 것인가, 당신이 말한 대로 물질적인 것인가에 대해 토론해 보겠다. 우선, 당신은 인간의 신체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리고 있는지, 그것을 알고 싶다.

 

신체는 살(肉)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보면, 도저히 우리의 신체가 흙, 하늘, 바위, 물, 별, 이런 종류의 물질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신체는 크고 작은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들은 일정한 공간들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체를 구성하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기, 빛은 물론이요, 사도들이 말하는 “천상과 지상의 모든 것들”이 다 물질이기 때문이다. (T.Cor, 15:40)

 

그런데, 영혼은 공기나 빛이 물체라는 것과 똑같은 의미에서의 물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구체적이고 미묘한 검토의 대상이 되어 왔다. 물론, 당신은 신만은 물체가 아니라고 하고 있고, 그 점에서는 나는 당신에게 진심으로 찬사를 보낸다. 그렇지만, 나는 당신이, 내가 영혼이 비물질적인 것이라고 말할 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통상 그렇듯이, 그것이 텅 빈 허공, 공기와 같이 희박한 어떤 것인 것처럼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하면, 당신이 신도 비물질적이라고 말함으로 해서, 신이 텅 빈 물체라고 하는 결론이 나오는데 대한 두려움도 없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더군다나, 당신이 이미 동의한 바와 같이, 만약 신이 비물질적이라면, 신은 텅 빈 물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자체가 논리의 비약인 것이다. 형체가 없다고 해서 텅 빈 물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영혼은 비물질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반드시 영혼이 텅 비고 희박한 물체라는 뜻이 아닌 것이다.  나는 단지, 신은 분명히, 텅 빈 어떤 것이 아니면서도, 비물질적인 존재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는 신이 공기 같은 물질이 아니라고 하고 있으므로, 내가 실제로 말하고 있는 것과 당신이 내가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렇지 않고 당신 생각대로라면, 그리고 당신이 자기가 하고 있는 말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나 역시, 사실과 달리, 우리가 공기는 물체라고 하는 그런 식으로 신은 물체라고 주장했다는 것이 된다.

 

 내가 영혼은 비물질적이라고 한 말을, 당신은 당신이 영혼은 텅 빈 허공으로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또한 그렇기 때문에, 영혼은 공기 같은 물체인 것으로 말한 셈인 것처럼 그렇게 똑 같이 해석한 것이다. 나는 오히려, 영혼은 공기나 공기로 채워진 어떤 것들이 물체인 것과 같은 뜻에서의 물체가 아니므로, 그것은 텅 빈 어떤 것일 수도 없다고 말한 것이다.

 

당신이 비유했던 포도주의 기포라는 예만 해도, 당신에게 그것은 아무런 확신도 가져다 주지 못하고 말았다. 포도주가 부풀거나 졸아들 때, 그 속에 공기가 아니고 그 외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 그래도, 그 속이 비어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한 것이, 그것이 가득 차서 부풀어 올랐을 때에는, 그 위에 어떤 무게가 가해져도 그것을 지탱해 낸다는 것이다. 당신은 바람이 일어나는 현상이 공기와는 다른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작은 부채를 흔들어 보면 알 수 있듯이, 나는 바람이 일어나는 현상은 공기 그 자체이며 공기가 곧 바람일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래도 부족하면, 당신이 텅 빈 것이라고 생각하는, 속이 우묵한 용기의 주둥이를 물 속에 거꾸로 담궈서 눌러 보면 그 속에 물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용기 속에 가득 찬 공기가 물을 밀어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속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그 용기가 뒤집혀지거나 옆으로 눕게 되면, 물은 물론 들어 갈 수 있고, 구멍이 생긴 만큼의 틈을 뚫고 공기가 빠져 나갈 수 있기 때문에, 그 만큼의 물이 들어 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것은 글로 쓰는 것보다 실제로 실험해 보이는 것이 더 빠르고 쉽게 증명될 수 있겠지만, 이 점에 대해 내가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당신이 공기가 물질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안 하고 간에, 적어도, 당신은 내가 영혼이 공기로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고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나는 영혼은 전적으로 비물질적이라고 한 사람이며. 그것은 당신이 신이 비물질적이라고 한 것과 똑 같은 뜻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당신도 신은 텅 빈 허공이라고 하지는 않았으니까. 이제 우리는 신은 비물질적이면서도 텅 빈 허공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데, 영혼이 비물질적이라고 한다고 해서, 그것이 텅 빈 허공이라고 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걱정을 이제 더 이상 할 필요가 있겠는가?


 

6)아우구스티누스: 자네는 자네의 영혼이 자신의 신체 이외의 다른 곳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에보디우스: 나는 내 영혼은 내 신체 속에 있다고 생각하네.

 

아우: 자네는 그러면, 그것이 오로지 몸 속에, 몸이 마치 주머니인 것처럼 몸을 채우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건가? 아니면 영혼은 몸 밖에   있는 덮개 같은 것이란 말인가?   아니면,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다는 건가?

 

에보: 내 생각에는 영혼이 신체의 안과 밖에 다 있다고 보네. 그것이 안에 있지 않다면, 우리 몸의 내부장기에 생명력이 없을 걸세. 그것이 또한 밖에 있지 않다고 하면, 우리는 피부에 닿는 미세한 자극들을  느끼지 못할 것일세.

 

아우: 그렇다면, 자네는 영혼의 크기는 신체의 크기와 같다고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영혼이 얼마만 하냐고 계속 물어왔지?

 

에보: 이것이 이성이 가르치는 것이라면,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져 버렸네.

 

아우: 이성이 가르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면 자네는 정말 옳다네. 그렇지만, 그 이성적인 사고라는 것이 자네 생각에는 치매 예방약이라도 될 것 같은가?

 

에보: 그렇지, 나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네. 아닌게 아니라, 내게 오랫동안 풀리지 않아 온 질문이 하나 있는데, 지금 그 질문을 하는 것이 좋겠네. 그것은 영혼이 신체를 떠날 때도 여전히 그 모양을 그대로 가지게 되는가 하는 것이네. 언젠가, 이 문제를 우리가 토론해야 할 문제 중에 제일 나중으로 미루었던 것이 생각나네. 그렇지만, 나는 지금 영혼은 몇 개인가 하는 문제가 영혼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가 하는 문제와 상관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이런 문제를 그냥 넘겨서는 안된다고 보네.

 

아우: 그에 대해 무엇인가 자네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네. 그렇지만 우선, 내가 아직 못 푼 문제, 영혼의 크기가 얼마만 한가하는 것부터 이야기해보세. 그래서, 그것이 자네에게 분명해질 수 있다면 나도 무엇인가 좀 배우고 싶네.

 

에보: 자네가 좋다면 무엇이든지 물어 보게나. 자네가 의문을 품고 있는 척 해 주는 것 때문에, 나는 이미 결론이 났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에 대해서까지도 다시 진지하게 의심을 해 보는 것이 즐거워지게 된다네.

 

 

 

1) Paul Henry, S. J.,「아우구스티누스의 인성론」, (New York : Macmillan, 1960), p.1.

2) 「독백」, i, 7

3) 「신의 도시」, ⅻ, 23.  

4) 「질서의 원리」, ⅱ, 49.

5)*: 이 글은 아우구스티누스가 로가티스트(Rogatist)로 알려져 있는 도나티스트(Donatist)의 한 분파였던 Vincentius Victor에게 말한 내용이다. 빈센티우스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영혼의 기원과 본질에 대해 이단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고발하였다. 이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반론이「영혼과 그 기원」이라는 논문이며, 이 글은 거기에서 발췌한 것이다.

6) 「영혼의 위대성」, 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