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아아, 남대문, 우리들의 자애로운 어머니시여...

해선녀 2008. 2. 17. 23:34

 

 

 

  

높디 높은 빌딩숲과 휘황한 불빛들, 그리고 그 소음들...그 한복판에서도 언제나 낮은 자리, 거기 그 자리, 자애로운 어머니의 미소로 지긋이 우리를 지켜 보아 주던, 아, 남대문, 당신의 슬하에서 우리는 찧고 까불고 구르고 달리던 철없는 어린아이들이엇습니다. 

 

우리는 물가에 내어 놓은 어린아이들이엇습니다. 정신없이 흘러 가는 물길 따라 당신 옆구리를 돌아 가면서도 당신의 그 시린 허리에서 나오는 신음소리를 듣지 못하였고,,당신의 치맛자락 앞에 잠시 멈춰 서서도 쓸쓸한 당신의 얼굴빛을 눈치도 못챈 채 쫓기고 밀리며 앞만 보고 달려 와.까마득히 당신을 잊고 살았습니다. 기어이 일을 저지른 그 날, 우자년 설날이 지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그 정월 초나흗날 저녁, 활활 타오르던 당신의 모습 끝내 믿기지 않앗지만  당신의 시신을 붙들고 울고 불면서도 우리는 또 설왕설래 서로 탓하고 원망만 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을 잃은 지 이제 꼭 일주일, 그 날 밤 이 시간에 당신은 활활 불타며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아아, 차가운 겨울바람에 그 뼈와 살을 다 드러내 놓고 말없이 누워 계시는 당신...당신을 차마 더 이상 바라 볼 수가 없습니다. 이제야, 당신을 잃은 슬픔을 잠시 거두고, 옷깃을 여미며 당신 앞에 고개 숙여 당신의 명복을 빌며 사죄 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다 죄인입니다. 수수백년을 착하고 어리석고 또한 현명하였던 우리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할머니들을 언제나 변함없이 병아리처럼 그 치마폭에 품으시고 내어 놓으시며 길러 오신 당신,, 지금 이 엄청난 어리석음도 묵묵히 내려다 보시기만 하는 당신. 

 

아, 자애로운 우리들의 어머니시여, 부디,승천하시어, 어느 따사로운 봄날, 다시 그 너른 치맛자락, 뽀오얀 버선발로 사뿐히  거기 그 자리, 그 모습 그대로, 내려와 앉아 주시옵소서. 아름다운그 자태 다시 볼 그 날까지 우리는 그리움을 참으며 당신의 빈 자리를 지키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그 땐, 우리도 철이 들어 당신을 더 든든히 지켜 드릴 수 있는. 미더운 자식들이 되어 있겠습니다. 종일 나가 일하고 돌아 오는 지친 저녁에도, 강강수월래, 다시 미소짓는 당신 앞에서 어리광도 부리며 당신을 돌고 돌며 노래하며 기쁘게 해드리겠습니다. 아아, 남대문, 숭례문, 이토록 그리워 못견디겠는 우리들의 어머니시여, 그 때까지 저 하늘나라에서 고이 잠들어 계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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