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까딱이며, 나부대며

해선녀 2004. 8. 20. 08:35

 

 

 

 

참 어쩔 수 없는 것이, 내 몸에도 마음에도 기질과 맥락이 있다는 것. 세상에 대하여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은 다 그런 내가 본 세상이라는 것. 어느 날, 갑자기, 그것이 세상과 충돌을 일으키는 날,우회와 약간의 변화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생긴대로만 나는 다시 흘러 가기 일쑤라는 것. 이런 간단한 진실조차 자꾸 잊어버리고 나는 세상을 향하여, 나 자신은 빼놓고 세상을 향하여서만 이러쿵 저러쿵 잔소리를 해댄다. 게다가, 내 안 거미줄 쳐진 어느 구석에 은밀히 연결된 물관을 따라 저 멀고 먼 어느 역사의 수로를 통해 흘러 내 안을 관통하는 어떤흐름이 있어 왔다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나는 참말, 한없이 겸허해진다. 

 

나는 기껏,  그 흐름의 역학 안에서 고개를 까딱이며 잠깐 나부대는 나뭇잎 한 장. 그 흐름 위에 나를 누이고 일렁거리면서 떠내려가다 보면, 내가 나뭇잎이라는 것도 잠깐의 환상이었을 뿐,  자궁, 어머니의 자궁 속을 유영하던 기억을 지나, 나는 곧장 우주 운행의 자장 속을 부유하는 미세한 티끌이 된다. 그 흐름은 무엇일까? 푸르스름한 빛을 띤 약간 냉기가 도는, 점액질이지만 햇빛을 잘 투과할 수 있는, 쌉싸롬한 액즙? 아니면 약간 온기가 있는, 달작지근하면서 누르스름한...? 어쨌든, 나는 그 흐름 안에서 매우 평화롭다.

 

나는 나의 영혼의 안까지 채우고 있는 그것을 내 스스로 들여다 볼 수는 없고 다만, 내 바깥을 감싸고 도는 부드러운 그 흐름을 실눈을 뜨고 바라볼 수 있다. 내 안을 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또다른 나의 바깥일 뿐이다. 그 흐름은 대개는 느릿하지만, 어떤 때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빨라서 래프팅을 하듯 노를 저으면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다가 지친 어느 날엔, 나도 모르게, 그 흐름의 가생이, 어느 기슭에 모여 선 억새들 사이에 걸려 마냥 떠 있기도 한다. 그러나, 그랬다가도, 언젠가는, 밝은 햇살 아래에서 은은히 빛나는 그 흐름 속으로 천천히 용해되어 들어가서 다시 흘러간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나이고 나가 아닌지, 그 수로가 어떻게 생겨나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흘러 가는 것인지도 알 수도 없이. 어느 햇빛 좋은 날, 보소소 어느 바위 위에 석출되어 올라앉아 또 어떻게 까딱이며 떠내려갈지 그 궁리나 하게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