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세월
해선녀
2007. 1. 21. 15:30
그 날 말이야,
비죽비죽 산죽들이 솟은 그 산자락
밭둑길을 따라 산소로 갈 때
그 때 말이야,
몇 줄쯤 더 늘여도 그만,
줄여도 그만일 내 글줄들 같은
배추밭 이랑들이 잔설을 머리에 이고
넌줄넌줄 날 따라 오더라고.
삶도 그렇겠지?
마른 가지에 마른 고추들도
더 주절거릴 무엇이 남았다는 듯
오롱조롱 매달려 있더라.
그러거나 말거나,
세월을 굳이 헤아리지 않아도
눈 잦아든 밭고랑에선 벌써
쌔근쌔근 꿈틀거리는 벌레들이
숨쉬는 소리도 들려 오고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밭 한가운데에서는
아직 청청한 겨울이 혼자 서성거리며
휘파람을 불고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