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선녀 2006. 7. 11. 00:25

 

 

 

 

 

그대 잊었는가? 그대도 알고 나도 알고 있던 것. 한겨을. 견디고 난 나목이 그 안으로 흐르고 있던 물관, 그 물길을 타고 다시 새순을 낸다는 것. 가늘게 오래 숨어 흐른 우리 안의 계절, 그 오래된 물길을 그대 잊으셨는가?.내가 그대에게로 그대가 나에게로, 그대와 나, 낙동강으로 동해바다로, 어디로든 함께 흐르던 우리 마음의 안 길...그대가 아무리 손사레를 쳐도, 무심한  척, 나도 어깨를 추스리며 말없이 그대 뒤를 따라는 가도, 그대도 알고 나도 알고,,안다는것을 서로 알고 있던 그것, 그것을 잊으셨는가?

 

세상에는 끝없이 산을 올라 가야 하고 내려 오는 순간부터 그것으로 삶이 끝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산을 올라 가면서도 동시에 산을 내려가고 있는 사람도 있다. 산길에 핀 꽃이나 달음질쳐 가는 청설모, 소나무의 향기로운 냄새에 취하며 산을 오르기도 숨가쁜데, 동시에 산을 내려 가고 있다니?. 비유컨대, 오름의 싸인, 코싸인, 탄젠트까지, 그리고 건너편 다른 산들의 그것까지, 그 산들이 속한 지구 끝까지.그렇게 다 생각하며 간다는 것이다. 산을 오르는 일 그 자체보다, 산을 오르는 그 일과 관련된 가능한 한 모든 것들을 생각하며 걷는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도대체, 어떻게 산을 다 오르고 그 오름 자체를 즐기겠는가? 그러나, 어쩌랴. 그대여, 우리가 그렇게 생겨 먹은 사람들인 것을. 그래서 정상까지 올라가지도 못하고 말았다고 하여도 할 말은 없음인 것을...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우리 앞에 닥친 산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기는 커녕, 누구보다도 열심히 갔다. 그런 식으로, 어린애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광부처럼 산을 파고 들었다...우리가 선택해서 간 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어느 길을 택햇어도 우리는 동시에 다른 길을 가는 사람도 내내 바라 보며 마음 속으로는 그 길도 그와 함께 갔다. 그게 사는 방식이고 그래야 사는 게 진짜로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그대는 나에게 닥친 산이었고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나도 그대에게 산이었고 길이었다. 나는 매일 그대의 산을 오르면서 동시에 하산을 했던 것이다. 은밀히.., 돌아서 내려설 땐 잠시 발을 헛디디는 것이 아닌가 아찔하여 비틀거리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는 다시 원래의 좌표를 확인하고 평온하게, 몸과 마음의 균형을 회복하곤 했다. 그러므로, 그대와 나, 이제 언제 어떻게 헤어지게 된다고 하여도 우리는 단지 아쉽고 서운할 뿐,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다..서로의 산을 오르면서 동시에 열심히 하산을 해왔으므로 헤어지고 나서야 새삼스럽게 후회하며 하산할 일은 없다는 말이다...

 

사랑하는 그대여, 그러므로 우리 차마 헤어지게 되거든, 그제사 서로 미안해 할 일도 없기로 하자. 이 나이가 되어서야, '나중에 미안해 할 사람이면 지금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말을 어렴풋이 믿게는 되었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 미안한 그런 일은 하지 않기로 하자. 언제나 서로에게, 기꺼이 오를 산이 되어 주고 동시에 내릴 산이 되어 주기. 우리는 그래 왔고 또 그럴 것이다. 때로는 악산이 되고 때로는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 내려오는 완곡선의 산이 되어 주기. 언제나 자유롭게 오르내리도록 아찔해진 순간에도 서로 다시 등대어 주고  디딜 자리 내어 주기....

 

그러므로, 그대여, 우리 지금부터라도 더 기쁜 마음으로,가자. 어깨를 펴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 가까이 신호를 보내며 가자. 우리가 생긴대로 산이 생긴대로. 잊었는가? 우리 서로 반가이 만나  우리 안에 길들여 온 그 믿음의 세월을 정말 잊으셨는가? 나중에 말고, 지금, 우리 그 물길 다시 더듬어보자. 가슴 저 밑을 조금만 더 더듬어 보자. 우리, 그렇게 입을 옹다물고 목에 힘줄 주며 갈 것도 없고, 주눅들고 눈치 보며 갈 것도 없다. 저 노을을 함께 느긋이 바라 보며 그저, 가는데까지 천천히 오르내리자. 이 나이가 되니, 올라감과 내려감이 사실, 무에 그리 다르기나 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