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Augustine의 교육론(번역)

제 3 장 학습자의 심리 - 8

해선녀 2006. 3. 27. 05:26

 

 

아우: 그런데, 보는 것만으로는, 그것들이 단단한지 부드러운지에 대해서는 감각하지 못하겠지, 안 그런가?

 

에보: 못하지.

 

아우: 그렇다면, 눈이라는 것은 정확히 말해서 무엇인가? 눈을 가지고 우리는 무엇을 본다는 걸까?

 

에보: 색깔을 보는 거지.

아우: 귀를 가지고는?

에보: 소리를.

아우: 코는?

에보: 냄새.

아우: 미각으로는?

에보: 맛.

아우: 촉각은?

에보: 부드럽고 단단함, 매끄럽고 거칠음, 그런 것들이겠지.

 

아우: 그렇다면, 자, 우리는 물체의 모양, 즉 그것이 큰가, 작은가, 네모인가, 둥근가 하는 것들을 촉각으로도 알 수 있고, 시각으로도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지? 그래서, 그런 것들은 시각이나 청각 한 가지에만 해당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고, 그 두 가지 모두에 다 해당한다고 봐야 되는 거지.

 

에보: 알겠네.

 

아우: 그렇다면, 어떤 물건은 그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어떤 특별한 감각을 필요로 하는 반면에, 또 어떤 것들은 한 가지 이상의 감각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는 것을 자네는 알겠나?

 

에보: 그것도 알겠네.

 

아우: 그렇다면, 우리는 각각의 감각에 어떤 것이 속하는지, 어떤 것은 모든 감각에 다 해당되고, 어떤 것은 그 중의 몇 가지에 해당되는지, 이런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지금 어떤 감각을 사용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결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에보: 그렇지, 절대로 못하지. 그 결정은 우리 내부의 어떤 다른 감각이 있어서 그것에 의해서 되는 것 아니겠는가?

 

아우: 그것은 아마, 동물들은 가지고 있지 않은, 이성적인 능력이 아닐까?  인간은 이성을 사용함으로써 감각자료들을 이해할 수 있고, 또한 그 감각자료들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 또한 이성 때문이라고 생각하네.

 

에보: 나는 오히려, 인간은 이성에 의해서 우리 내부에 그런 감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생각이네. 모든 감각자료들은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五官에 의해  내부의 그 감각에 연결되지 않겠나. 예컨대, 동물에 있어서 시각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대상을 피하거나 그것을 좇아가는 능력과는 별도인 것이지. 전자는 눈에, 후자는 그 영혼에 있는 능력이니까.

 

          동물이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린, 혹은 다른 신체적 감각으로 경험한 대상을 좋아하면서 따르고 받아들이거나, 싫어 하면서 피하고 거부하는 것은, 후자의 감각을 사용함으로써 되는 거야. 그런 감각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그 어느 것도 아니고, 그런 모든 감각들보다 우위에 있는 다른 종류의 감각이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내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이성에 의해서 그런 종류의 감각을 인식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물들에게도 그런 감각이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 아직 그것을 이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그걸 잘 모르겠네.

 

아우: 나도, 그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그만 두고라도, 일단 그런 능력이 존재한다는 데에는 동의를 하고, 그것을 내부의 능력이라고 부를 생각도 있다네. 그렇지만, 신체감각에 대해 보고하고 있는 그 지적인 무엇이, 감각 자체보다 더 우위에 있지 않고는, 그것을 지식이라고 부를 수 없지 않겠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성에 의해 파악되고 보유된 것이거든. 우리는 색깔을 청각으로, 목소리를 시각으로 지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앎은 눈으로, 귀로, 혹은 저 동물들도 가지고 있는 그런 내부의 감각을 통해 생기는 것은 아니네. 우리는 빛을 귀로, 목소리를 눈으로 지각할 수 없다는 것을 동물들도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합리적으로 관찰하고 생각을 함으로써 그것을 알게 되는 것이니까.

 

에보: 나는 아직 확실히 이해했다는 말을 못하겠네. 동물들이 자네도 인정한 그 내부의 감각을 가지고 색깔은 청각으로, 목소리는 시각으로 지각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면 어쩌겠는가?

 

아우: 자네는 분명히, 지각된 색깔, 눈 안의 감각, 영혼 내부의 감각,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각각 구별하고 규정하는 이성적 능력, 이런 것들이 각기 다르다는 것을 동물들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에보: 물론, 아니지.

 

아우: 그러니까, 색깔에 대한 지각이 시각을 거쳐서 내부의 감각에 의해 이성에까지 보고되지 않고서는, 이성이 그 네 가지를 구별해서 경계를 분명하게 그어 놓을 수가 없는 걸세. 내부의 감각은 분명히 시각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서, 지각된 것을 이성에다가 즉각 보고하는 것이고  다른 중개요인은 없다는 뜻일세.

 

에보: 그럴 수밖에 없겠군.

 

아우: 그러고 보면, 자네도 색깔이라는 것은 시각에 의해 지각되지만, 시각 그 자체는 그 자체에 의해 지각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겠지. 자네가 그 감각자체를 의식하게 되는 것은 색깔을 지각하는 감각기관을 통해서는 아니란 말일세.

 

에보: 그건 분명히 알겠네.

 

아우: 그러면, 다음 두 가지를 분명히 구별할 수 있는지 말해 보게. 자네는 색깔이라는 것과 색깔을 보는 것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지?  그리고, 우리기 지금 색깔이라는 것을 보고 있지 않을 때에도, 언젠가 우리 앞에 나타나면 그것을 볼 수 있게 하는 감각기관이라는 전혀 다른 것이 있다는 것도 말일세.

 

에보: 나는 그 차이를 알고 있고, 그것들은 전혀 서로 다른 것들이라는 것을 인정하네.

 

아우: 자네는 그 세 가지 중에서, 색깔 이외에 다른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에보: 아니지.

 

아우: 그렇다면, 자네는 어떻게 해서 그 외의 두 가지를 알고 있는가? 그 두 가지를 보지 못했다고 하면 그 차이를 알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말이지.

 

에보: 나는 그 구별을 어떻게 할 수 있게 되었는지는 모르겠고, 다만 내가 그 차이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알 뿐이네.

 

아우: 그러니까, 자네는 그 차이를 이성에 의해 알게 되었는지, 우리가 내부감각이라고 하는, 신체감각보다 더 위에 있는 그것에 의해 알게 되었는지, 혹은 다른 어떤 수단에 의해서 알게 된 것인지를 모른다는 말이군.

 

에보: 모르겠네.

 

아우: 그렇지만, 자네는 구별이라는 것은 오로지 이성에 의해서만 할 수 있고, 그 구별되는 대상이 그 이성 앞에 제시되지 않고는 구별될 수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 않은가?

 

에보: 그건 틀림없지.

 

아우: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알게 해 주는 모든 다른 것들도 다 이성의 작용일 뿐이네. 오로지 이성에,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들이 제시되기도 하고 보고되기도 하는 것이지. 감각적인 지각은 그 한계 내에서 식별되지만 그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오로지 그 감각에 이성이 가해졌을 때 뿐이란 말이네.

 

에보: 그렇지.

 

아우: 그러니까, 이성은 그 下手들(감각들)과 그 하수들이 제시해 주는 내용이 다른 것임을 알아차리는가 하면, 그 감각자료들과 그 자신도 구별하고, 또한 그 자신이 그 모든 것들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네. 이성이 그 자신 이외에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 그 자신을 이해하게 되겠나? 자네가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 이성을 사용함으로써 아는 방법 이외에, 자네는 다른 어떤 방법으로 알 수 있겠는가?

 

에보: 알 수 없지.

 

아우: 우리가 어떤 색깔을 알아 볼 때, 그것을 알아 본다는 것을 아는 것은 시력 때문이 아니네. 어떤 소리를 들을 때에도, 우리는 우리가 듣고 있다는 것을 듣는 것이 아니고, 냄새를 맡고 있을 때에도, 우리가 냄새를 맡고 있다는 것을 냄새맡지 못하며, 맛을 보고 있을 때에도, 그 맛보고 있다는 것을 맛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를 만질 때도 역시, 우리는 우리의 그 촉각을 만지지 못하네. 모든 물체는 우리의 五感에 의해 감각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어떤 감각으로도 우리는 그 五感 자체를 감지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네.

 

에보: 분명하지.

 

아우: 나는 영혼내부의 감각은 그 五感에 의해 제공된 감각자료들을 감각만 할 뿐 아니라, 그 감각 자체를 감지할 수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고 생각하네. 동물들이 그들의 감각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무엇을 좇아가거나 피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지 않을 걸세. 그렇게 의식한다는 것이 지식의 첫 단계는 아니고 단지, 예비단계일 뿐이지만, 그런 의식 자체는 분명히 그 五感 중의 어느 것으로부터도 나올 수가 없는 것이지. 만약, 그것이 의심스럽다면, 우리는 그 주제에 대해 더 충분하게 조명해 볼 수 있을 걸세. 그 감각 중의 어느 하나, 예컨대, 시력이라는 것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말일세.

 

              동물들이 만약, 눈을 뜨고 물체를 따라 눈을 움직여야 물체를 볼 수 있고 그것을 따라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다면, 동물들은 눈을 뜨지도 않을 뿐더러, 그 보이는 대로, 원하는 대상을 따라 가지도 않을 것이네. 동물이 아무 것도 보지 않고 있을 때, 자기가 아무 것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그들이 무엇인가를 보고 있을 때에도, 자기가 그것을 보고 있다는 것은 알 것이 틀림없네. ....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일세. 물체는 신체적 감각에 의해 감지된다. 그러나, 신체적인 감각은 신체적 감각 그 자체를 인식할 수는 없다. 내부의 감각이 있어서 감각기관을 통해서 물체를 지각할 수 있고, 또한 그 감각 자체도 의식할 수 있다. 그리고, 또한, 이성이 있기 때문에, 이성 그 자체를 포함한 다른 모든 것도 알 수 있고, 그것들을 지식의 범위 내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