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버리는 사람의 마음
나는 꽃을 던진다. 강물에 꽃은 던져진다. 어쩔 수 없이. 곷을 꺽을 때의 내 마음이 달라졌다고 하지 마라. 나는 언제든, 내가 원하는 것을 한다는 점에서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다. 그 꽃은 지금 시들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시들지 않는 꽃? 아무튼, 나는 지금 여기, 이 꽃이 싫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내가 왜 굳이 이유를 대야 하는가. 이유를 대려면 무슨 이유든 못대겠는가. 그러나, 이유 따위나 대고 있는 나 자신이 싫다. 나를 그렇게 만들지 말라. 나는 한 번 아니다고 하면 그냥, 절대 아닌 사람이다.
꽃을 꺽을 때의 내 마음도 절대였겠지만, 버리고 있는 이 마음도 절대이다. 나는,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내가 변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원래 언제라도 그렇게 변할 수도 있는,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제로, 변한 것이 아닌 것이다. "Beauty iis but a skin deep"이라는 말에 감동을 받았던 시절의 나는 단지, 바로 그런 감성으로 내가 세상을 바라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늘, 변함없이, 내 감성대로 산다. 내 감성 자체가 변하는 점에서라면 사람은 하루에도 열 두번, 평생토록 변한다. 자연의 색깔이 변하듯.
나는 지금 다만, 저 시든 꽃에게는 미안한 뿐이다. 꽃이 아직도 나를 원망하는 마음이라면 꽃은 빨리, 그런 나를 이해하고 꽃은 영원히 아름답다고 믿는, 변하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이나 탓하며 어서 떠내려 가야 할 일이다. 한 번 더 말하지만, 사람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저 생긴대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장미꽃 같이 감성이 풍부한 사람을 호박꽃 같이 무덤덤한 사람으로 만드는 그런 교육은 내 사전에는 없다. 꽃을 꺽은 책임 같은 건 내게 묻지 말라. 꽃이 거기 있었으므로, 나는 그 아름다움에 반해서 꺽었을 뿐이다. 꽃은 모름지기, 아름다울 때만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