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영혼과의 대화

해선녀 2004. 4. 13. 10:30

 그렇게 오랫동안 한 식구처럼 지내던 강아지가 죽고 나서 내내 그 강아지가 옆에서 자박자박 걸어다니는 것 같아 마음이 심란하다고 하시더니 지금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제가 전화했을 때, 옆에서 공공거리는 소리를 내던 그 강아지...저희 집 검둥이의 새 주인 찾는 광고는 아직 내지 않았어요. 남편이 저보다 나중에 귀국할 거니까,  아마 그 때 광고를 내긴 내야 되겠지요 목사님 댁은 원래 개가 한 마리 있는데 사모님이 너무 바빠서 안되겠고...좋은 주인 만나기를 빌 뿐입니다. 지금 저하고 놀아 주지 않으니까, 발코니 긴 의자에 혼자 올라가 잡니다. 이별 연습은 어느 정도 되어가고 있답니다. 밤에는 발코니에서 혼자 자거든요. 헤어짐을 서러워하는 우리들의 모습,하나님은 그것까지 아름답다 하실까요?

 

저도 어머님 돌아가신 후 한참 동안, 어머니의 혼이 집에 머무는 듯하여 어떨 때는 놀라기도 했지요. 한국에 있을 때, 어떤 보석예술가가 그러더군요. 특히, 망자가 몸에 가까이 대던 반지나 필찌, 귀고리 같은 유품들은 세팅이라도 새로 하는 것이 좋다고요. 글쎄요...꼭 그렇기만 할지...그것은 그 망자와의 만남의 소중함보다도 그 보석만을 생각할 때의 이야기이겠지요? 저는 한국에서나 여기서나, 몇 대 조상이 지은 집에서, 그 분이 심으신 나무를 보면서, 그 분의 체취가 묻은 가구들과 책들과 물건들을 간직하고 사는 분들이  참 좋아 보입니다.

 

비싼 것은 없지만, 저도 시어머니의 물건들과 옷들을 몇 개 가지고 있는데, 지금은 어머니가 늘 끼고 계시던 옥반지 하나를 끼고 있어요. 서울서부터 끼고 다니다가 여기 올 때 그냥 끼고 왔지요. 그것은 제가 25년 전에, 미국 처음 올 때, 어머니께 이별의 선물로 귀고리와 함께 만들어 드렸던 것인데, 남들이 보기에는 별것 아니지만  저는 이것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기억과 더불어, 제가 고생하던  그 시절의 많은 기억들을 떠올리게 해 주는 귀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서로 몸과 생각으로 만났던 영혼들이 죽어서도 어떤 여운으로라도 남는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님은 물론 크리스챤이시니까,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실 지 모르지만. 그 영혼과의 못다 한 이야기, 그것이 미움이든, 그리움이든, 그것을 내 마음으로나마 풀어낼 수 있다면, 그건 다행한 일이 아닐까요?

 

심약해져 있을 때,  순간적으로나마, 무섬증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  저는 그럴 때, 아직 하나님에게 기도할 정도는 못되고 마음 속으로 그들과 대화를 한답니다. 사실은 제 자신과의 대화일 뿐이지만요. 무섬증은 어쨌거나, 대화의 단절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어 달 전, 샐리 쇼에서 귀신 이야기를 하더군요. 혹시,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귀신을 실제로 보고 그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지요. 귀신이나 영혼이 실재하는가의 문제는 그만 두고, 그런 심리적 상태에서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에 포인트를 두는 프로였어요.

 

그 중 한 출연자는, 그녀가 사랑했던 쌍둥이 여형제의 환영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그 영화, 사랑과 진실에서처럼, 늘 영혼이 나타난다는 것이었어요.. 대담자로 나온 의사(심리학자엿던가,)의 이야기에 저도 동감했지요. 생전의 만남에 대해 무엇인가 더 생각할 일이 있으면 그것을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만나서 그 미진했던 영혼적 관계를 스스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그 망자가 사랑하던 사람이라면, 더구나, 그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들을 더 소중히 간직하고 그것에서부터 더 많은 생각들을 이끌어 내어 당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기억할 만한 물건을 몇 개쯤 간직하면 좋을 것이라고 충고하더군요.

 

문제는, 당신이 거기에 갇혀서 괴롭다고 생각한다면 우선,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이미 문제해결의 출발이며, 당신은 그럴 때마다 그 영혼과(사실은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주체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 당신이 당신인 것으로부터 새로운 당신을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이지요. 매우 불행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계속되었지요. 화상이 심한 한 흑인 소년은. 여섯 명의 동생들이 이웃집에서 불에 타 죽었는데,그들을 구하려 들어갔다가 실패하고 돌아 나왔을 때의 기억으로 인해 괴로워했던 이야기, 영국의 어느 고아원에서 고아원 원장에게 오랫동안 성적 학대를 받으면서 자라온 어떤 청년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프로그램은 과거에 그랬던 그들이 그 후로, 그런 정신심리적인 치료의 과정을 거쳐 이제는 건강한 자아를 다시 회복하게 되었다는 후기였지요.

 

정신과적으로는 어떻든 간에, 죽은 영혼과의 만남이 계속된다는 것 그 자체가, 참 귀한 것 아닌가 싶엇습니다.   아직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내게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말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그 지나간 만남을 그리워 하거나 괴로워 하거나의 대상적 과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새로운 자신을 건져 올릴 수 있는 그릇인 셈이지요. 산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과 본의 아니게, 혹은 본의로 많은 만남과 이별을 계속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그 물리적인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만이  아니라는 건  죽은 사람과도 마찬가지일 것이지요.  다시 또 다시, 그와의 만남을 되새기며 내가 그 안에,서, 그가 내 안에서 새로이 태어나는 일, 살아 있음은 내가 만나고 헤어진 모든 영혼들의 유산과 만나는 일이고 나의 죽음은 또한 그 유산을 누군가에게 물는 일이 아니던가요...그것이 빛나는 보석도 도자기도 아니더라도...

 

검둥이 녀석과 헤어질 날이 다가올수록, 이전의 많은 다른 녀석들과의 헤어짐도 그 안에 담아서 다시 헤어지고 어저면, 이 다음의 다른 녀석과의 만남에도 이 녀석과의 만남과 헤어짐이 얼비쳐 들 것 같습니다. . 지금처럼 저렇게 발코니에 앉아 새를 기다리며, 공원에서 공을 던지고 물고 오며 나눈 우리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다시 어느 햇볕 따사로운 발코니에서 자작 자작 발소리를 내며 다가 와 나의 새로운 친구에게 말을 건네겟지요. 야, 너도 공을 주우러 가다가 갑자기 호수에 풍덩 뛰어 들지 마. 오리들이 놀란단 말이야....ㅎㅎ 유난히 물을 좋아하는 녀석, 아무래도 호수 가까이에 잇는 집에 녀석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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