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강물처럼 흐르다

해선녀 2004. 4. 12. 02:51

 

 

언제, 어디까지라고 확실히 정하지도 않고 슬슬 돌아다니다 보니 7박 8일이었어요. 그저께 밤 늦게 돌아와 돼지처럼 쓰러져 자고, 어제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종일 어정거리다가  저녁에는 정경화를 보러 신씨내티 심포니홀로 갔습니다. 오늘 저녁에 또 갑니다. 일곱 분을 초대해 놓았거든요.

 

아까, 표를 싸게 사 놓았어요. 연주 당일 아침 열 한 시에서 오후 두시 사이에 반값으로 파는 ziptec을 이용하지요. 일곱시쯤, 한 시간 일찍 가서 홀 건너편의 공원을 지나 공용주차장에 파킹하면 여섯 시부터는 미터기에 동전을 먹여주지 않아도 되어서 좋고, 아직도 벚꽃이 듬성 듬성 남아 있는 공원을 걸어 들어가서 홀 라비에서 연주하는 하프음악도 듣고 스낵도 맛보고 그러지요.

 

정경화는 전에는 너무 신경이 곤두서고 여유가 없어 보였는데, 이젠 넉넉한 자유로움 속에 익살끼까지 맘껏 풀어냈어요. 턱 받치고 앉아 보고 있다가 기립박수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슬그머니 일어 서면서 왜 눈물이 핑 돌던지요.


신시내티 심포니는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만들어진 심포니인데, 그 홀은 1800년대의 건물이랍니다. 여기 오래 된 다른 많은 건물들처럼 아직도 넉넉하고 우아한 자태를 가진 아름다운 건물이고 2차선 밖에 안되는 정면 도로에는 일부러 전차 선로가 그대로 남겨져 있습니다.


워싱턴에서는 케네디 센터에서 내셔날 심포니의 공연이 있었는데, 너무 비싸고 잘 모르는 사람이어서 대신 내셔날 챔버 연주를 친구 부부와 함께 갔습니다. 친구가 뜻밖에도, 요즘 서구에서는 클래식 좋아하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상을 시대적 경향이기 보다는 음악 자체의 변화라고 말했습니다..


라틴어도 사람들이 더 이상 쓰지 않는 글이 된 것처럼 음악도 그렇게 변하는 것인 데도 그 뒷물을 켜고 있는 동양 사람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그 부부와 우리는 격렬한 논쟁을 했지요. 자신도 수학을 했지만 컴퓨터 사이언스로 바꾸었던 사람인데, 뛰어난 천재들인 두 아들들이 답답하게도 물리학과 수학을 아직도 고집하고 있는데 대한 애정어린 반감이겠지, 우린 그렇게 이해하고 싶었지요.


철학, 수학, 음악이 유행에서 멀어진다고 그 본질적인 가치가 사라질 것인가.... 클라식은 시대적인 의미보다는,음악의 본질적인 의미를 추구한다.....클래식은 영원하다.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은 어차피 소수이다... 소수의 사람들이 지금도 끊임없이 그것을 창조하고 있다.  '돈이 안되는' 길이라는 것을 그 가치와 혼동하지는 말자...우리는 대충 그렇게 논박했지요.얼핏 보면 그것 역시, 클래식음악을 고집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옹호하려는 논리에 불과했던 지도 모르지요.


친구 부부와 버지니야주쪽에서 포토맥 강의 다리를 건너기만 하면 되는 워싱턴에 들어서서 링컨 기념관 앞에 새로 만들어진 한국전쟁 기념 공원에 먼저 갔습니다. 육십만이 넘는 유엔군 사상자가 있었다고 되어 있더군요. 새삼, 놀라면서 그런 전쟁을 치러야 했던 한국이 부끄러웠어요. 제퍼슨 기념관 앞 공원과 넓은 호수를 빙 둘러 핀 벚꽃은 대단햇어요. 일본이 왜 그 꽃을 저러이 선물했던가, 그게 미국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되지도  않는데 우리는 왜 그렇게 마음이 아픈지요...


뉴욕에서는 월드트레이드 부지-그라운드 지로를 들렸습니다. 그 많은 영령들을 위로하려고 붙여 놓은 그들의 유품들과 남은 사람들의 메모리 포스터들 앞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무리 속에서 우리도 사진을 찍고 나니 부끄럽더군요. 세상 물건 다 갖다 놓은 듯한 벼룩시장은 그낭 둘러만 보고 뮤직랜드에서 몇 개의 DVD를 사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가 허드슨 강의 자유의 여신상을 내려다 보면서,나는 왜 스스로 씌운 굴레로부터 자유롭지 못한가를 내내 생각했습니다.


센트럴 파크로 돌아가서 산책이나 더 하고 하룻밤을 더 묵으려다 일상의 저녁 죠깅을 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허드슨 강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보스톤 박물관에서는 오래 오래 옛사람들과 호흡을 같이 햇지요. 시카고 박물관에서 놓쳤던 인상파 화가 특별전에도 들어가 보고... 보스톤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녔지요. 보스톤 심포니 역에서는 공연이 없는 날이어선지 개찰도 없이 기관사에게 직접 돈을 내더군요. 오랜 집권 끝에 이번 여름에 떠나는 세이지 오자와의 송별연주가 끝난 직후였습니다.


전차가 아직도 느릿느릿 달리고 전선에 매달린 버스가 다니고 사람들은 매우 보수적인 복장으로 벚꽂길을 걸었습니다. 수선화는 워싱턴에서도 뉴욕에서도 그랬듯이 가는 곳마다 소복소복 심어져 자유로이 흔들리며 우리의 마음을 맑혀 주고 있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왜 성당 신부들의 성적 탈선이 일어났을까? 금욕적인 사회. 중세 수도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간의 본능을 너무 철저히 묶는 구교의 결혼금지가 본질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가 보수성향의 보스턴에 다른 곳보다 더 많이 내재해 있었던 것 때문일거라는 점에는 카톨릭인 친구 부부도 동의했습니다. 


메이 플라워 호가 정박하고 있는 플리머스 해변에도 갔네요. 보스톤에서만 볼 수 있는 보수의 고향. 메이 픞라워호도 타 보고 당시의 인디안 부족이었던 원파노그 족들의 마을도 갔어요. 그 때의 분위기 그대로 연출하는 롤 플레이를 하는 인디언들에게 처음에는 깜빡 속았지요. 우리의 현재형 질문에 그들은 모두 1627년의 현재형으로 이야기해 주고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아챘답니다.


하트포트의 고모님 댁에 들려 하루를 쉬고 ,나이야가라로 돌아서가라는 고종 언니의 충고대로 버팔로까지 결국은 올라갔습니다. 몬트리얼 호수를 건너면 카나다인데 이쪽 편에서도 폭포는 볼 만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클리블랜드를 지나게 되었는데,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가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전곡을 연주하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몰다우 강이 내내 나이아가라의 인상과 겹쳐져서 시간을 모르겠는 꿈속에서 저를 휘감고 흘렀습니다. 오늘 저녁 2부에 연주될 브루크너 협주곡도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강물처럼 흐르는 음악들이 좋습니다. 그 강물의 흐름 끝쯤에 우리는 신시네티에 도착하였고, 그는 마지막으로 저에게 우리 부부가 제일 좋아하는 저 수선화가 딱 일곱 송이 핀 화분 하나를 사주었습니다. 


신시내티 심포니는 브루크너가 키운, 말러의 그런 강물같은 대곡들을 잘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하답니다. 곳곳에 여울지면서 흐르다가는 고이고, 스며들고 한가운데로 휩쓸려 가서 도도히 흐르다가는 또 넘쳐 흐르고, 폭포로 떨어지고, 또 다시 영원처럼 가라앉고...오늘 저녁,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저는 그 강물의 어디쯤의 포말 하나로 흘러 가고 있는 저를 볼 수 있게 될른지요...


 


           2002.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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