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관계미학
사랑한다고
처음 이름 불렀을 때
그 떨리는 가슴 살며시 열 때,
아, 그 때 우리는 비로소
큐피드의 화살을
날려 보낼 수 있었지.
이제 우리는 날마다
그 화살을 다시 쏜다.
오직, 사랑,
한 마리 참새가 되어
우리는 속삭인다.
아침에 I love you
저녁에 I miss you
밤에도 I adore you....
너와 나의 사이에
관계의 이름조차도 지워진
오직 사랑만 있는
그런 tkdl가 되었다.
나는 요즘 온갖 황당한 사람관계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Sally Show를 즐겨 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휴머니즘 문화를 새삼스럽게 만나면서 저런 말을 하나 생각해 본다. 사랑의 관계미학. 니하고 내하고 무슨 관계인가? 그냥, 사랑하는 관계지. 그래도 무슨 관계인가? 오직 사랑의 관계라니까.....이런 관계를 가리키는 말.
'자식이 아니라, 웬수다' 라고 소리치며 적개심으로 살아왔던 어느 여인이, 기어이 그 남편을 사랑한 딸이 낳은 베이비를 끌어안고 그 이름을 처음으로 불러 주었다고 한다. Darling, my sweet! 이라고! ..그 후, 그 베이비가 어엿한 처녀로 자라났지만 자기정체성이 상실된 혼란 속에서 괴로워하며 지냈는데, 그 처녀가 오늘, 그 여인과 함께 나와서 ' 나는 나', 자아를 회복하고 비로소 자기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 관계에 있는 사람 사이에도 사랑이 가능해졌다니, 놀라웠다. 그들의 관계는 그러면 무슨 이름일까? 어머니도 아니고 할머니도 아니고, 딸이면서 동시에 손녀인 관계....나 같으면 그 아이를 끌어안을 수 있었을까? 나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한 가지 틀림없는 것은, 그들은 이제, 비도덕적(non-moral: 관습적인 도덕성과는 무관한 또 다른 관계에서 그들은 '오직, 사랑뿐인', 그런 사랑의 관계미학을 터득하였다는 것이다. 그 처녀에게, 더 이상 어두운 슬픔만이 아닌 아름다운 관계로 그들의 관계가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는 것. 그것은, 어떤 존재에게든지, 그는 이 세상에서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과 그런 사랑이 우리에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엇다 거기에는, 어른을 앤, 마리라고 '그 이름을 직접 부르는 영어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할머니 이름을 대놓고 부르지 못하는데 말이다. 언어가 그 문화 아닌가? 나는 미국 몬화를 '쌍놈 문화'라고 생각한 점이 없지 않았는데, 이런 점에서는 매우 수긍이 간다.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마는..
어쨌든, 어떤 사람끼리도 휴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나 사랑을 회복하기에 용이한 몬화가 부럽다. 그 이전에, 그런 '쌍놈'의 성관계가 가능했던 것도 같은 나라엿고, 그래서 그 비도덕성, immorality도 함부로 자라 왔다는 논의는 일단 접어 두고.... 그것은 저 경우엔 그 개인들과는 무관한, 이미, 어쩔 수도 없는 지나간 일이고, 그 때의 관계가 어떻게 부실햇을 지라도, 그들에게 남은 일은 '오직 사랑'이라는 묘약으로 서로의 영혼을 치료하는 일, 그것뿐이다.
오늘도 사람관계에서의 하찮은 일로 속을 끓이며 미움이 쌓이려던 나를 부끄럽게 하였다. 오직 사랑! 지금, 내가, 여기서...할 수 있는 일은 그런 관계로의 회복 분이다. . 내가 아직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2002.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