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형이상학
사월은 잔인한가? 이 질문에 선뜻 무어라고 대답하겟습니까? 잔인하다면 잔인하고 아니라면 아니고...그러시겠습니까? 그것은 사월의 기억 때문입니까, 지금 현재 내 앞에 벌어지고 있는 세상, 사월의 인상 때문입니까?
산다는 것은 세월 따라 흘러가는 것인가, 세상에 머무르며 세상을 머금는 것인가? 이렇게 말하면, 곧장, 흘러가며 잊을 건 잊어버려 가며 머금을 건 머금는 것이지, 이런 말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어떤 것을 잊고 어떤 것을 품어야 하는가. 그것이 다시 문제로 남지요. 그야, 가치로운 것은 품고 쓸데없는 것은 버려야지. 그러면, 무엇이 가치로운가...끝없이 이어질 질문들...
사실, 그런 것들이 다 형이상학이지요. 형이상학이 어떻고 할 것 없이, 우리는 실제로, 그렇게 형이상학을 하고 있지 않을 수가 없지요. 우선, 잊으련다고 늘 잊을 수도 없고 품으련다고 늘 품을 수도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압니다. 잊은 듯했던 것들이 되살아나고 품은 듯했던 것들을 어느 새 잊어버리고...마음이란 놈이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그렇다는 것 자체를 잊고, 너는 그 중요한 걸 어떻게 잊고 있는가, 너는 그런 쓸데 없는 걸 왜 품고 있는가, 원망하고 서러워하고 엎치락 뒤치락형이상학을 계속합니다. 그건 제 자신 안에서도 마찬가지지요. 우리는 그래서 갈등하다가, 그것이 불편하고 괴로우면 그 한 가지 생각을 아예 억제해 버리고 맙니다. 그건 아니다, 그건 내가 아니야, 하면서....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탄핵이냐, 아니냐를 두고 시끄러운 우리 사회처럼, 어느 사회나 다 보수냐 개혁이냐의 문제를 비롯해서 오만 가지의 마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니, 저렇게 끓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on the Other Hand..." 라며, 지붕의 이쪽 저쪽에 딛고 서서 훼까닥 헤까닥, 파가니니를 켜던 장면...그렇지요, 그게 바로 우리 마음이지요.
변덕쟁이라구요? 맞습니다. 마음은 그렇게 여기 저기를 넘나들며 변하고 적응해가는 생물, 뱀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꼬리를 길게 끌며 도마뱀처럼 꼬리를 끊었다가도 어느 새 다시 자라나오면서, 마음은 우리의 행동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이드하는 것이지요. 때로는 우리 거동의 뒤안, 어느 곳에 또아리를 틀고 생각에 잠기며 품어 안으며 때로는 잠이 들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사월이 잔인한가? 사월은 잔인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나른한 권태이기도 하고...그 무엇인들 아니겠어요. 내 마음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흘려보내고 있고 무엇에 머무르고 있는가에 따라서는 하늘과 땅 사이, 어느 대답이 나올 지 모르는 것이지요...
그러면 그렇게도 마음이란 놈은 믿을 수 없는 놈인가? 언제 어느 발을 내밀지, 몸 따로 마음 따로, 그 속을 알 수 없는 놈인가? 생각해 보면 참 한심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표정을 갖추며 우리들은 말합니다. 나는 아니야. 내 마음은 일사불란, 확고부동이야. 나는 변덕쟁이도 언행이 다른 이중인격자도 아니야...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나 요지부동, 변덕을 절대로 부리지 않는 사람 한 사람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일수록, 어느 순간에 확 표변하면서, 나는 한 번 아니다면 아닌 사람이야, 사람은 흑백이 분명해야지, 하면서 별것 아닌 것 가지고도 대화의 길을 탁 끊어버리고 홱 돌아섭니다. 그것이 변덕이 아니고 무엇이지요? 참내...
아마, 정말로 절대로 변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철두철미, 아마, 뱀처럼 둔덕을 넘어가지 못하고 상처 투성이로 견디고만 있거나 철옹성처럼 문을 쳐닫고 그 안에서 외롭기는 혼자 다 외로운 사람이 아닐까요?
번뎍이라고 했으니 그렇지, 사실은 우리의 모든 언행은 마음 표면의 어떤 것, 마음의 대변자에 불과한 것이고, 마음 안에는 몇 겹인지도 알 수 없는 첩첩의 생각들의 뭉텅이가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 움직이는 뭉텅이가 어느 순간에는 다른 보푸라기를 일으키면서 다른 스파크를 일으킬 수 밖에요.
젊은이들이 대개 그렇듯이, 그렇게 역동적인, 생기있는 마음일수록, 그 끝은 매우 다양하고 불안불안하여, 보기에 따라서는 그 뭉텅이 전체가 쏙 뽑혀나가고 다른 것으로 확 바뀌어버려 영 엉뚱한 딴 사람이 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얘가 왜 이러나, 미쳤나, 돌았나...
그러나, 마음이란 놈이 그렇게 언제 어떻게 변할 지 모르는, 영 카오스만은 아닌 것이, 아무리 변한다고 해도 변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우리에겐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항심이라고 하나요. 저는 그 말도 사실은 함부로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마는, 뭐, 영원성이니, 절대적 가치니, 진리니, 그럼 비슷한 말들이 많이 있지요.
그런데, 그런 거창한 말들 말고, 우리 가장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무엇을 잊어버리지 말고 소중히 머금고 간직해야 하는가를 따지기 전에, 무엇인가가 가치롭다고, 가치로워서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고 말을 한다는 것, 그 자체에 대햐여... 에고, 군둥내나는 소리 제발 고만하고 오늘밤엔 좋은 영화나 보고 좋은 꿈이나 꾸라고요? 그래 볼까...그럼 오늘은 일단 이만하겠습니다요. 이 변덕...어쨌거나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면 지치는 법, 고만할게요. 좋은 밤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