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잔인한 사월에 2

해선녀 2004. 4. 1. 16:36

 

 

 

관념과 반관념은 상존한다. 사월이 잔인한 것은 그러므로 없던 그것들이 생겨나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밝은 햇살에 서로 입속을 드러내며 함께 웃는 것 때문이다. 꽃들이 저마다 있던 봉오리를 터뜨리듯...

 

관념이 대치하는 곳에는 언제나 중재자가 나타난다. 그런데 그도 그의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뿌리도 없는 '적당주의'식의 어중떼기 중용론인가, 참으로 그 양자와 자신의 입속을 지나 창자 속까지 칩 달린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눈을 가진 관념인가 그것이 문제이다,

 

관념과 반관념 뿐이겠는가. 나는 내 속에도 여러 관념들이 득시글거리고 있음을 안다. 어떤 것이 내 앞에 닥쳤을 때 나는 그 순간에, 내 목구명에서 가장 가까이에서 얼멍기리고 있던 관념의 그림자 하나를 붙들고 그 눈에 비친 세상을 주절거리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두렵다. 쏟아지는  봄햇살 속으로, 눈에 띄는 아무 옷이나 걸치고 나서듯이.

 

어제 요즘 한창 뜨는 어느 정치인이 이런 말을 했다. '육칠십대들은 집에서 쉬어도 좋지만 미래의 주역인 당신들 젊은이들은 이번 선거에 꼭 참여하라.' 그래서 우리들의 언어는 한참을 몸살한다. 상대방도 마침 나와 똑같은 관념- 코드라고 할까, 그 시계에 들어와 있지 않아 보이면. 한참을 헛발질하며 딩굴고 나서야 우리는 시계가 조금 열려서 서로의 입속에, 또는 눈 속에 겹겹이 쟁여져 있는 많은 관념들의 뭉텅이를 어렴풋이 감지한다.

 

'보수성향'의 세대들에 대한 그의 관념이 그런 식으로 노출된 것은 참 불행한 일이다. 그의 관념은 그것뿐이었을까. 그가, '육칠십대 어르신들도 미래세상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이 때에...'라고 말했으면 어땠을까...그것은 '위선'이었을까...그는 몰아치는 봄바람에 화답하며 피어나느라고 그 열기에 정신을 못차리도록 들떠 있었을까...

 

파고 들어가 보면, 우리들의 관념이 모두 다른 것들만은 아니다..마치, 섬들이 그 발뿌리를 차근히 뻗어내려가면 결국 모든 다른 섬에 도달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들의 말 끝을 따라가 보면 서로의 관념의 섬에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 복잡하고 다단한 세상에서 그 누가 그렇게 물밑에까지 일일이 내려가서 다른 섬들에 얽혀 있는 실타래를  풀어 주고 그러겠는가.

 

사실은 그렇게 일일이 끄트머리를 따라 가 볼 필요도 없이, 우리는 서로의 관념의 뱃속이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을 짐작하고 있다. 같은 땅에서 난 꽃들이나 사람들이나, 그 생리가 무에 그리 다르겠는가. 그런데도 일부러 그 뱃속에 대해서는 외면하면서, 노출된 관념의 입술만 가지고 옳다구나, 너는 나하고 '그렇게' 다르다, 너는 흑, 나는 백, 서로 내치기 바쁘다. 

 

내 섬 안에서만 해도 길은 항상 붐비고 경적소리가 요란하므로, 풍광은 달라도, 내 섬의 생리가  다른 섬의 그것과 별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타협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월을 피고 지고 해야 할 지 모른다. 사실은 그것까지도 뻔히 다 알면서, 그렇게 뒤웅박질을 오래 해야, 그렇게 해서 끝까지 살아남아야 '패권'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밀림의 생리가 아니엇던까?

 

설마, 그렇지는 않더라도, 꽃들은 저마다 제 향기에 도취되어 다른 꽃들의 향기를 맡을 겨를이 없는 것을 어쩌랴... 그래서 사월은 어쨋거나 잔인하다. 나는 오늘도 나와 그대의 언행 한 조각을 놓고 정신을 차리고 그 사면을 충분히 멀리까지 내다 보아야 한다. 자칫, 다 살피지 못하고 달콤한, 습관적인 내 관념의 세 치 혀로만 그를 처단할 수가 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죽이는 일이다. 아아, 올사월은 또 얼마나 잔인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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