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선녀 2004. 3. 29. 06:36

 

 

보라색만 보면 나는 늘 시어머니를 생각합니다. 노천명의 시, 천경자의 그림을 좋아하셨던 시어머니는 보라색을 무척 좋아하셨지요. 돌아가실 즈음, 딸을 어떤 아주머니로 알고, 며느리를 예젼의 어느 동료교사로 알고, 아들을 어느 교장 선생님으로 아시는지, 수줍은 웃음을 웃으시면서 ‘예, 예, 선생님,’  하시다가도 부은 손가락에 이젠 들어가지도 않게 된 연보라색 반지를 만지작거리실 때, 부은 얼굴에 미소가 번지면 함박웃음이 되곤 하시던 내 시어머니...


 

마지막에 큰댁으로 모셔졌을 때, 처음 얼마 동안은 내가 갈 때마다 ‘날 데려가라. 너만 가면 어쩔라고?“ 하시더니, 나중에는, 그런 저런, 아무 생각도 없는 어린 아기처럼, 오로지 음식만 찾으셨지요. 드릴 수 있는 건 입술에 축여 드리는 물 몇 방울 뿐이었는데... 천사였습니다. 그렇게 순할 수가 없는. 그 절박하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조차 다 잊어버리신.


 

낙상하신 후로 더해진, 곧 죽음이 온다는 불안. 9개월 동안 그것은 점점 더 깊은 죽음의 계곡으로 당신 스스로를 몰아 갔습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 날들의 불안조차 이제는 허망한 집착이었던 것을 깨닫기나 하신 듯,  마침내 망각의 바다에 도달하신 것처럼 보였지요.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좋아하시던 보라색은 어떻게 기억하셨는지. 잠시라도 혼자서는 주무시지도 못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만 찾으시던 그 불안과 공포의 나날들이 하얗게 다 바래버렸는데도 마지막까지 남은 그 보라색 소녀의 꿈.


 

차마 치우지 못하고 가지고 있던 어머니의 장롱을 정리하면서 보니, 평소에 즐겨 입으시던 보라색 옷들이 여러 벌, 앨범에는 벌써 옛날인데, 교정의 저 하늘거리는 연보라색 라이락 밑에서 하얀 칼라를 단 교복을 입은 아이들과 찍은 사진도 미처 꽂지 못한 채로 있었습니다. 경복궁 화랑가를 돌며 모아 두신 청보라색 천경자 복사판 그림도 몇 장 있었습니다.


 

입관식에서 마지막으로 뵌 어머니의 시신은 참 고왔습니다. 희로애락의 기억들과 감정들이 깨끗이 다 씻겨진 하얀 얼굴. 유난히 감성이 풍부하셔서 나같은 미련한 사람은 늘 그 높은 하늘로도 그 깊은 계곡으로도 어머니를 따라가지 못하고 먼 발치서 바라다만 보았었는데. 감정의 폭풍이 잦아들고 나면 어머니는 곧 내게로 돌아와서 손을 잡고 우셨습니다. 어머니의 한 많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다 옮길 수 있을까요?


 

우리는 마지막에, 모두 그렇게 말갛게 걷힌 얼굴로 돌아가는 걸까요? 나는 어머니의 보드라운 머리카락을 한없이 쓰다듬었습니다. 다 잊으시고 이제, 수정같이 맑은 마음으로 돌아가시라고. 그래도, 마지막 화장장으로 들어가는 어머니의 관 위에 어머니가 쓰시던 홍보라색 주머니 한 개를 얹어 놓았습니다. 아무 것도 드시지 못하시고 음식만 찾으시던 생각이 나서 그 안에 어머니의 틀니를 넣어서....

 

 

 

 

 

4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