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내 얇고 여린 삶의 기쁨

해선녀 2005. 12. 28. 05:59

 

 

 

나는  어지간한 슬픈 일을 당해도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 편이다. 젊었을 땐, 눈물도 왜 그리 흔했는지, 조그마한 슬픈 일에 대해 말만 하려 해도 눈물부터 터져 나와서 곤혹스러웠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몇며칠씩 잠을 못이루기도 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잠시 푸념도 해보지만 곧 잊어 버리고, 나는 또 건너 간다. 한 동안은 나서서 해명하거나 상황을 추스리려고 애도 썼지만, 지금은 그러지도 않고 모든 것을 내버려 둔다. 내 감성은 이제 마를대로 말라서 하모니카를 잃어버린지 오래인가, 때로는 스스로 삭막해지기도 한다. 

 

아닌게 아니라, 시어머니의 주검 앞에서도, 친정 엄마의 주검 앞에서도 나는 별로 많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어쩌면, 나 자신의 주검 앞에서도 나는 그럴 것 같다. 아니, 실제로, 몇 년 전, 패혈증으로 거의 죽을 뻔했을 때, 나는 정말 그랬다. 아이들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 아팠지만,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담담했다. 그래, 그렇게 열심히 살려고 애쓰더니...이제 이렇게 가는구나. 세상에 그런 사람들 많지...나는 그 때, 아흐렛 동안 계속된 고열 끝에, 환각상태로 들어간 것이었던가, 침대 위에 붕 떠서  내 몸이 내 아래에 누워 있는 것을 담담히 내려다 보았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나는 슬픔을 느끼는 순간, 오히려, 온세상에 수액처럼 배어 있는 모든 슬픔들을 함께 느낀다.  그럴 땐, 이 세상 모든 슬픈 존재들과 함께 흐르는 것 같다. 그냥, 한 방울의 빗물처럼, 혼자서 슬퍼 하고  혼자서 울 겨를도 없이,나는 나만의 것도 아니고 너만의 것도 아닌 슬픔의 강물로 유입되는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이 세상 모든 존재들에 대해 다 슬픔을 느낀다. 슬퍼하는 나에 대해서도, 나를 슬프게 하는 그 존재에 대해서도...

 

그런 일은 대개, 현실적으로, 어떤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해서 내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상황이 급변해 갈 때, 그럴 때도 엄습해 온다. 나는 그 상황에 슬픔이니 뭐니 하는 이름을 붙일 겨를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잠시,거부의 몸짓을 해보기도 하지만, 이내 가만히 멈추어 서서, 그 모든 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기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반드시 내가 어떤 슬픈 일을 당했을 때만이 아니고, 슬픈 뉴스를 들었을 때만도 아니고, 시시때때로, 무단히 오기도 한다.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마치, 내가 알 수 없는, 나와 같은 모든 다른 존재들-굳이 사람들만이 아닌-의 슬픔의 파장이 내게 너울처럼 다가와 나를 그 안으로 삼키는 것 같다. 나는 그럴 때, 때로는 감당할 수도 없는 눈물을 펑펑 쏟아내기도 한다. 이만하면 슬픔이라는 고상한 이름을 넘어서서, 가히, 우울증도 대단한 중증이다. 

 

그런 현상은 종종 내 몸에도 온다. 한밤중에, 무단히, 온몸이 습기를 머금은 솜처럼 부풀어 오른다. 웬일일까, 이 건조하고 삭막하던 몸에 훈기가 도는 것이 마치,우주의 어떤 자장이 산을 넘고 들판을 지나, 두툴거리는 자갈밭을 건너서 내게로 밀물처럼 몰려 오는 것 같다. 내 몸은 마침내 그 안으로 빨려 들어 가면서 동조를 일으킨다. 똘똘 뭉쳐져 있던 몸이 올올이 풀어지면서 나는 흠뻑 젖는 것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나는 이내, 이 또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힘이 내 안에서 비집고 올라 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내 안에서 은밀히 마주 올라 오는 어떤 다른, 꽤감 같은 파장을 감지하는 것이다. 소위, 자기치유력일까? 그것 역시, 원래는 나만의 것도 너만의 것도 아니었을 생명의 기쁨 같은 것이리라. 저 깊은 우주 어디에선가, 내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분양받았던, 오롯한 내 생명의 힘. 그것은 나의 더 깊은 안에서부터 솟아나  마침내 수면 위로 비집고 올라와서 잔물결이 되어 퍼져 나간다.

 

그것은 또한, 강을 벗어나 강 유역으로까지 밀려 나와서, 그 강물 가운데로 유유히 흘러 가고 있는 내 모습을.망연히 바라 보기도 한다. 내가 그 강물로 유입되어 온 그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또 하나의 내가 되어 나를 바라 보는 것이다. 그 강물은  이제는 더 이상,나와는 무관한 그런 강물이 아니다. 모든 유한한 존재들의 슬픔,그것은 우리들 삶의 바탕색이었다. 누구라서 그것을 벗어날 수 있었겠는가. 나는 그 강물로부터 관개되어 살지워진 옥토에서 살아 왔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나는 언제나 그 강물의 유역을 떠난 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항상 그 강물에 팽팽하게 잇대어져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먼 바다에서부터 이어진 조수와 간만을 따라 그  강물과 함께 보이지 않게 수위가 오르내리는 그 유역에 늘 존재해 있었다. 때로는 망각도 실종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곧 그 물줄기를 다시 찾는다. 여전히 내 안에서부터 마주 오르는 그 힘이 나를 받쳐 올려, 마치, 바탕화면 위로 떠오르는 아이콘들처럼 나는 수면 위로 떠올려진다. 강물의 인력과 그 부력은 딱 배꼽 아래쯤에서 팽팽하게 맞서서 긴장한 채 뒤집히지 않고 빠지지도 않고, 까딱까딱 균형을 유지하면서 흘러 가는 것이다.

 

나는 딱 그 만큼의 미묘한 삶의 기븜에 감사하리라. 온전한 기쁨의 물줄기로 도도히 흘러 가는 삶도 더러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그런 삶을 영위할 능력도 없지만,  바라지도 않는다. 만약 그런 삶이 어쩌다가 내게 주어진다고 해도, '개발에 다가리'라고나 할까, 나는 그 삶을 즐기지도 못하고 아마, 저 슬픔의 물줄기를 살살 달래고 어루만지며 흘러 가는 잔물결 같은, 유역을 숨어 흐르는 또랑 같은 지금의 내 이 얇고 여린 삶의 짜릿한 기쁨을 더 그리워 하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