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시내티의 저녁이 오는 풍경
노을 비낀 숲에서
씬시내티의 저녁이 오는 풍경
해선녀
2004. 3. 13. 15:01
검둥이를 데리고 하이드 파크에 가서 공던지기를 하다가 배낭 하나만 달랑 매고 긴
머리카락과 부시시한 수염에 얼굴이 몹시 창백한 집시를 만났다. 공을 주우러 가다 말고
검둥이는 온몸으로 인사하고 우리는 엉거주춤 눈웃음만 보내다가 형형한 그의 눈빛에
가슴이 그만 먹먹해졌다. 우리 주변을 서성거리면서도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 사람.
주머니 속에서 지폐와 과자를 만지작거리면서도 혹시, 배가 고프냐고 우리도 묻지
못하고 말았다..
차로 돌아오면서 뒤돌아 보니, 그 사람도 돌아보면서 느릿느릿 숲 저 쪽 길로 걸어가고
있다. 영 가버리려는 것이었을까? 우리에게 미안해서 자리를 피해 준 것이었을까?
아, 바보들. 끝내 말을 건네지 못하고 안개비 속으로 사라져 가는 뒷모습들만 서로
돌아 보다니. 어둑어둑 날은 저물어 오고 겨울비도 아니고 봄비도 아닌 알싸한 안개비에
젖으며 발가벗은 나무들이 지긋이 멀어져 가는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2002.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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