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아직은 감꽃 줍던 시절에...

해선녀 2004. 3. 1. 09:09

 

41811

 

 

 

 

엄마,

오늘부터 봄이지?

봄 맞지?

 

창문 밖에 햇살이 한가득 쏟아져 들어 옵니다.

벌써, 어릴 적 마당에 한가득

노오란 감꽃이 떨어졌던 시절로 달려갑니다.

아, 아직은 너무 이른가? 

 

새벽이면 아이들이 몰려 와서 다투어 줍던 그 감꽃,

문득, 감꽃을 줍고 싶습니다.

욕심쟁이 개구쟁이 남동생은 괜히,

아이들 다 주워가기 전에 자기가 주워 놓았다가

생색을 내며 내게도 나누어 주기도 했지요.

 

여고 친구들 싸이트에 어느 친구가 올린

사진 하나 옮겨 왔습니다.

근 40년 전,그 통통한 감꽃을 열 손가락에 끼고도

요즘 메니큐어 바른 손톱 들여다 보는 여인들보다

더 행복해 햇던 고1 시절이네요.

 

교내 무용대회에서 1등 한 기념사진.

제가 주인공인 것처럼, 발바닥은 새까맣게 해가지고,

가운데 떡 버티고 있네요.

흑인영가를 배경음악으로 해서

다 같이, 노예들의 합창을 춤추었던 건데... 

 

그 땐 그렇게, 봄이,

모든 억압된 존재들의 꿈이 해방되는 계절이라는

그런 의식이 제대로 있었을까도 싶지 않네요. 

그냥, 어른들이,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운운하니까,

나도 그냥, 그것만 종달새처럼 따라했던 것이지요. 

 

저 춤도 아마,

나 자신의 생각과 느낌은 막연한 채로

동작 하나하나를 안무해 주었던

어느 대학원생 선생님이 

하라는대로만 열심히 따라 햇을 뿐이지요,

 

어제 신문에서 유관순의 이화학당 사진을 보았어요.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면..." 

그 노래를 해마다 오늘이면 부르면서도,  

일제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그 이상 아무 생각을 못했는데,

이제는 다른 생각도 더 많이 하네요.

 

그 불타던 애국심, 그 초롱한 눈망울 속에서  

피어나지 못하고 져갔던  

그녀의 작은 꿈들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감꽃도 아니고, 산수유처럼 자잘하게

남몰래 픠어나던 작은 꿈들 

 

억압된 모든 의식이 깨어나는 건

평생 동안의 봄을 겪고도 안될 수도 있겠지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죽어야 고친다는. 

 

죽어서라도 깨어나기는 할른지요. 

내 속에 억눌려 있는 모든 것들이

꿈인지 병인지도 모르겠는 채로 사는 나는 언제야,

감꽃처럼, 산수유처럼 오종종 피고 졌지만

깨어나지도 못하고 사라져 간

내 안의 모든 나를 만날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