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에 관한 객설 1 : 비유의 물수제비를 뜨며
무엇인가 말을 한다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세상에 대해 이름표를 붙이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가 붙인 이름표를 가지고, 세상을 말한다. 굳이 명사가 아니어도, 무엇인가 우리가 말을 하고 있는 순간, 우리는 각자의 세상을 그 이름으로 그리고 있다. 호박꽃, 그것은 호박의 꽃이니까, 이름 자체에 '추녀'의 이미지가 붙어있다고 할 것이 없는데도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추녀의 이미지를 그 이름에 붙여서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추녀의 이미지를 그 이름으로 그린다.
그러니까, 모든 언어는 세상 그 자체가 아니고 세상에 대한 비유법이다. '호박꽃'의 경우처럼 그 비유가 이미 비유도 아닌 그 대상 자체인 것처럼 통용되는 비유의 경직성, 그것은 아무 생각없이,우리의 사고가 시장의 논리를 따르고 있을 때이다. 무릇, 이름이라는 것은, 그 대상에 처음으로 그런 이름을 붙여 내다 판 사람의 그림일 뿐인데도, 우리는 그 이름표가 그대로 붙어있지 않으면 그 대상을 눈 앞에 놓고도 마치, 품명 없이 포장된 상품을 바라보듯, 그것을 우리 안으로 접수조차 하지 못한다. 담배를 입에 물고도 담배를 찾고 있는 사람처럼 .
심지어는, 그 이름이 우리의 상상과 기대를 뒤집는 경우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이름을 놓지 않을 뿐 아니라, 오랫동안 가져 왔던 어떤
사람에 대한 이미지도,어느 날 들은 그 이름이나 직함 때문에 확
달라지기도 한다. 우리 자신의 눈과 귀와 순수한 느낌보다도, 그
대상에게 씌어진 이름을 더 소중히 하는 것이다. 동식물의 이름을
들으면서 절묘한 그 비유에 저절로 동감의 미소를 짓기도 하지만,
때로는, 왜 하필이면, 이 꽃을 요강꽃이라고 했을까, 왜 하필이면,
매발톱꽃이라고 햇을까, 그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 이름에 연연해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자꾸만 그 이름이 마음에 걸린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세상 속에 있지 않는,
영혼의 미아가 되어 있다.
어떤 것으로든, 이름을 확인하고 있지 않을 때. 우리는 손에 쥔 열쇠
를 찾고 있는 사람처럼, 이유없는 불안을 느낀다. 내 손바닥에 이미
얹혀 있는 행복조차도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이 그것을
그리워 한다. 누군가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지만. 집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문학과 예술은 말하자면, 세상과 나 자신을 향햐여 많고 많은
이름들을 끝없이 부르며, 그런 영혼의 미아상태를 벗어나려는
영혼의 안깐힘이다. 거기서 쓰여진 모든 이름들, 이미지들은
알고 보면,무엇인가 말하고자 하는 사람의 영혼이 그 말해진
대상을 잠시 응시하며 그 앞에 머물었던 흔적일 뿐이다. 그러고
보면, 그것들은 그 사람의 진짜 영혼을 읽기 위한 징검다리 같은
수단으로만 접수해야지, 거기에 갇히고 붙들려,그 영혼의 집을
그 영혼과 혼동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어떤 말이나 이미지를
부적처럼 모시고 다니는 예술은 결코, 영혼의 최고선에 도달할
수가 없으리라.,
그 비유들은 마치, 강 이 쪽에서 저 쪽으로 던져지는 밧줄처럼,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타고 영혼의 강을 건너 깊숙히 피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가능태일 뿐이다. 건넌다고 해도,
어제 저녁에 던져졌던 그 밧줄로 오늘도 건너지 못할 수도 있다.
밧줄은 그 때마다 새로이, 그 자신에 의해서만 던져져야 한다.
어제 저녁에 도달했던 그 곳까지 도달할지,어떤 알지 못할
물살에 휩쓸려 영 엉뚱한 데로 도달할 지, 그건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끊임없이 새로 던지고 또
던진다. 오늘은 튼튼한 쇠줄인듯 보이는 출렁다리를, 내일은
안개처럼 희미하고 꿈결같은 구름다리를 강 저 쪽을 향하여
던지고 또 던지는 우리들..
나는 오늘 아침, 안개꽃 같이 몽롱한 다리라도 하나, 강 저 쪽까지
놓고 싶은 마음으로, 비유의 물수제비를 뜨고 있다. 그대는 어디서
무슨 밧줄을 던지고 있는가? 불특정 다수에게 던진 그 밧줄을 하필
이면, 내가 엉뚱한 곳에서 잘못 낚아채어 요강꽃이라고 부르고 있지
않는지? 내가 요강꽃이라고 말해도, 당신은 그것을 방울꽃보다 더
예쁜 꽃이라고 생각해 주라. 어디로든 어떤 것이든 던지고 받고
있지 않고는 불안한 우리들, 이승의 악동들이여. '이건 뭐야?'
'저건 뭐라고 하는 거야?'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끊임없이
존재의 집을 지었다가 부수는 재미로 살아온 악동들이여, 우리는
왜, 비유의 강물을 건너지 못하고 떠내려 가고, 비유의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는 하면서도 끝없는 영혼의 행로를 그치지 않는
것일까?
이제 저 강을 건너고 나면, 나는 건너편 숲속에서 들려 오는 나의
붉은새를 쫓을 것이다. 두려움과 희열에 가득 차서 그 숲속을
헤매다 보면, 저녁노을이 드리워지고, 나는 그 붉은 노을빛 속에서
그 빛나는 붉은새의 깃털이라도 보는 환영에 사로잡힌 채,내
마지막 존재의 집 속에서 편안히 잠들게 될지도 모른다. 어느
눈내리는 저녁도 좋고, 꽃지는 저녁도 좋고... 그것이 또 다른
우상이었고,허당이었다고 한들, 어쩌랴... 등뒤에서 빙긋이
웃으며 바라보던 어떤 사람이 말한다. '그래. 당신은 오늘
거기서 잘 해 보시오, 나는 그럼, 다른 곳으로 가서 내
물수제비를 뜨려네. 나는 당신이 오늘 던진 수제비를 당신의
마지막 수제비로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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