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네 집

막내의 미국동부 여행기 4-1/ 보스턴 1

해선녀 2005. 9. 19. 00:04

 

 

 

보스턴 해변가의 어느 이름 모를 평온한 동네 골목길에 아침이 왔다. 지저귀는 새소리,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목소리, 차 소리가 잠결에 들려왔다.(어쩌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릴 보고 이상하다고 말하는 소리였을지도.) 무거운 눈꺼풀을 살짝 들고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보니, 차 옆의 가로수의 그림자가 짧게 드리워진 것이 보였다. “아니, 벌써 해가 중천에 뜬건가?”

 

휴대전화기의 시계를 확인해보니, 11시가 넘어 있었다. “워메, 또 늦잠이군.” 옆 운전석에 누운 선한이를 보니, 같은 소리에 깬건지 희미하게 뜬 눈을 부비고 있었다. 차 안이 더웠다. 옷은 땀에 젖어 있었다. 아침까지는 가로수의 그늘이 차를 드리워 시원했지만, 해가 중천으로 가자 그림자가 비켜져, 차가 더워진 듯 했다. 차 안에서 자보는 것도 처음이었는데, 상당히 찝찝하긴 했다. ㅡㅡ 그래도 생각보다 몸은 가벼웠고, 얼른 씻을 곳만 찾으면 컨디션은 좋을 것 같았다. ㅎㅎ

 

어제 본 해변의 해수욕장에 가면 씻을만한 곳이 있을 것 같아, 바로 시동을 켰다. 해수욕장에 가자 공중 샤워장 및 화장실이 우리를 반겼(?). 그리고 바닷물이 우리를 불렀(?). 아니, 언밀히 말해 선한이를 불렀나 보다. 같이 물에 들어가 놀려고 했는데, 나는 물 안에서 몸이 왠지 추워서 그냥 나왔다. 씻고 난 후 컨디션은 정말 좋아졌는데 물 속에서 계속 있고 싶지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같이 놀 아가씨도 없는데, 사내 둘이서 물장구 치고 놀기가 뭐했다고나 할까. ㅋㅋㅋㅋ 일요일 아침의 해변에 사람들은 꽤 많았지만, 왠지 신나는 해변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철이 한풀 꺾인 해수욕장 특유의 쓸쓸함이랄까. ㅍㅎ

 

바다가 얕았다. 녀석은 얕은 바다가 어디까지 계속 되는지가 궁금했던건지, 계속 바다 안으로 혼자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면서 계속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궁금했지만, 그냥 혼자 명상(?)을 즐기게 놔두고 난 발에 묻은 모래를 씻고 옷을 다시 입고 신발을 신고는 멀찌감치 앉아서 구경했다. 녀석은 한 50미터는 족히 되보일 듯 꽤나 멀리 들어갔는데, 바다물은 아직도 채 가슴까지도 차오지 않는 듯 보였다.

 

뒤에서 보고 있자니, 저 매사에 자신만만하고 당찬(자존심이랄지, 자신감이랄지, 아무튼 무슨 일이 닥쳐도 태연하고 담담한 녀석이다.) 패기의 사내도 저 끝없이 넓은 바다 안에서는 그저 작은 한 생물체에 불과하구나. 내가 백사장의 개미 한마리를 쳐다보고 있듯이, 그 어딘가의 누군가는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는 인간을 내려다보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후훗. 나도 명상이랍시고 이런 쓸 데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보스턴에서 여행자들이 빼지 않는 코스(특히 한국인들이 빼지 않는 코스일 듯), 아이비 리그가 생각났다. 시간과 기타 사정상 여러 학교를 가보는 것은 무리이고, 그 중의 대빵, Harvard를 다음 목표로 정했다. 말로만 듣고 책이나 tv로만 보던 하바드에는 대체 어떤 녀석들이 공부하거나, 가르치며, 혹은 기생하며 살고 있을지를 보러 가기 위해 한두방울씩 추적추적 비가 왔다갔다 하는 보스턴 시내로 진입했다.(지도만 보고 찾아가는 게 쉽지는 않아 또 길을 몇번 잘못 들고 물어서 갔다. ) 좁다란 도로 가에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웅장한 건물들이 한두개씩 보이기 시작했다. 대학가 골목길에 차를 두고 학교 앞 길을 걸어갔다.

 

Havard Bookstore(하바드 학생이라면 한번쯤은 들러봤을 듯한 위치에 백년이 넘는 전통의 오래된 작은 서점이었다.)라는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가자 tv에서 보던 낯익은 장면이 눈 앞에 펼쳐졌다. 카펫이 깔린 서점 안에 사람 키의 두배쯤 되어 보이는 나무로 된 책장들이 가지런히 줄지어 서있고, 그 책장들 사이사이로 벌레들이 카펫 위에 앉아, 혹은 거의 눕다시피 한 자세로 책을 파고 있었다. 표현이 좀 거센 듯 하지만, 정말 영화에서 보던 하바드의 공부벌레들 같은 외모와 옷차림에, 뭔가에 심취해 있는 듯한 눈빛으로 한 손에 책을 들고 있었다. 어떤 벌레들은 높은 책장의 먼지 쌓인 고서들을 꺼내려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그 위에서 또 독서삼매경에 들어가 있기도 했다. 서점보다는 당구장, 술집이 가득한 한국의 대학가 풍경과는 많이 달랐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무언가 나를 강하게 떠미는 것 같아, 얼른 집에 가서 책 보고 공부해야겠다는 다소 유치한inspiration을 느꼈으나, 한 편으로는 이런 더 유치한 변명같은 생각도 들었다. ‘책을 파는 공부도 좋은 선생이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책이 아닌 다른 것을 좋은 선생으로 삼아 배우는 사람들도 많다. 나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던가.’ 후훗, 써놓고 보니 진짜 공부 안하기 위한 핑계로 밖에 안보이는 말이군. 그 사람들의 눈빛을 옆에서 엿보자니, 나와는 뭔가 삶의 가치관이나 방식이 다른 이질감을 느꼈다는 얘기다.

 

그들은 학교에 가는 옷차림부터 우리와 다르다. 그들은 신촌 대학가(특정 부류를 꼬집어 미안하지만) 학생들의 옷차림과는 확연히 다르다. 구두를 신지도 않고, 화려한 옷이나 화장을 하지도 않으며, 거의 모든 학생들은 반바지에 티셔츠 한장과 운동화를 신고 있다. 여자들의 헤어스타일은 거의 다 생머리를 뒤로 질끈 맨 모습이다. 어딘가에서 줏어들은 얘기로는 그것이 그들의 문화 안에서는 으로 통하기도 한다고 한다. 마치, 야구선수는 야구복을 입어야 멋있듯이 화려한 외모에서 느끼는 멋과는 다른 그들만이 아는 그들만의 멋이라는 게 있다는 얘기이다.

 

아무튼 그 머리 아픈 atmosphere에서 빠져나와 캠퍼스 안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캠퍼스 안의 이것저것을 구경하고 이 건물 저 건물 들락날락 하면서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중에 진짜 하바드 학생이나 교수는 몇명이나 될까?’ 쓸 데 없는 궁금증인지도 모르겠지만, 개중에는 우리처럼 , 여기가 하바드구나!”하는 말을 얼굴에 써놓고 사진도 찍고 떠들석하게 다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보였다벌레 복장에 벌레 외모를 하고 한 손엔 책을 들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혹시 하바드 학생인 척(!)하는 사람은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이란 것이 참 묘해서, 뭔가 하나가 명성을 얻으면, 그 주위에 기생하는 존재들이 참 많아진다. 예를 들면, 하바드 대학이 유명하면, 하바드 앞 길가의 식당이나 서점 등의 가게들도 유명해지기도 한다. 사실 본질을 따지고 들자면 대학을 세우신 하바드 할아버지나, 거기서 공부하는 학생이 대단한거지, 그 주위에 식당 차려 먹고 사는 사람이 대단한 것은 아닐 수도 있겠는데, 그런 존재들도 없어서는 안될 감초같은 존재들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하다 못해 좀 더 비약하자면, 진짜로 내가 그곳에서 본 벌레들 중에 사실은 벌레가 아닌 한 녀석이 자신의 신분을 벌레로 위장해서 돈을 번다든지, 여자를 꼬신다든지, 뭐 이런 온갖 종류의 기생법이 존재할 것이다.

 

다른 얘기를 좀 하자면, 사실 학문이라는 것도 그렇지 않던가. 역사적으로 보면, 태초의 학문의 기원 내지는 할아버지 격이 되시는(이 분야에 대해 잘 아는 바는 없지만, 줏어 듣기로는 그러한 모양이다. ㅡㅡ)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나 공자, 맹자 할아버지들 시대에는 뚜렷한 학문의 구분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할아버지들은 그저 인간의 진리탐구 그 자체에 대한 욕구에 의해 수를 계산하기도 하고, 학설을 설파하고, 연구를 하며 살았던 것이지지금처럼, “난 이 담에 커서 훌륭한 과학자가 될테야. 그러니, 열심히 공부해야지.” 내지는 이제 내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어느 대학의 무슨 학과를 들어가서 이러저러한 자격증을 따야하고, 그것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이러저러한 사업안을 펼쳐 나가리라.” 하는, 진리탐구 이외의 다른 목적이 대학에 있지는 않았을 거라는 뜻이다.

 

 이것은 세상의 사람들과 문화가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며,  분업이 형성되면서부터 자연히 뒤따른 당연한 결과이지만, 한발 삐딱하게 서서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사람들은 이것저것 복잡하게 분류를 하기 시작하고 언제부터인가 수단이 목적화 되어버린 형태라고 표현하고 싶다. 다시 말해, 현대의 사람들은 진정으로 자기 안에서 솟구치는 욕구들과 관련된 목적은 살짝 접어둔 채, 그 목적으로 향하기 위한 수단을 가지기 위해 안달하고 초조해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주저리 늘어놓는 이유는, ㅋㅋㅋ

늦다면 늦은 스물여섯 나이에 아직도 세상에서 내 일을 찾지 못한 궁색한 변명(!!)인 것 같다. 그런 생각이라면 차라리 입산하여 도를 닦는 것이 나을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있는 이유는, 입산하면 아가씨들 구경도 못하고,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못하고…… 난 단지 유혹에 약한 의지력 없는 일개 속물에 불과한 인간이므로!!! 입산은 안한다. ㅋㅋㅋ

 

오늘밤은 무슨 (feel) 받았는지 시간인데도 말이 술술 계속 나온다. 이럴 때에 잠은 제쳐두더라도 생각을 기록해 두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너무 시간이 늦어 내일 일과에 지장을 초래하게 같은 관계로 나흘째의 이야기는 편으로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