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칩거의 겨울아침에

해선녀 2018. 1. 15. 08:58



온아침도,그랬지. 냉장고에서 삶은 계란 두 개를 발견했지. 소금에나 찍어서 먹을까? 까 놓고 보니, 이것만으로 아침식사하기엔 좀 그렇더라구. 치즈도 한 장 꺼냈지. 넘 팍팍하겠더라구. 귤 두 개를 깠지. 넘 시겠더라구. 샐러리도 벌써, 열흘은 되었겠네. 몇 토막 썰어 넣고, 오이와 양파도 마저 썰어 넣고도 너트도 생각나서 또 한 줌 털어 넣었지. Thousand Islands 소스를 부었지. 더 이상 넣으면 다 먹을 수가 없겠더라구. 내 살아 온 게 늘 이랬지. 하나를 하다 보면 둘을 하게 되고 둘을 하려면 또 셋을 안 할 수가 없었지. 일이 일을 부르고 이유가 이유를 불러, 어울렁 더울렁, 줄이 줄줄이, 한 접시 샐러드 같고 한 사발 국수 같이 살았지.

 

소파에 앉아서 알커피를 가는데, 배가 불러 그것도 힘들었지. 피 끓는 동안을 못 참고 소파에 누웠는데, 커피 마실 양반이 안 들어 오네. 응, 이거만 해 놓고 갈 게. 그는 마당 한 가득책더미들 속에서 책을 골라 책꽂이에 꽂고 있었지. 버릴 책들  중에 보니 제  연습하다 커피나 쏟은 얼룩이 그대로인 악보가 보이네. 아, 이것도, 나중에 보면  추억일 거야. 여기다 누가 커피를 흘렸지? 나는 이러며, 그 수백 번 반복해도 택도 없었던 그 연습들을 떠올리며 다시 연습해 보고 싶어질 거야. 그럼, 그것도 어디다 도로 갖다 넣어 둬. 그러면서 계속 책들을 만지고 있는 그의 얼굴이 아, 어릴 적, 그 마알갛게 빛나던 작은 오빠의 얼굴이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그 땐, 학생애창 100곡집이었나, 그런 책도 있었는데, 어디로 갔지?  그래, 우리집에도 그런 책이 있었지. 300곡집일 걸?


함께 뒤적이고 또 뒤적이다 보니 아,  어느새, 툇마루에 널브러졌던 책들이 다 사라지고 그도 사라지고 오빠도 사라지고, 거실 한가득 커피향 속 소파 위 이불 위로 햇살이 비쳐 있네.  냉장고에서 발견한 계란 두 개가 먼저 간 양반에, 오래 못 보고 지낸 작은 오빠에, 또 누군들 못 불러 오겠나. 그래, 오늘의 연습도 그렇게 갈 거야. 내 칩거의 겨울, 모두 다 같이 오락가락, 웅성웅성, 아, 요거구나 싶다가도 다시 삑사리도 내어 가며, 내가 하는 짓거리들, 생각들, 구비마다 내 사는 연습들을 돕다가,  하하 웃으며 창문 밖, 저 하얀 눈세상 어디론가로 흩어져 갈 거야. 그리고는, 내일도 올 거야. 모레도 또 올 거야. 산 영혼이나 죽은 영혼이나 함께 또 혼자, 커피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며, 함께 또 혼자 삶의 수수께기를 푸는 연습을 하러 올 거야. 산다는 건 연습, 끊임없는 연습일 뿐. 오, 고마워라. 아름다워라.  




음악을 끄시려면 왼쪽 최상단의 EXC 키를 누르세요. ^^


42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