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거의 겨울아침에
온아침도,그랬지. 냉장고에서 삶은 계란 두 개를 발견했지. 소금에나 찍어서 먹을까? 까 놓고 보니, 이것만으로 아침식사하기엔 좀 그렇더라구. 치즈도 한 장 꺼냈지. 넘 팍팍하겠더라구. 귤 두 개를 깠지. 넘 시겠더라구. 샐러리도 벌써, 열흘은 되었겠네. 몇 토막 썰어 넣고, 오이와 양파도 마저 썰어 넣고도 너트도 생각나서 또 한 줌 털어 넣었지. Thousand Islands 소스를 부었지. 더 이상 넣으면 다 먹을 수가 없겠더라구. 내 살아 온 게 늘 이랬지. 하나를 하다 보면 둘을 하게 되고 둘을 하려면 또 셋을 안 할 수가 없었지. 일이 일을 부르고 이유가 이유를 불러, 어울렁 더울렁, 줄이 줄줄이, 한 접시 샐러드 같고 한 사발 국수 같이 살았지.
소파에 앉아서 알커피를 가는데, 배가 불러 그것도 힘들었지. 커피 끓는 동안을 못 참고 소파에 누웠는데, 커피 마실 양반이 안 들어 오네. 응, 이거만 해 놓고 갈 게. 그는 마당 한 가득책더미들 속에서 책을 골라 책꽂이에 꽂고 있었지. 버릴 책들 중에 보니 어제 연습하다 커피나 쏟은 얼룩이 그대로인 악보가 보이네. 아, 이것도, 나중에 보면 추억일 거야. 여기다 누가 커피를 흘렸지? 나는 이러며, 그 수백 번 반복해도 택도 없었던 그 연습들을 떠올리며 다시 연습해 보고 싶어질 거야. 그럼, 그것도 어디다 도로 갖다 넣어 둬. 그러면서 계속 책들을 만지고 있는 그의 얼굴이 아, 어릴 적, 그 마알갛게 빛나던 작은 오빠의 얼굴이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그 땐, 학생애창 100곡집이었나, 그런 책도 있었는데, 어디로 갔지? 그래, 우리집에도 그런 책이 있었지. 300곡집일 걸?
함께 뒤적이고 또 뒤적이다 보니 아, 어느새, 툇마루에 널브러졌던 책들이 다 사라지고 그도 사라지고 오빠도 사라지고, 거실 한가득 커피향 속 소파 위 이불 위로 햇살이 비쳐 있네. 냉장고에서 발견한 계란 두 개가 먼저 간 양반에, 오래 못 보고 지낸 작은 오빠에, 또 누군들 못 불러 오겠나. 그래, 오늘의 연습도 그렇게 갈 거야. 내 칩거의 겨울, 모두 다 같이 오락가락, 웅성웅성, 아, 요거구나 싶다가도 다시 삑사리도 내어 가며, 내가 하는 짓거리들, 생각들, 구비마다 내 사는 연습들을 돕다가, 하하 웃으며 창문 밖, 저 하얀 눈세상 어디론가로 흩어져 갈 거야. 그리고는, 내일도 올 거야. 모레도 또 올 거야. 산 영혼이나 죽은 영혼이나 함께 또 혼자, 커피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며, 함께 또 혼자 삶의 수수께기를 푸는 연습을 하러 올 거야. 산다는 건 연습, 끊임없는 연습일 뿐. 오, 고마워라. 아름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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