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과 연구 /다나에비 페북에서
페이퍼 한 개를 지금 막 제출했다. 내 박사 논문의 한 챕터를 구성하는 실험을 바탕으로 한 글인데, 글을 마무리하다가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박사 논문을 처음 구상하던 단계에 페북에 썼던 열정과 초심이 가득한 이 글이 문득 생각이 나서 공유해 본다.
이 글에서 말한 "묘수"라는 것에 대해 나름대로 꽤나 긴 시간 동안 고민했고 그 답에 점점 더 가까이 가고 있 (다고 믿) 지만, 역시 박사 논문이라는 것은 사람을 정말 지치게 만든다.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지치고, 금전적으로도 힘든 생활이 박사과정 막판에 이어지고 있다. 이쯤에서 초심을 회복할 자극제로 이 글을 다시 읽어보며 다시 추진력을 얻어 본다.
다른 얘기인데, 이 글을 다시 찾아 보려다가 그동안 몰랐던 페이스북의 기능도 새로 알게 됐다. 오래 전에 올라온 포스팅도 쉽게 검색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니! 혹시 다들 알고 계셨는데 나만 모른 건가요?
바둑과 연구.
이런 제목은 어쩌면 바둑과 연구에 심취해 있는 학자에게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나는 바둑과 장기를 참 좋아하지만 그리 잘 두는 편이 못 된다. 바둑 프로기사 급의 실력과 취미 이상의 열정을 가지셨던 나의 아버지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바둑에 흥미를 붙이도록 노력을 하셨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어린 나는 그게 왜 중요한지는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저 그 게임 자체가 재미있는가 없는가만 고민하다가 별로 그렇지 못하다는 어리석은 판단에 바둑학원에 가면서도 바둑은 게을리 하고 그곳의 친구들과 놀기에 바빴다 (당연히 난 야구가 좋았다). 때로는 (아니 어쩌면 더 자주) 아이는 아이답게 그냥 부모님 말씀을 비판 없이 잘 따라야 한다.
유학준비를 마치고 어드미션을 받은 후 약 4-5개월 정도의 여유시간이 있던 2011년 봄 쯤에 나는 뜬금없이 장기를 (바둑은 해봤자 계속 지기만 할테니)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온라인 장기에 심취했었다. 아버지가 만약 그때 내 곁에 계셨더라면 정식으로 제자가 되기를 간청(?)하여 본격적으로 바둑에 입문했을지도 모르겠다. 정확하게 왜인지는 잘 모르지만 상대의 한 수 한 수 뒤에 숨어있는 의도를 파악하는 연습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세상의 모습과 그것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에 대한 관계를 들여다보는 데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믿음이 깔려 있었다. 물론 야구의 수싸움에도 그런 면이 다분히 깔려있고 그것이 야구가 주는 큰 매력들 중 하나겠지만 그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경우의 수라든가, 플레이어의 속셈이 게임 안에서 반영되어 표면에 드러나는 상관관계의 정도에 있어서는 장기를 따를 수 없는 듯 하다. 또한 9X9 픽셀 정도의 작은 판에서 말들이 정해진 동선으로만 다니는 장기나 체스에 비해 19X19판에서 어디든 내 돌을 놓을 수 있는 바둑에서 벌어지는 확률게임의 스케일은 차원이 다르다. 아버지가 왜 그 점을 내게 그토록 강조하셨는지 그때는 잘 알지 못했다.
박사과정 내내 나를 잘 돌봐주시고 있는 우리 과의 한 교수님과 몇 주 전쯤 미팅을 하다가 대단히 흥미로워 보이는 실험 아이디어를 내게 제안해 주셨다 (정말 감사 드린다). 내가 원래 짜려던 판에서 살짝 돌 하나 (아니, 몇 개)를 바꿔 충분히 새롭고 흥미로운 실험이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이 정확히 어떤 이론적 배경으로 19X19 이상의 드넓은 판에서 언어와 인간에 대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에 어떤 의미를 시사하는지에 대한 서술을 하는 것을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다.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의 느낌은 마치 장기나 바둑에서 기막힌 묘수를 볼 때의 느낌과 흡사했다. 그런데 그 묘수의 진짜 숨은 속셈을 알아차리기가 쉽지가 않다. 요즘은 그날 미팅 이후로 계속 이 고민이 머릿속의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관련연구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한 발씩 천천히 그 해답에 다가가고 있는 것은 느끼지만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것이 정답일지, 최소한 그 교수님이 품고 있던 그 저의와 일치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교수님이라는 분들은 거의 다 이런 종류의 질문에 대해 어느 정도에서 선을 긋는다. "This is a 'you answer me' question."이라는 교수님의 말 속에 지난 시절 아버지께서 바둑을 통해 내게 주시고자 했던 큰 가르침이 함께 뒤섞여 있다가 시나브로 내게 깨달음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일개의 독립적 능력을 가진 연구자가 되기 위한 문턱이 바로 이 지점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 대답은 다른 어떤 이가 줄 수도, 주어서도 안 되는 그 선이 그어지는 모양이다. 물론 나의 답이 반드시 내 선생님의 속셈과 일치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 속셈도 우리가 모두 공유하는 지식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합리적인 접점 위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마치 장기에서는 모든 플레이어에게 동일하게 포는 포를 건너뛸 수 없다는 큰 제약이 있음에도 기막힌 묘수는 항상 존재하듯이, 나는 나의 묘수를 찾고 내 속셈에 정당성이 충분히 있을 때에 나의 글이 완성 되겠지.
하! 페이퍼를 쓰는 기간에는 희한하게도 정작 페이퍼는 진도가 더디게 나가고 이런 잡글은 참 잘 써진다. 시험감독을 하는 뭘 하기도 애매하고 안 하기도 애매한 두 시간 동안을 보내기 위해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글이 이렇게 길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