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 욕심, 그리고...
오랫만이다. 우예 지냈노? 여긴, 오늘, 박근혜 첫 정식 재판이었다. 지 손으로, 플라스틱 집게핀을 사용해서 올림머리를 기어이 하고 나온 모습이 참 짠했다. 죽는 순간까지도 그 곧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군인정신으로 가겠다는 것인가?
며칠 전, 양평집을 두 번째로 세놓으면서, 책장, 장식장, 서랍장 등, 일부 짐을 용인으로 가져 왔다. 소파, 에어콘, 돌침대, 장농 등은 이 사람들이 그대로 쓰고, 가전제품들, 책상, 식탁 등은 지인에게 주었다. 가져 갈 짐만 빼어서 가라고 해도, 기어이, 우리 짐까지 옮겨 주고 당일로 완도로 간다고 그 지인이 데리고 온 사람들이 너무 엉터리여서, 아무 것도 받치지 않고 짐을 마구 끌었던 탓에, 마루가 너무 많이 상해서 아주 속상하다. 비용은 비용대로 들었다. 그 지인에게 좀 책망을 했더니, 욕심이 너무 과했다고, 정말, 죄송하단다. 사람의 능력과 의도와 관심을 못보고, 그에 따른 일의 결과를 예측하고 미리 단호한 결단을 못내리고 질질 끌려 간 나야말로, 욕심에 더하여, 바보였다.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의심도 문제지만, 무조건적인 신뢰나 기대도 더 큰 문제일 수 있는 것을. 나도 좀 보탤 테니, 전체교체를 해달라고 요구는 했지만, 영세업자인 모양이고, 나도 너무 힘들 것이어서, 그 업자가 내일 견적 보러 오면, 땜빵수리로 갈 생각으로 있다. 4년안 퇴색된 부분과 새로 까는 부분이 색깔이 다르겠지. .
양평집 이번에 세든 사람이 그 집과 그 안땅을 합해서 싸게 사고 싶어 한다고 부동산이 그래서, 나도 요즘, 생각이 많다. 다나네가 오면, 이 집에서는 같이 살기엔 좀 좁은 것 같아서, 지들이 이 집 살고, 내가 나가 살 작은집을 슬슬 하나 마련하려던 중이었는데, 요즘, 진짜 마지막인지, 내 눈이 너무 급하게 나빠지니, 이 참에, 그냥, 같이 살 수 있는 더 큰집, 서재와 옷방도 있는, 방 다섯 개짜리를 마련해 볼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된다. 요즘, 큰집들이 잘 안 팔려서 할인도 많이 해주지만, 이 집을 전세 놓고 가도, 여긴 너무 비싸서, 서울에서 더 먼 곳으로 가야 되겠지. 더 멀지만,자연에 더 가까운 곳. 마을버스 안 타고 아파트에서 1, 2백 미터 걸어가서 바로 경전철을 타고 서너 정거장 가서 내가 지금 타는 분당선으로 환승하면 되는, 내게는 더 편리한 곳을 가 보기도 했다. 여기는 곧 거실앞 전경을 반쯤 가릴 아파트가 또 들어선다는데, 거긴 '절대로' 그럴 일 없다는 절대농지와 그 건너편 산이 거실전경이다. 가까이 움직이는 사람들과 자연을 다 볼 수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5층. 거실앞에 서 있는 소나무들도 대견하고 정답다. 양평을 안 판다면, 돈도 좀 무리를 해야 하고, 은행융자도 조금 더 받아서 이자도 돈십만원 더 부담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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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는 우리 동 외엔 거의 다, 높은 아파트가 장승들처럼 전경을 가리고 둘러 서 있어서 싫다. 양평집도 양자산을 전면에 두고 바라 보아서, 그가 한 눈에 반했었지. 넌 그 집엘 못 가봤구나. 사람들은 그 동네서 제일 작지만, 제일 이뿐 집이라고들 해 주지.하지만, 내가 거기서 혼자 살기는 너무 어렵다는 게 문제. 나는 왜 이리 욕심이 많노? 전부터 집은 작아도 전망은 좋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지만,이젠, 자연의 품속에 안기고 싶으면서도 교통은 편하고 싶고, 집까지 더 큰집을 가져 볼 생각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나이에는 집을 줄인다는데. 암튼, 이 참에, 양평집을 정리해 볼까 했더니, 이사 도우러 왔던 그의 제자 부부가 극구 말린다. 내 고집이 그래 왔지. 그 집을 그의 기념관으로, 최대한 오래 지키고 싶다고.그들은 은행이자가 아무리 높아도 부동산값 오르는 것 못따라 간다고. 정 힘들면, 당분간, 작은 집으로 옮겨서라도 좀더 버티다가 다나네가 오면 이어갈 수도 있고, 그게 어려워지면, 제자들이 인수라도 하겠다고까지 말한다..ㅎ
암튼, 내가 왜 이럴까? 다나네가 오고 나서 천천히 생각해도 될 것을 왜 이리 서두르느냐고. 다나네가 와도, 직장이 어디가 될 지도 모르고, 영 안 올 수 도 있는데, 뭐에 꼴리고 휘둘리는 사람 같다. ㅗ이는 것도 아니고, 안 보이는 것도 아닌, 내 눈이 어중간한 것 이상으로, 의미와 현실 사이, 내 존재의 어중간함에 대한 본능적인 반항인지도 모른다. 술취한 사람처럼, 몽롱하면서도, 아닌 척한다. 다나에비는 모든 걸 엄마 판단에 맡기겠다는데...
다나네는 일년쯤, 귀국이 미루어졌다고 내가 말했던가? 에미는 어제부턴가, 수퍼 사무실에서 파트 타임 일까지 시작했단다. 레나가 데이 캐어에 가 있는 시간이 많아졌나 보다. 아이들 키우는 데만 그리 골몰하더니, 그 만큼 퀴워 놨으니, 이제 슬슬, 자신의 일도 찾아야겠지. 전부터, 공부도 좀 해보라고 했지만, 그건 다음 기회로 미루겠단다. 그래, 너나, 나나, 모든 때는 언젠가, 자신이 정하는 것이겠지.
태오네는 오하이오주, 캔톤이라는 곳으로 이번 여름 이사하겠단다. 시카고와 워싱턴의 중간, 각각 여섯시간 거리, 아주 작은 도시지만, 우리가 좋아했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가 있는 클리블랜드가 45분 거리이고, 디트로이트, 피츠버그, 콜럼버스 등, 가까이 있는 큰 도시들이 많다네. 우리도 거기 신시내티에서 안식년 지내며 저랑 한 일년 같이 살았잖아. 지는 거기서 더 오래 전부터 공부해오던 선배누나 만나서 결혼도 했으니, 지들한테는 제2의 고향같은 곳이겠지. 주립대라서, 지금보다 연봉이 조금 더 적지만, '음악과도' 있는 예술대가 아니고, 음악대학이니, 전공자들로만 오케스트라를 구성할 수 있고, 시카고, 디트로이트, 신시내티, 클리블랜드, 메이저 심포니들이 다 가까우니 제가 원하는 음악을 하기에 좀더 나은 환경이겠지. 게다가, 산과 강과 호수가 있는 풍성한 자연환경이라니 더 다행이네. 지 건강도 그렇지만, 그 전부터도, 나는 시골학교에서 조용하게 음악선생하면서 살 수만 있으면, 그 이상 뭘 바라겠냐고 그랫었지.
십여 년전, 내가 너네집 갔을 때, 니가그랬었다. 클래식계의 전망이 죽어 가고 있다고. 그 때나 지금이나, 내 고집은 여전. '전망' 때문에 음악하냐고...ㅎ 그래. 정호 말이, 지금 미국의 중간급 오케스트라와 음악대학들이 점점 줄어들고 위축되고 있다네. 아주 하급 아니면, 최상급만 살아남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 중산층이 줄어들면 나라경제가 위태로워지듯, 클래식계도 이제 정말, 위기라고.. 이 학교도, 십 년전만 해도, 아주 잘 나갔다는데, 점점 학생들이 줄고 있다니, 얘가 또 리쿠르팅까지 신경쓰느라고 스트레스 많이 받을까도 사실, 걱정이지.하지만, 우야겠노. 지가 선택한 길, 감당할 만큼은 감당해야지. 아마, 저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아빠를 마지막으로 만났던 때였던 듯, 아빠와 나누었던 대화를. '니가 음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너는 알지?' '예.'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확신에 차서 대답했었지. 우리는 어쩌다가 모두 배고픈 일밖에 모르는욕심쟁이들인지...ㅎ
요즘, 문재인 정부가 하는 일들이 기막히게 좋다. 소통과 정의, 멋진 대한민국의 미래가 보인다. 오늘은 노무현 8주기날이기도 해서, 문재인이 추모사를 하고 있네. 온집안 가득, 양평서 온 추억의, 혹은, 기억도 잘 안나는 살림살이와 책들이 아직 널려 있지만, 뭐, 세월이 좀 먹나, 몇 날 며칠이고, 천천히 들여다 보기로 하고, 저것부터 가서 들어야겠다. 그야말로, 극적인 역사의 전환기를 우리가 살고 있네. 위대하여라. 이만,총총...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