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길이 있어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해선녀 2016. 5. 27. 06:30

얼마 전, 양평집에 가서 보니, 보일러실의 기름통 눈금이 1/4 정도. 지난 겨울, 마지막에 기름을 가득 채워 놓은 이후로는 가서 자며 보일러를 켠 날이 하루뿐인데, 이게 웬 일? 보안회사에 체크해 보니, 그 동안 드나든 카드키의 기록은 부동산과 옆집이 길어야 3, 4분씩만 있다 나간 것들뿐. 그 짧은 시간에 누가 기름을 훔쳐 갈 수 있단 말인가? 보안요원이? 의심을 하려다가 접는다. 집을 그토록 비워 두는 내가 잘못이지. 몇 년 전, 대형티비를 도둑맞고 나서 보안 시스템을 한 후로 기름이 없어진 건 이게 두 번째.

 

그를 기억하고 있는 양평집, Arete.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고집을 부려 왔지만, 어차피, 이젠 내 관리의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고 누군가에게 말했다가, 엉거주춤, 그가 아는 부동산에 전세로 내어 놓게 되었다. 가구들을 거의 그대로 사용해 달라는 조건이다. 한동안, 마땅한 사람이 없더니, 어제, 갑자기, 부동산에서 계약하자는 연락이 왔다. 교장은퇴하신 부부라니, 일단, 미덥다. 그잖아도, 여기 용인에서 일년 만에 처음 사귄 이웃 아가씨 친구와 내일 금요일, 양평 가서 하루 자기로 했으니, 그 날 보자고 했다.  부동산은 가계약금을 넣게 하고 잔금도 곧장 치를 사람이란다. 이사는 아이들에게 다녀 온 7월 초로 하면 좋겠는데, 하긴, 피아노와 책과 그림들, 이불과 옷가지와 소품들만 용인으로 가져 오고, 그 분들이 안 쓰겠다는 물건은 없애기로 한다면 이사도 그 안에 가능은 하겠지. 짐정리는 다녀 와서 천천히 해도 되니까. 그런데, 좋은 만남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한 편으로, 이러다가, 양평집과 영 이별하게 되지 않을지, 불안한 마음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정계약은 안될 수도 있는 거지. 나는 차라리, 그걸 바라고 있는 것 같다. 아, 이 어정쩡한 마음이라니...

 

집도 집이지만, 내가 안땅이라고 부르는 그 아랫땅도 아직 내겐 숙제처럼 남아 있다. 그와 내가 오래 전부터 텐트를 치고 드나들며 은퇴후의 전원생활을 꿈꿨던 안땅은 애초에, 도로사용승락을 받아 놓은 상태였으나, 그의 은퇴를 앞두고 가 보니, 새로 지은 그 아랫집의 정원이 그 길부분까지 다 차지하고 있었다. 부동산이 도로사용승락 사실을 숨기고 그 사람들에게 그 땅을 사게 한 것이다. 재판을 하면 100 프로 사용권을 되찾을 수 있다지만, 우리는 그럴 생각까지는 없었다. 항암치료 막바지 무렵, 퇴원하면 양평으로 가서 지내고 싶어 그 옆의 다른 땅을 사들여서 길을 내어 보려고도 하였지만, 엄청난 알박이값을 요구해서 숨이 답답하던 차에, 기적처럼, 안땅의 어깨쯤에 딱 4미터, 길폭만큼만 붙어 있는 터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환자복 위에 평상복을 겹쳐 입고 안땅보다 조금 더 높은 위치인 그 터에 올라 서서 양자산을 내다 본 우리는 탁트인 전망에 숨이 다 터졌다. 그는 운명처럼 단호하게, '여기를 사.'라고 말했다. 사실, 우리 형편에 그것은 너무 큰 무리였는데도, 우리는 감행했다.  그는 그 땅의 주인이자 부동산인 젊은이의 손을 잡고, '내가 여기 자주 오지 못해도, 우리 집사람이 집을 잘 지을 수 있도록 잘 도와 주십시오'라고 했다.

 

그랬던 그가 그 지붕이 올라가기 직전에 기어이 갔다. 사람들은 모두 거기서 혼자 어떻게 사느냐고, 그 집과 안땅을 모두 처분하라고 했다. 한동안 주춤하고 있었지만, 나는 결국, 마당 앞자락을 엿가락처럼 길게 백평쯤을 잘라내어 집입구에서부터 안땅까지 들어가는 길을 만들고, 마당에서 그 길로 바로 내려가는 돌계단과 작은문도 만들어 막막하였던 우리들의 첫꿈의 땅을 새집과 새길에 이어 붙였다. 태오네는 한국에 와서 살 생각이 없는데도, 얘들이 그 곳에 조그만 음악까페라도 하나 만들어 친구들과 연주하며 사는 모습, 다나네도 어디서 살게 될 지, 아직은 전혀 알 수 없는데도, 텃밭을 뛰어 노는 다나와 레나의 모습도 나는 상상한다. 아침마다 양자산을 품고 떠오르는 안개처럼 막연하고 비현실적인 꿈.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어디서 어떻게 살게 되어도, 그 마당에 그와 함께 서서, 그 산의 웅자를 바라보던 그 마음으로 살 것이라는 것. 

 

6월초에, 태오네에서 모두 모이기로 했다. 나는 일년에 한 번쯤, 미본토나 하와이로 애들 보러 가고, 아이들도 각자 따로 한국에 들락거리기도 하지만, 아버지 가신 지 거의 7년, 우리가 다 모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태오와 준오는 사촌 여동생들을 처음 만난다. 멀리 떨어져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새삼스럽게 놀란다. 그래도, 핏줄이라는 게 그리 당기는 것일까? 태오네가 다나네 비행기표까지 이번에 다 마련했다. 아직 학생신분인 다나에비는 부담스러워 하지만, 나는 다음에, 너네도 돈을 벌면 형네를 초대하면 되지, 했다. 글쎄, 다나네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며 그럴 수 있게 될까?

 

길이 있어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서 그 길이 있는 것이다.  소설가 이외수가 말했다고 한다. 맞다. 어느 것이 길인가는 답이 없다. 길은 내가 길들이는 것. 그리고 거기에 길들여지는 것. 그리하여, 내가 그 길과 함께 만들어져 가는 것. 어떤 길이 내 길이 되었다는 건, 그 길이 내 사랑이자, 나 자신이 되었다는 것. 길이 없어 보이던 곳에 내가 길을 내고, 남보기에 빛나 보이든, 허접해 보이든, 내가 한 사랑을 이루었다는 것. 그러면서도, 매일 아침 끊임없이, 오늘, 이 길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왜 거기로 가는가? 이런 질문을 그치지 않는다면, 내가 어제와 똑같은 길을 가든 다른 길을 가든, 그 길은 매일 아침 나에게 새로운 답을 주는 새로운 길이요, 새로운 사랑이다. 나는 그 사랑에 내 소망, 내 믿음, 내 가치, 내 노력, 내 절망까지도 다 건다. 나는 그 사랑 안에서 행복하고, 그 안에서 내 존재이유를 찾으며 그것을 통해 내 영혼을 본다. 내가 절망한다면 그것 때문에 절망하고, 내가 다시 일어선다면 그것 때문에 일어선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그것을 향해 간다. 그리고, 종내는 그것 자체가 된다. 

 

그러니, 제발, 가시적인 대상들 자체에서 그 길을 찾지 말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속에는 내가 없다. 내 영혼을 보려면, 그것들 자체가 아니라, 그것들을 내가 어떻게 대하는가를 봐야 한다. 나는 내 영혼으로 세상을 산다. 우리가 아직 서로의 영혼으로 만나지 못한 것이 조금 불운일 수는 있어도, 그것으로 우리가 부끄러워 할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영혼을 잘 챙겨야 한다. 내 길이 어디로 어떻게 이어지고 스며들고 퍼져가서 세상을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아무 것도 모른 채로 비껴 지나가고 있는지는 오로지, 내 영혼의 문제이다. 내 영혼의 길은 내가 간다. 영혼으로 만나고 못만나고를 당장, 눈에 보이는대로만 말하지 말라. 우리는 공중을 날고 땅속을 헤집고 물속을 헤엄치면서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 길을 간다. 지그재그로, 왕복운동으로, 순환운동으로, 정지상태로도 우리는 간다. 시간과도 공간과도 무관하게 우리는 간다. 영혼의 잠행은 길이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감으로써 그렇게 있는 것이다. 물길처럼, 바람길처럼. 이어진 듯, 끊어진 듯 흐르는 저 바이얼린 선율처럼 그렇게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