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봄비 오는 저녁에 겨우살이차를 끓이며
해선녀
2016. 3. 5.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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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에 가서 붙으랴, 소나무에 매달리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오직, 손끝이 닿는대로 붙들고 매달리며 겨우겨우 살아낸 겨우살이, 스패니쉬 모쓰, 너의 태생은 원래, 자유였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이끼는 더욱 아닌 것이, 너울너울, 누군가의 장식도 되었다가, 사랑도 되었다가, 귀찮음도 되었다가, 겨우내 스스로 어두운 그림자가 되어 혼자 일렁이기도 하던 것이. 바람 따순 어느 봄이 오고 있는 날, 문득, 여행을 떠났다. 그 태생 그대로. 이유도 없이. 목적도 없이. 길을 찾지 못할 지도 몰라. 돌아오지 못할 지도 몰라. 떠나는 거야, 떠나 보는 거야.
선명성도, 양비론도 내게는 말하지 말라.중도도 보수도 진보라는 이름도 붙이지 말라. 아나키즘, 그 이름 역시, 내겐 너무 버겁다. 하지만, 세상의 무엇도 더 이상, 내 주인은 아니다. 세상의 어떤 만남도 이제는 더 이상 두렵지 않을 뿐. 어디서든, 내가 그렇게 깨어 있음, 자연, 그 자체가 내 존재방식이자 존재이유. 물구나무 서기로 가랴, 까치발로 걸으랴, 그 정수리에서 실뿌리 하나 나와 다시, 어느 나무가지에 드리워져 꿈을 꾸고 있거나, 오늘같이 봄비 오는 저녁엔 또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있거나, 주전자의 물끓는 소리 사이로 언뜻 스치는 한기와 외로움쯤이야, 자유, 그것은 봄비처럼 깊고 애틋하게, 스며들고 머금어지는 한 줄기 챠향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