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살이법, 아직도 탐색중
선능역에서 환승하며 젊은 청년에게, 분당 가려면 어디로 가죠? 물으니, 분당, 분당 어디요? 이런다. 어, 분당쪽으로 말이예요. 모란역쪽인가요, .아니면...? 이런, 바쁜 젊은이가 너무 친절하다. 아, 모란쪽이요. 그럼, 저리로 가세요. 분당 가는데, 모란쪽 말고, 다른 쪽으로 가는 선도 있다는 건가? 분당을, 분당선으로 알아 들었을까? 그랬으면, 왜 분당, 어디요라고 했을까? 분당선 어디요? 라고 한 것을 내가 잘못 알아 들었나?
구성역에서 내리면, 마을버스를 타야 한다. 봉천동에서나, 용인에서나, 마을버스 타는 사람들은 어쩐지 다 정겹다. 낯선 사람들이 각자 자기 생각에 잠긴 채, 노을을 안고 가다가도, 누구라도, 무슨 말이라도, 한 마디 하면 귀를 기울인다. 이번 역은 무슨 플라자역, 다음 역은 OO아파트 1단지역이라는 방송을 들으며, OO 2단지는 어디서 내려요? 물으니, 이번 역에서 내리세요, 기사님이 그런다. 그럼, 어정 중학교역은 어디지요? 하니, 그건, 다음, 다음 역이고요, 한다. 2단지하고 어정중학교가 한 정거장 차이가 아닌가요? 하니, 뒤에서 두어 사람이,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리셔야 해요. 소리친다. 기사님이 더 이상,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들어 줄 시간도 없이 버스는 그 플라자역에 섰다가 금새 떠났다. 어물어물,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려 보니, 아, 맞구나, 건너편에 P2, 우리집쪽 주차장 입구가 보인다. 그러면, 역이름이 왜 1단지앞일까? 2단지앞역도 있었지 않았던가? 그 간단한 의문의 답을 알아차리는데만 이틀이 걸렸다. 1단지와 2단지가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길게 마주 보고 있으니, 이름을 그렇게 왕복으로 구별해서 하나씩 나누어 가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그 기사님은 왜 그보다도 더 미리 내리라고 했을까? 그건 아직도 의문이다.
이사 온 지, 넉 달이 되도록, 아직도, 대중교통은 너무 헛갈린다. 다나네가 가고 나서도, 혼자서 대중교통으로 서울 갈 일이 별로 없다가, 이제야, 나 혼자서 탐험을 시작한 셈인데, 지금까지의 내 탐험결과로는, 지하철도, 버스도, 집까지의 걷는 길도, 서울 갈 때와 집에 올 때가 모두 다르게 해야 할 것 같다. 77번 버스는 직행으로, 구성역까지 일반버스보다 10분이나 빨리 가서도 좋지만, 단지를 한 바퀴 돌고 나서 바로 우리 주차장옆이 종점이라, 같은 데서 타고 내리니, 내가 4차선 도로를 건너 다닐 일이 없어서 딱 좋은데, 배차간격이 너무 뜬 것이 흠. 그래서, 아침에 나갈 때만 시간표에 맞춰 나가서 그 버스를 타고, 돌아올 때는 구성역에서 아무 거나 타는 것이 더 좋다.
그런데,더 안전한 방법은 돌아올 때는 구성역과 그 버스를 포기하고, 기흥역까지 두 역을 더 내려 가서, 33번을 탄다는 것. 오늘부터는 그리 해 볼 것이다. 좀더 오래 걸리더라도, 종점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서 있는 버스를 타는 것이 더 안전하고 느긋해서 좋다. 지하철은 두 역 더 가지만, 집이 기흥역에서 더 가까우니, 버스 타고 오는 시간은 더 짧아서, 그리 더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 같고, 내려서 길을 건널 일도 없다. 지하철과 달리, 버스들은 여러 대가 한꺼번에 몰릴 때는 서는 자리가 일정치 않고, 버스번호를 미리 보고 손을 들지 않으면, 그냥 내빼기도 하니, 내가 버스번호를 늦게야 알아 보고 쫓아 가다가는 사고날까 두렵다. 흔들리는 버스안에서 카드 찍고 자리 찾아 않는 것도 내게는 꽤나 스트레스다. 선능역을 이용하지 않고, 강남역에서 신분당선으로 분당의 정자역까지 와서 분당선을 환승하면 10분은 단축되겠지만, 그건, 이거라도 더 익숙해진 다음에나 해 볼 일이다.
2단지역, 지하주차장입구옆에서 버스를 내려 주차장 위로 올라 오는 경사로를 지나, 지상(나는 커다란 나무들로 조경이 된 그 아래가 바로 주차장이라는 공간감각도 없었다.)를 걸어 오면 물론, 빠르지만, 한 정거장 더 미리 내려서, 오른쪽에 숲을 끼고 왼쪽의 아파트들을 따라 올라 오는 넓은 길을 천천히 걸어 오는 것이 나는 더 좋다. 폭포와 생태연못 앞에서 좀 앉아 쉬다가, 놀이터를 지나면 우리집이다. 밤에 내려다 보면, 내 눈엔 가로등들만 보이지만, 어쩌면, 천천히, 밤중에도 그 불빛만 따라서도 걸어 을 수 있을지 모른다. 차가 못다니고, 턱도 하나 없이 편편한 길이니까. 기흥역에서 내리지 말고, 경전철을 또 환승해서 어정역까지 오면, 33번을 탈 수도 있고, 아예, 거기서부터 걸어서 이 길로 올 수도 있다. 내 걸음으로 늦어도 20분이면 될 것이다. 어정역과 강남역 사이의 직행버스를 타면, 지하철보다 훨씬 더 단축될 것이지만, 그것도, 더 익숙해진 다음에 해 볼 일이다.
계속 달라져 가는 내 눈의 상태에 맞춰서 나도 계속 탐험을 해야 할 것이다. 대중교통 문제뿐이랴. 사는 방법 전체를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 가야 한다. 사람들은 내 불편을 모르니, 그저, 그 때마다 즉석에서, 자신들의 입장에서 말하지만, 나는 그 속에서, 늘 내 발디딜 곳을 스스로 살펴야 한다. 내 모든 조건은 내가 제일 잘 알지 않는가? 근본적으로,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인지체계를 가진 존재들이다. 동물도 신도 아닌 어중간한 존재인 인간은 그 인지 스타일과 기억력, 표현방식의 한계 속에서만 남의 말을 알아 듣고 표현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를 때도 많다. 길을 물었을 때, 위로 올라 가라, 아래로 내려 가라, 그 옆에 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참 난감해지기도 한다. 어느 쪽이 위고 아래고 옆이란 말인가? 더구나, 눈어두운 사람에게는, 여기, 거기, 이리, 저리, 이거 저거. 이런 간단한 말들처럼 어려운 말도 없다.ㅎ 그런 문제야, 조금만 더 신경쓰면 금새 풀릴 일이지만, 살아갈수록, 모든 언어가 다 오리무중이고, 동의어반복이고, 동문서답임을 느낄 때가 많아진다. 나 스스로도, 도무지, 나만 아는 소리를 하고 있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언제나, 모든 문제의 정답을 알려고 조바심을 낼 건 없다. 서로 인지기반이 다른 질문과 대답 사이를 어떻게 다 컴퓨터처럼 정확하게 분석해서 소통되게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모두 완벽한 신이 아니므로, 구비마다 인간적인 오류와 오해가 발생하는 게 당연하다. 차라리, 우리는 이성적인 동물임을 자랑하기보다, 자신만의 아름다운 비유법과 유머 속에서 살아감을 더 자부해야 할 것 같다. 꽃이고 나무고 새들이고 사람이고, 세상은 알고 보면, 다 나름대로 아름다운 하나의 비유들인데, 우리는 자꾸 어줍잖은 줄자를 들이대며 자르고 붙이면서 살아 오지 않았던가? 갈수록, 어떤 말을 들어도 모두 하나의 가정법, '이럴 수도 있다'는 제안으로만 받아 들이고, '말인즉슨, 그렇다는 거지.' 속으로, 이런 마음이 되는 것은, 어떤 논설도, 메아리나 바람결의 소문쯤으로나 듣게 되는 것은, 그저, 힘이 빠져서만은 아닌 것 같다. '아는 것이 병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갈수록, 앎의 한계 속에 스스로 매달리고 갇히고 싶지 않아지기 때문이다.
어제는 구성역에서, 버스가 올 때마다 버스에 눈을 대다시피하면서 33번을 겨우 확인하고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냥 보내며 77번을 기다려 보다가, 결국, 33번을 그냥 탔다. 악기까지 울러 맨 내가 안돼 보였는지, 한 젊은이가 일어서더니, 나더러 자꾸 앉으라고 한다. 어디까지 가세요? OO요. 아, 저두요. 다시 자리를 내어 줄 가능성은 텄다. 고마워요. 미안하네요. 아, 괜찮아요. 젊은 사람은 다리가 튼튼하잖아요. 그래도 피곤하실 때도 있잖아요...여기까지는 좋았다. OO, 정말, 좋죠? 언제 이사 오셨어요? 근데, 딱 한 가지, 교통이 문제죠? 그가 말을 걸어 오기 시작했다. 저도 첨엔 한참 헤멨어요. 좀 오래 다녀 보셔야 해요. 수영장이나, 헬쓰 같은 던 왜 안 나오세요? 한 번도 못뵈었는데, 싸우나에라도 나오세요. 거기서 다들 만난답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세요. 아주 큰 교회가 여기 둘이 있는데, 우리 교회는 OO교회랍니다. 나이 드시면 교회 다니셔야지요. 게을러서요, 한 마디만 대답했지만, 그의 말은 점점 더 많아진다. 몇 동 몇 호세요? 우리집에도 놀러 오세요, 제가 놀러가는 건 안되잖아요...이러기까지 한다.
게을러서요, 이 말은 때때로 참 편리하다. 눈이 어두워서요, 이랬으면 또 예수 믿으면 병 고칠 수 있다고 하며 더 적극적으로 나올 사람인 것 같았다. 운동하러 커뮤니티 센터에 나가 볼 생각도 없지 않았는데, 두려워진다.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말질과 행사들에 휘말리게 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놓고, 나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어울리면서, 여러가지 정보도 얻고 정도 나누고 도움을 주고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는 일이 더 재미있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나는 내가 거기 가면, 그 사람들 속에서 더 외토리가 될 것 같다는 생각부터 할까? 쾌적한 자연친화적 환경이 좋다고 생각했던 이 곳이, 갑자기 동물들이 떼를 지어 몰려 다니는 싸파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긴, 그러면 그게 더 자연은 자연인가? 하하. 아, 11시 종이 울리고 있다. 15분 차를 타러 가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