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호젓함의 단계로

해선녀 2015. 3. 14. 02:17

2주일 전, 용인에 미분양 아파트를 하나 계약했다. 사람들은말한다.

 

1. 아이들과 함께 살거나, 가까이라도 가서 살아야지, 왜 아직도 혼자 살기를 고집하는가고.

2  양평집을 팔아서 서울의 아파트를 사야지, 그걸 왜 지어 가지고 지금까지 제대로 쓰지도 못하면서 서울에서 월세를 살고 있었느냐고.

3. 아파트를 사려면, 그 돈부터 마련한 다음에 사야지.

요즘, 신규 아파트 분양 물량이 쏟아지는 걸로 봐서 조금 더 있으면, 아파트값이 폭락할 것인데...

20 ~30 퍼센트씩 할인해 주는 미분양 아파트들도 많은데, 그런 걸 사지 그랬느냐고....

4. 서울, 교통이 편리한 곳에서 살아도, 그 눈으로 혼자 살기 어려울 텐데, 근처에서 살아야 가까운 친구들의 도움이라도 받지 않겠느냐고.

5. 이제, 은거하려느냐고. 그러다가 우울증 되려느냐고...

답:

1. 아이들에겐, 이제 내가 아무 도움이 안될 뿐 아니라, 짐만 된다. 나중엔 어쩔 수 없이 그러더라도, 미리부터 아이들을 힘들게 해 주고 싶지 않다. 나중에, 아이들이 정말 안정되고 여유가 생기고 나면, 한 동안 같이 살더라도, 마지막엔 요양원에 갈 것이다. 함께 산다는 것은, 서로 도움이 될 때라도, 오래 가면 서로 힘들어진다.

 

2. 정말, 내 유별난 고집임을 인정한다. 월세를 살면서 '별장'을 유지한 셈이니까. 하지만, 양평집은 그가 마지막까지 그렇게 오랫동안 살고 싶어 하던 곳에 지은 집이다. 돌아가기 바로 전날도, 직접 운전해서 그 집에 창문 다는 것 보러 가려다가, 기운이 급감하는 바람에 못가고, 나만 보냈다. 그 집은 그가 퇴원하면 자주 가서 고구마라도 구워 먹자고 짓기 시작했지만, 그가 간 후, 내가 그의 집으로 마무리한 집이다. 우리의 첫집이 기억난다. 나는 중학교 교사 5년 만에, 처음으로 집을 사서 그의 문패를 달았다. 그는 먼저 미국으로 떠난 후였다. 양평집에 그의 닉네임, Amnesia(건망증, 망각)을 새긴 도자기 의자를 만들어다 놓으려고 오랫동안 애를 썼는데, 어쩐 일인지, 네 번이나 가마에서 터져 버렸다. 그걸 못만들어서, 우리는 아직도 서로 잊지 못하는 것일까? 경제적으로든, 실제적으로든, 내가 정히, 그 집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때까지, 나는 그 집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나중에, 아이들도 가능한 한, 그 집을 그대로 유지해 주기 바란다.

 

3. 이 아파트는 자존심을 내세우며 할인은 절대로 안하고, 대신, 분양가의 25 퍼센트만 내면 입주시켜 주고, 중도금은 무이자 대출에, 잔금은 입주 2년 후로 유예해 주는, 할인 아닌 할인효과 방식으로 쎄일을 한다. 타사에 비해 할인율은 떨어져도, 지금 당장 들어갈 수 있는 아파트를 살 몫돈이 없는 내겐 딱이다. 입주는 계약 후 다섯 달 내로 하면 되고, 2년 후 잔금이니, 그 동안 월세수입이 좀 되어 주던 작은 부동산들을 정리하여 잔금을 마련할 기간은 충분하다. 월수입을 포기하는 대신, 이 집의 월세도 안 내게 되지 않는가?  

 

신규분양 아파트는 입주하기까지 2, 3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 때까지는 내 눈이 기다려 주지 않는다.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내 시력이 좀 남아 있는 동안, 느리게라도 편편한 길을 걸으며 살고 싶다. 아이들 뒷바라지는 이제 대충 끝났으니, 수익성때문에 내 편한 생활을 더 이상 뒤로 미루지 않겠다. 집의 재산가치는 이제 내게 큰 의미가 없다. 집값 떨어지면 내 집값만 떨어지겠는가? 나는 복잡하고 비싼 서울의 아파트를 굳이 사야 할 이유도 몫돈도 없다. 이 아파트는 돈부터 다 마련한 다음에 집을 산다는 순서를 바꿀 수 있게 해 주는 동시에, 차들이 어디서고 불쑥불쑥 튀어 나오는 골목을 힘들게 걸어 가야 하는 서울로부터 내가 빨리 떠날 수 있게 해 준다. 시간 널널한데, 서울에 꼭 오고 싶을 땐, 광역버스나 지하철로 만고강산 유람하듯 하며 올 수도 있지 않은가?  

 

4. 그가 간 지, 5년이 넘었다. 그 동안, 더 이상 꼭 이 동네에서 살아야 할 이유도 없는데 떠나지 못하고 있는 나를 곁에서 도와 주고 지켜 봐준 친구들을 떠나는 것이 나도 너무 아쉽다. 대학입학때부터 47년 살아온 서울, 캠퍼스와 함께 이사와서 40 년을 살아온 이 동네를 기어이 떠난다. 하지만, 어차피, 친구들에게 내 모든 생활을 의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일상의 소소한 일들은 나 스스로 해나가고, 엔간한 불편은 그냥 견디고 넘어서야 한다. 가끔씩, 도우미를 쓸 일이다. 운동시설도 좋지만, 지상에 차가 들락거리지 않아서 넓고 쾌적한 단지를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 그것 하나로도 나는 족하다. 

 

5. 그 동안, 시각장애인 복지관을 들락거리면서, 칩거하고 지내던 많은 친구들이 밖으로 나와서 활발하게 운동하고 공부하며 장애인으로서의 새로운 사회활동의 길을 찾아가는 것을 보아 왔다. 나는 화사한 친구들보다도 이 겸손한 친구들과 더 가까이 느끼며 지냈다. 그런데, 지금, 왜 혼자서 먼 곳으로 가려는 것인가?  그렇다. 은둔자의 생활을 할 것이다. 이제, 혼자서 호젓하게 살고 싶다. 부산함, 산란스러움이 싫다. 그래도, 매주 서는 아파트 장마당에는 살살 나가서 푸성귀와 생선을 사오고, 가끔씩, 마트에서 주문도 해다 먹을 것이다. 컴과 음악과 책(듣기), 악기와 산책...걷다가 놀이터의 아이들을 바라 보며 쉬고, 세상뉴스도 한 걸음 더 멀리서 들을 것이다. 여행도 가끔, 누구따라 가겠지. 아, 강아지 녀석도 한 넘 다시 키우고 싶은데, 그건 좀더 잘 생각해 볼 일이다. 혼자 두고 내가 집에 못들어갈 일이 생기면 어쩔 것인가? 데리고 함께 걷고 싶지만, 내가 그 녀석을 과연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우울증은 원래부터 내 친구다. 내가 무슨 일로 바쁜 중에도, 그 친구는 내 곁에 삐딱하게 서서, 너 잘 하고 있는 거냐? 나를 지긋이 바라 보기도 하고, 한가할 때도, 자주 옆에 와 앉아서, 차도 한 잔 함께 하고 같이 뒹굴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천성이 게으르기도 하지만 호기심도 많은 나는 그 친구에게만 그리 오래 집중하지 못하고 무단히 길을 나선다. 

 

사람이 살면서 저 좋아서, 혹은, 피치 못하게 가야 하는 단계와 길이 있다. 나는 나 자신보다도, 남편, 그리고 자식들 뒷바라지에 너무 집중하는, 가히, 조선시대적 사고방식으로 하여, 어쩌면 남보다 너무 늦게, 내 이 장애로 하여, 어쩌면 너무 빨리, 이 고독, 호젓함의 단계로 온 것 같다. 블로그 글친구들 외엔, 원래, 친구모임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잘 안나갔지만, 이젠 호젓함을 눈치보지 않고 그대로 즐길 것이다. 모든 오지랍을 거두고, 핑계도 거두고, 자신의 영혼 하나나 제대로 거두면 결국, 그게 더 주위를 도와 주는 일이기도 하지 않겠는가? 어쩌면, 가장 이기적인 삶의 단계라고나 할까? 가히, 코페르니쿠스적인 삶의 주제전환이다. 나중엔 어찌 되더라도, 나는 이제 이 단계를 정말, 잘 살아 볼 일이다. 님들아, 호젓함 좋아하다가, 혹시 내가 못살고 돌아 오더라도, 친정부모처럼 어여삐 여기사, 몇 번이고 나를 다시 받아 주시라...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