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가다 집장사 ' 이야기 2
옆집 아주머니는 나보다 두어 살 아래의 예쁘장한 얼굴에 늘 선한 웃음이 떠나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 남편은 서울농대를 나왔지만 토목 엔지니어로 현대건설에서 이사로 있다가, 그 때 막나와서 다른 작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대략적인 사업 계획서를 써 가지고 우리 부부를 만나러 온 그 집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반대할 이유가 별로 없어 보였다. 우선, 그 때 막 불기 시작한 다세대 열풍으로 집값은 이미 단독주택으로서의 집값이 아니라, 건축업자들의 땅값으로밖에 팔리지 않고 있으니 사업을 하는 것이 훨씬 유리해 보엿고, 무엇보다도, 튼튼한 골조를 책임지고 감독하겠다는 이 사람이 이미 10년 전에 그 집을 직접 지어서 살아 왔다지 않은가? 그는 생기기도 든든한, 딱 토목 엔지니어 스타일이었고, 나와 종씨였다.
마음이 설레었다. 그 때까지 나의 건축경험이라고는 신림동집에 차고 하나를 붙여 지은 것뿐이지만, 아, 참, 남편은 커다란 개집과 토끼장을 직접 만들었었네, ㅎ 그 집의 칠은 사다리를 써야 하는 외벽만 업자에게 맡기고,대문칠과 내부의 도배와 니스 칠은 내가 하면서, 언젠가 나도 우리 집을 직접 지어 보리라, 꿈을 꾸곤 하지 않았던가? . 단독주택도 아니고,다세대 주택, 그것도 이익을 내기 위해 좁은 땅에 8세대나 올리는 그야말로 사업목적의 건축이었지만, 내가 인테리어라도 맡아서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우리는 바로 합의하고 설계부터 들어가면서 업자를 물색했다. 그 때 동네를 휩쓸다시피 하는 두 업자들은 평판이 좋지 않았다. 우리집을 자기가 사서 지으려고 했던 사람은 일값을 너무 높이 청구하고, 다른 한 사람은 일솜씨가 신통찮다고 하고...두 집 여자들은 좀 멀리 떨어진 방배동으로 가서 집을 구경하면서 우리 수준에 맞고 제일 예쁘고 단단하게 지은 것 같은 집의 업자를 만나서 우리집도 지어 달라고 부탁햇다. 뒤에 생각하니, 그건 참 무모했다. 여러 사람들의 견적을 보고 비교해 보지는 않아도, 적어도 그 건축주를 만나서 그 평판을 들어 보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 일은 처음부터 녹녹지 않았다. 기초가 서고 건물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서로 잘 알지도 못하고 지내던 뒷집에서는 물론이고, 꽤나 친하게 오가던 건너편의 다른 옆집, 노대령댁에서도 그 사이의 길이 마을버스가 지나다니는 큰길임에도 불구하고 그 쪽으로 창문을 내지 말라는 민원을 넣었다. 그잖아도, 처음부터, 바보야, 내년이면 건축법이 바뀌어서 한 층을 더 올릴 수 있으니 이익이 훨씬 더 많아질텐데, 왜 그렇게 서둘러? 저 집은 코너인 당신네서 같이 짓지 않으면 단독으로는 짓기도 어렵고 , 지어 봤자, 별로 수지가 안맞아서 그러는 거라고...말렸던 터였다. 늘 내게 엄마처럼 잘 해주던 맞은편집의 형님도 저 집의 경제사정이 매우 어려워져 있는 상태라서 그러는 모양인데, 동업이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느냐고, 정말 잘 생각해서 하라고, 말렸었지만, 우리는 누구나 다 각자의 사정대로 하는 것이고, 공동의 목적이 잘 수행되는데까지만 동업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밀고 나갔다.
몇 번의 설왕설래 끝에 민원들은 건너편 집들의 방안이 들여다 보이는 높이만큼의 창문 가리개를 설치하는 것으로 타협이 되었다. 그런데, 끝까지 애를 먹은 것은 결국, 이 업자 때문이었다. 그 는 옛날부터 한옥을 전문으로 지어오던 솜씨로 다세대를 예쁘게 지으면서 돈을 벌기 시작하자, 술집여자와 딴살림을 차렸고, 매일밤 술과 노름으로 현장의 감독이 소홀해지는 바람에, 방수와 배관 일이 하자를 많이 내었는데도 책임지지 않았다. 정말, 집은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 가지고 평가할 일이 아니었다. 방수와 배관은 우리 몸의 혈관과 세포 같아서 온집의 신진대사가 거기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 다 그렇듯, 그것은 좋은 자재를 좋은 기계나 약품으로 조합하고 처리하는 기술만으로는 안되고 , 훌륭한 의사처럼, 우리의 몸과 그 몸이 그 안에서 기능하고 있는 환경을 하나의 전체로서 파악할 수 있는 안목과 개념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우리는 결국, 그 빌라의 지층 바닥을 모두 걷어내다시피해서 기울기가 잘 맞지 않는 배관을 다시 하고 화장실 바닥을 높이고 집 외벽과 내부의 방수를 모두 다시 했다. 뜯고 보니, 방수가 끝난 후에 배관 구멍을 뚫어 놓고 뒷처리를 하지도 않은 부분도 있었으니, 그 감독이 얼마나 소홀했던지 알 만하다. 당연히, 비용이 추가되었지만, 다행히, 집은 잘 팔렸고 수익도 예상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우리 빌라가 잘 팔리는 것을 본 그 두 큰집들도 그 후 2, 3년 안에 모두 헐고 다세대를 지어 팔고 다른 동네에 더 좋은 집을 지어 이사 나갔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마지막까지 버티려던 몇명 단독주택들의 보루를 먼저 무너뜨린 집이엇던 셈이다. 특히, 맞은편 집은 내가 참 좋아하던 집이었는데, 80여 평의 대지에, 화단이 참 예쁜 소위, 불란서식 집, 천정이 툭 터지고 샨데리어와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난간이 매우 아름다운 집. 그 후로도 가끔 서로 오가기는 했지만, 우리집 하나라도 더 버티고 있었으면 조금은 더 오래 단독주택지의 가까운 이웃으로 지냈을 것이다. ..
분양이 거의 끝나갈 무렵, 세를 얻어 살고 있던 두 집은 이번엔 구청 건너편의 좀더 넓은 백 평짜리 구옥을 사서 역시 지상 3층 짜리였지만, 층당 3세대씩의 국민주택 규모의 집을 짓고 맨꼭대기에 다락방을 설치해서 우리 두 집이 들어가 살기로 했다. . 거기는 미관지구여서 한 층을 더 올릴 수도 없었다. 인테리어는 이번에도 내가 맡았다. 물론 설계 사무실에서 전문적인 것을 다 해주는 것이지만, 나는 전보다 더 꼼꼼하게 모든 구석을 자로 재면서 구조도 일일이 검토 수정하고 공사도 우리가 좀더 철저하게 감독하기로 했다. 업자는 바꾸지 않았다. 애먹이던 걸 생각하면 다른 사람을 쓰고 싶었지만, 사람이 그래도 양심이 있겠지, 그 사람도 복잡한 생활을 정리하고 이젠 더 정신 차리고 일하겠다고 하고...그냥 다시 잘 해보기로 한 것이다. ...한 번 맺은 인연을 끊는다는 것은 여간해서 쉽지 않은 일이다.
이번에는 휴대폰도 하나 사고, 학교에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무엇이라도 사서 들고 현장으로 달려 갔다. 주로 삼겹살과 막거리...나는 그들과 함께 땅바닥에 주저 앉아서 한 잔씩 걸치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일을 꼼곰히 챙겼다. 덕분에, 집은 그런대로 하자가 줄었고, 똑같은 구조인 우리 두 집 옆의 나머지 한 세대엔 연예인이 입주하기도 했다. 그 집 다락방은 가운데가 원두막처럼 올라가서 사방이 서까레로 받쳐지는 스타일이었는데, 우리 두 집보다 목재가 더 많이 들었고 전망도 3면으로 트여 있었으니 좀더 낭만적이었던 것 같다. 그 집도 , 아주 잘 팔렸고, 우리도 그 집에서 원하던 다락방을 서재로 널널하게 쓰면서 전부터 꿈꾸던 대학원생들과의 세미나도 그 방에서 즐길 수 있었다.
거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뻔했다. 단독주택은 아직 가질 수 없겠지만, 조금 더 숲 가까운 곳에, 조금 더 넓은 공간을 가지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저 세번 째 빌라, 심전을 짓기로 한 것이다. 너무 벅차면, 꼭대기에는 작은 평수도 있으니, 그거라도 좋지...거기는 우리가 처음 이 동네로 집을 보러 다녔을 때 관악산이 바로 정원처럼 펼쳐진 맨끝 집이어서 마음에 들어 했던 집의 맞은편에 있는 공터였다. 그 끝집은 도둑이 들 위험이 있어 보여서 단독주택으로는 맞지 않겠다며 포기했던 집이었는데, 심전을 지으면 그 집옆으로 산을 비스듬히 건너다 보게 되어 잇었다.
그러나, , 그 때 이미 문제는 시작되어 있었다. 땅을 사는데 까지는 별로 몰랐는데, 옆집에서 점점 공사대금을 대지 못하는 것이었다. 약간의 자금 언발란스쯤이야...내가 친구의 돈을 끌어 들여서라도 처리할 수가 있었다. 적어도, 집이 팔리면 그 문제는 정산하면 되는 일이니까. 그런데, 한 동네에 사는 그 오빠네 집 공사도 .이 업자에게 맡겼다고 하더니, 점점 공사대금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우리 쪽 분양대금이 들어 오는대로 찾아간 자기 몫을 그 쪽 사업에 밀어 주고, 그 외에도, 대리석 업자와 도배업자에게도 돈을 빌려 주고 있었던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뿐만 아니었다. 갈수록, 현장 일에 대한 약속을 펑크내고 거짓말을 하는 눈치가 역력해지면서 밍크 코트를 사입고 다니고 피부 맛사지를 받으러 다니는가 싶더니, 바로 옆문의 우리집에는 아무 말도 안하고 살짝 나가면 하루 종일, 혹은 이삼일씩도 내내 연락이 없는 것이다. 식구들은 시골에 집안행사가 있어서 갔다는 둥, 기도원에 갔다는 둥, 그녀를 변호하는 눈치였지만, 그것도 한 두 번이지, 아무래도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 즈음, 그녀와 십년지기로 골목에서 제일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나를 찾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