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에서 흔들리다
몇며칠을 안개속에서 지냈다. 눈앞은 뿌옇고 마음 속이 그렇게 막막하고 스산하여, 무엇을해도 매찹게 되지 않았다. 언제 잃어 버렸던지, 안경까지 없어져서 그잖아도 잔뜩 흐린 날시 속을 흐린 물속 금붕어 한 마리처럼 느리게 헤엄치며 다녔다. 겨우 두 역 거리의 복지관을 오가며 역을 하나 치나치지를 않나, 미리 내려 버려서 돌아오지를 않나, 언어수업시간엔 각기 다른 언어들의 어휘들은 물론이고 문법까지 헛갈린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2주이리 되엇을 즈음부터엿으니, 여독 때문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이 멍청함과 어둔함은 어디서 온 것이엇을까?
광화문 할머니 이야기였다.우연히 친구에게 들은 이후로, 그녀가 나를 꽉 잡고 큰 돌무게로 나를 누르고 있었다. 지난해 연말에 티비에 나왔다는 그 십여 년을 하루에 커피 한 잔 사 마시고 교회에서 밥 한 끼 얻어 먹으며 지난 날, 자신이 일하던 광화문 거리를 맴돌며 패스트 푸드 점에서 꼬박 앉아서 잠을 잤다는 그 할머니...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외교부에서 일했던 재원이엇는데, 부잣집 딸로 자라서 험한 일은 해 본 적도 없고, 할 생각도 없으며, 형제들에게 가도 공주 대접만 바라니 외면 당할 분만 아니라, 친지들이 마련해 주는 거처나 복지시설도 마다한다는 그 할머니...지금도 꾀죄죄하지만 명품 트렌치 코트와 가방 차림으로 커피점에 앉아 영자 신문을 익으면서 지낸다는 그 허허하고 외로운 영혼의 이야기가 나를 휘잡고 있었다.
그녀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앗다. 그런데, 동영상으로 본 그녀의 가냘픈 모습에서 또 다른 두 얼굴들이 떠올랐다. 벌써, 9년 전, 신시내티에서 그와 안식년을 지낼 때, 비오는 저녁 공원에서 만났던 히피 남자 한 사람과, 그 때 여행갔던 시카고 다운타운의 저녁 거리에서 만났던 할머니 한 분이다. 그 남자는 물끄러미 우리가 검둥개 수니를 데리고 노는 모습을 바라 보다가 안개비 속으로 사라져 갓고, 그 할머니는 집게와 커다란 비닐봉투 하나를 들고 부지런히 쓰레기통을 뒤지며 가면서 미안하고 수줍은 미소를 가늘게 흘리며 지나가던 거엿다. 아무 말도 건네 본 적도 없이 잠시 스쳤을 뿐인 그들 역시,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잠시 지나쳐 벌미면 그만일 수 있는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나와 공통점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 이들에게 심하게 감정이입이 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그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누군가 가족을 위해서 먹을 것을 찾아 다니던 너무도 현실적인 그 할머니와 너무도 자기개념 안에만 갇혀 잇는 듯한 이 비현실적인 이 광화문 할머니가 내 존재의 양극단에서 그 절대의 기치를 흔들며 나를 부르는 것이다.그들은 시공을 초월하여 내 안에서 항존하면서 줄다리기를 하며 내 ㅇ혼을 가로지르며 소리친다. 봐라, 봐라, 여기 네가 잇다. 너는 바로 나다.... 나는 정말, 어디에 있는 것일까? 두 할머니가 잡고 흔드는 그네 줄 위에 위태로이 앉아서 나를 잘 버티지 못하면 안된다 아니, 그 안개 속으로 떠나던 그 형형한 눈빛의 히피가 되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나는 그렇게 휘둘려서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엇다...
이틀 만에야, 장농 위에서 내 안경을 찾았다. 책상 옆에 두엇던 빈 박스에 그 안경이 떨어진 것도 모르고 그 박스의 뚜껑을 덮고 장농 위에 올려 놓앗던 것이다. 도 이 꾸러기 강아지 사랑이가 어디 물고 들어가서 씹어 놓지 않앗을까, 의심하면서 온집안을 샅샅이 뒤져도 없고, 친구와 함께 갓던 레스토랑과 까페와 복지관 구석 구석을 다 뒤져도 없엇는데...
그런데, 그건 약과였다. 날씨가 화창해진 목요일 아침엔 정말 더 대형사건이 일어낫다. 전날 입엇던 겉옷을 그대로 입고 나가면서 보니,주머니 속에 웬 낯선 열쇠 꾸러미가 들어 있지 않는가?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내가 지금까지 저지른 범죄 중에 가장 심각한 미필적 고의의 범죄를 저질럿음에 틀림없다. ㅎ 옆방 아이들에게는 물론이고, 전날 아침에 딸아기를 낳아서 저녁에 부천의 병원에 가서 만나 한참을 같이 잇엇던 막내들과 사돈에게 물어 보아도 자기 것은 아니란다. 내가 어디선가 무심코남의 열쇠 꾸러미를 주머니에 넣은 모양인데,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수요일 낮에 만났던 선배와 복지관 세 언어교실의 샘들과 동료 학생들에게도 하나 하나 다 물어 보아도 모두 아니란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금요일 저녁, 이젠 거의 포기하고, 그래도 또 혹시나 하고 귀가길에 마지막으로 들린 엉뚱한 곳에서 그 주인을 찾았다.내가 옥탑방을 내어 놓으려고 들어갔던 부동산 사무실...거기는 내가 선 채로 말만 한 곳이어서 가장의심하지 않았고, 마지막에 들어가 앉아서 막내를 기다리며 차까지 얻어 마신 부동산만 의심했던 것이다. 그 날 나는 어느한 부동산에 부탁해 놓앗지만, 내가 미국에 잇는 석 달 동안을 내내 나가지 않고 잇던 옥탑방을 빼나가기 위해서 작심을 하고 더 내어 놓으러 다녔던 것이다. 비죽이 문만 열고 들어 가서 선 채로 어떻게 탁자 위의 열쇠를 내 주머니 속에 집어 넣엇단 말인가? 그 탁자는 바로 입구 쪽에 잇는 높은 유리탁자엿고, 그 사장은 머리를 숙이고 그 뒷쪽 책상에서 장부를 적느라고 내 거동을 보지 못했다...
이거, 웃을 일이 아니다...열쇠를 잃은 사람이 얼마나 답답할까, 애를 태우면서도 그 이박삼일 동안 나 자신에 대해서도 별별 걱정을 다 햇던 것인데, 나는 이제, 내가 어디서 무슨 짓을 할 지, 나를 믿을 수가 없다. 이제는 더 이상, 치매라고 우스개 소리처럼 말할 때가 아니다. 그래도, 내가 나 자신의 범죄를 철두철미 수사하는 수사관이 되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도 저렇게 헛구멍 투성이가 안닌가? 어저면, 수요일 이전부터 그것이 내 주머니에 들어 있엇는데도 내가 몰랏을 수도 잇다는 생각으로, 일요일에 만났던 친구에게까지 물어 본 것까지는 좋앗는데, 정작, 그렇게 입구에 잇었던 탁자 위의 열쇠를 만지작거리다가 슬쩍할 수 잇었다는 생각은 못했다. 어쩌면 나는 거기 앉아 잇엇고, 휴대폰을 거기 함께 놓았고, 그 줄에 함께 달려서 주머니로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그 모든 내 동작들이 하나도 생각이 안난다는 것이다...그 사람이 묻는대로, 집주소와 휴대폰 번호와 그 지에 대한 설명을 하는데 신경을 쓰느라고 나는 내 손이 무슨 짓을 하고 잇는지도 몰랏던 것이다.
아고...그래도, 너무 비관하지는 말자. 그런 일이 잇어도,나는 잠시 당황하지만, 곧 수사에 착수하고그 수사과정에서 나는 나를 배우고 끊임없이 나 자신을 가르치게 되지 않던가? 많은 사람들이 개입된 게임의 긴장감 속에서 내가 아무리 형편없는 실수를 하였더라도, 그것이 나인 걸 어떻게 하리...
요즘의 내 게임은 언어 수업이다. 사람들은 다섯 개나 되는 언어수업을 어지 다 소화하느냐고 하지만, 몇 개면 어떤가, 내가 시간이 되는대로 가서 앉아서 순간마다 실수하면서 스트레스도 받지만, 결국, 몇 자가 되엇든, 내가 할 수 잇는 만큼만 소화하며 산천경개 구경하듯, 풍월 읊듯, 따라가는 즐거움도 크다. 마치, 삶의 현장에서처럼, 에습도 복습도 없이, 그 때 그 현장에서 실수하며 반성하며 살아내듯....인생은 결국 실수들의 행진이 아니엇던가..나는 단어 하나, 문법 하나에서 내가 저지르는 실수와 그 교정의 과정에서 내 의식의 현주소와 그 흐름을 파악한다. 안경을 찾으려고 애쓴 것도, 내가 지금, 어느 어름에서 무엇을 왜, 어떻게 실수하며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은 이유가 컸다.안경도 이제 너무 흐려진 내 시력에 전처럼 큰도움은 못되어서 낮동안엔 자주 벗고 있기도 하지만, 밤외출 때는 너무 퍼지고 난반사를 해서 눈을 피곤하게 하는 불빛들을 좀 모아 주어서 아직은 필요한 정도이다.
아닌게 아니라, '실수함으로써 존재한다'는 말이 점점 더 실감이 가는 요즘이다. 실수를 하고 잇음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앗던 저 잘났던 시절에도, 내 의식은 늘 명료햇겟지만,눈으로 잘 보지 못하여 저지르게 되는 실수들에 나 자신도 미처 적응하지 못하는 현상이 점점 더 많아지는 요즘엔 내 의식의 보잘것 없는 현주소를 바라 보는 자의식이랄까, 메타의식이 더 많이 생겼다. 그렇다고, 열등감이고 패배의식이고 좌절감에 빠진 것은 아니다. 그러고 잇어 봤자, 무엇이 도움이 된던가? 그렇게 된 나 자신마저 내세우며 아직도 잘난 척을 하고 잇는 것이라고 누군가는 말할 지도 모르지만, 나는 오로지, 내가 처한 저 상황에서도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잇는 방법을 찾고 잇는 것이다..
사실,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그렇게 시력이 흐려지는 것만이 아니라, 정신력도 흐려져 가는 것이다. 9년 전의 그 두 사람들에게는 흔들렷다기보다는 일부러 자리를 내주엇다고 할 수 잇으리라. 그러나, 이 할머니는 그 고절된 삶의 개념에 내가 정말, 너무 많이 휘둘려서 그런 것이다. 장애의 불편함 그 자체보다도, 잘난 척하더니 그 꼴 좋다는 의식이 나를 더 짓누르게 하지는 말자...안경을 어디 둔 지 몰라 헤매는 일즘이야, 원래 다반사엿고, 이제 안경이 전처럼 눈만 드면 필요한 것이 아니니 좀 오래 잊고도 잇엇던 것분이라고만 하자...그런데, 이 열쇠 사건까지 생기니, 마음이 좀더 착잡해진다. 나는 지금 진짜 치매의 늪 속으로 빠져 들어 가고 잇는 게 아닌지..이런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누가 나에게, 이 정도 증세일 때 어덯게 해야 할 지, 팁을 좀 주시라...ㅎ
오늘은 토요일, 내 눈 탓인지, 날씨 탓인지, 바깥은 여전히 뿌우옇고...또 모르지만, , 이젠 좀 그만 어벙거리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