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에서
, 에미가 파나마 연주여행에서닷새만에 돌아 왔다 먹을 거리 충분히 사다 놓고 준오를 데이캐어에 매일 데려다 주고 데려 올 것도 성우엄마에게 잘부탁해 놓고 갔는데도, 이번엔 나조차도 엄마를 기다리는 심정이 되어 날수를 꼽아 가며 기다렸다. 엄마가 돌아 오니 온집안이 활기를 되찾는다. 역시, 한 집안에는 엄마가 있어야 한다.
어제는 낮기온이5 52도, 연일 햇볕이 따스하더니, 교회 가는 길, 온사방이 봄기운이 돈다. 아직 눈이 채 녹지 않은 대지가 그 광막한 흰가슴을 온통대기속으로 드러내어 놓고 심호릅을 하고 있다. 대지의 겨드랑이털 같은, 혹은 콧수염 같은,도로 건너편 낮으막한 숲 위에서부터 뻗혀온 듯한 푸르스름한 기운이 햇살 가득한 벌판을가로지르며 그 생명의 신호를 주고 받는 듯하다. 아, 드디어, 봄이 오려는구나 . 이 막막하기만 하던 대평원의 봄은 어떤 모습일까, 여기저기 아름드리 나무들에 쌓여 있던 눈송이들은 간데 없고 오늘따라 내 흐린 눈으로도 움찔움찔 햇빛 속에서 잔가지들까지 손을 뻗으며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 같다. 하기야, 이러다가도 또 언제 추위가 다시 몰려 올 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만 해도 마이너스 22도가 아니엇던가?
여기 온 지는 이제 꼭 두 달, 거의 두문불출, 몇 번의 외식과 샤핑 몰과 교회에 가는 것 외에는 어디도 갈 생각이 없는 것은 바쁜 에미나 아픈 에비의 사정도 그렇지만, 원래의 내 게으름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따라 나서면, 여기 저기 구경삼아 가 볼 데가 없지 않겠지만, 이제 다 시들한 것은 내가 이미 인생의 늦가을쯤에 들어서서도 더 그럴 것이다. 하긴, 젊은날에도, 나는 모든 일을 한껏 미루엇다가 마지막에서야 최소 에너지로 최대효과를 내는 식으로 하기를좋아하였고, 어디고 여행을 위한 여행을 자의로 나서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러지 않아도, 내 생활은 늘 하루 여섯 시간 이상 자 볼 수도 없이 나를 바브게 돌려고,사람과 자연에 대한 끝없는 애정을 가진 그는 내가 지루하지 않을 맡큼 충분히 나를 데리고 다녀 주엇다. 이제는 혼자서 가라. 그가 나를 놓아 두고 가버렷지만, 게으른 내 삶의 태도는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에비는 이제 보조기 없이도 집안을 오락가락하고 어제는 싣업을 겨우 한 20회 했다고 쎄라피스트에게 자랑했더니, 200회는 해야 한다고 하더란다. 아직은 간신히지만 제 메일과 페이스북을 제가 관리할 정도가 되었다., 하루종일 티비를 붙들고 영화와 스포츠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위 게임도 하루이틀이지, 이젠 정말, 좀이 쑤시는지, 여름학기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학교 오피스들이나, 선후배들에게도 아직 감기가든 것 같이 들리는 쇤 목소리로 여기저기 전하하고 다음 학기 살 곳과 들을 강의들을 점검해 본다. . 그 설치고 다니던 젊은 넘이 이 긴 겨울을 저런 몸으로 곰처럼 갇혀서 지내기가오죽하겠는가...새봄이 오면 훨훨 날아다니고 싶을 것이다...금주부터는 재활센타에 가지 않는 날에는 수영이라도 나가다녀쓰면 좋겟다.
나는 그 동안, 서울의 아파트를 결국 팔아 버렸다.어차피, 팔려고 애를 쓰다가 못팔아서 전세라도 놓은 것이었지만, 겨우, 7개월만에 다시 파는 것이 세입자에게 너무 미안한 노릇이었지만, 오백만원의 보상금을 약속하고 양해를 받은 것이다. 내게는 같은 입금으로 전세를 낀 채로 살 사람도 있었지만, 그냥 이사가겠단다. 다행이다. 주변에서는 이제 붇ㅇ산 경기가 겨우 좀 나아질 듯한데, 조금 더 기다리지, 서울의 시세도 잘 모르면서 부동산이 자꾸쑤신다고 왜 넘어 가서 지금 파느냐고들도 하였지만, 이미 빚과 전세금으로 거의 다 활용되고 있는 그 집에 더 미련을 두고있느니 그 푼돈이라도 챙겨서 ,하나씩, 하나씩, 빨리 내 주변을 정리해 나가고 싶었다.
신혼초부터 내내, 빚에 빚을 이어 살아온 것이 우리집 경제방식이었지만, ..이제 그가 가고 나니 수입과 지출이 너무 반하다. 빚은 연금으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최소화하고 아이들을 조금도와 주고 싶다. 에미는 한사코 내 도움이 필요치 않다며 내가 올 때 가지고 왓던 약간의 돈마저 열어 보지도 않고 돌려 주겟다지만, 글쎄, 그렇 것까지야 있겠는가? 한국에서는 아들 장가보내려면 집을 사주든지, 전세라도 얻어줘야 한다는 게 상식처럼 되어 있는데도, 우리는 약간의 생활비를 보탠 것 외엔 그렇다 할 만한 도움을 준 적도 별로 없었는데,지금은 아들이 아프고 두 집 살림이 오죽 힘들겠는가? 그런데도, 오히려, 부모님을 도와 드리지 못한 것이 죄송하단다. 막내도 이제 곧 여기 어디로든 와서 공부하려면 힘닿는 데까지 내가 도움을 좀 주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양평집만 유지할 수 있어도 너무 부자다. 봉천동의 셋방이면 사실 내가 거처하기에 크게 불편도 없는데, 집도 없으면서 별장씩이나 가지고 있다는 우스개가 우스개가 아닌 것이 좀 아이러니이기도 하고,눈도 안보이는 사람이 어차피, 혼자서 양평에서는 제대로 살지도 못할 것이니, 그 집을 팔아서 서울에 조그만집이라도 새로 마련하여 끝까지 지니고 있는 것이 더 실속있는 재테크라는 충고도 이미 내 귀엔 들어 오지 않는다. 그러려면, 내가 왜 그가 돌아간 후에도 기어이 끝까지 지었겠는가? 그 집은 우리들 두 사람의 역사관이자 마지막 의미로 남겨 두고 싶다. .내가 어디서 살 건, 그 집엘 자주 가 있지 못하더라도, 내가 굶지만 않는다면, 나는 내 의미로 한껏 ㅜ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쓸데없는 고집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고 허영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엇다. 나는 그것으로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중이니까...
그와 나는 정말 고집쟁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못한다. 우리의 결혼생활은 처음부터 내내 그래 왔고, 저 양평집만 해도, 바로 그 고집의 마지막 소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우리가 십년 가까이를 꿈꾸어 왔던 전원주택의 자리라고 해도, 대책도 없이 세월이 가는 동안, 본의 아니게 맹지가 되어 버린 그 원래의 땅에 우리는 내내 미련을 버리지 못해 왔었다. 그가 암에 걸리자, 마침 임박한 정년을 하고 거기서 전원생활을 할 요량으로 집짓기를 서둘렀지만, 그 땅으로 가는길을 만드는 일은 산 너머 또 산, 터무니없는 길값을 요구하는 사람 앞에서 난관에 봉착했다. 그러나, 우리는 또 다시 그 계획을 포기하지 못하고, 상당한 무리를 감행하여 그 땅과 이어진 지금의 새로운 땅을 사서라도 그 땅으로 가는 길을 만들기로 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그 새로운 땅을 사고 보니, 오히려, 더 높다란히 올라 앉아 바로 앞 양자산의 전망이 더 편안하게 바라다 보이는 거기다가 집을 짓는 게 더 좋아 보였다. 그러나, 서둘러 집을 짓기 시작한 지 한 달이나 되었을까, 그는 결국, 암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떠나 갔고... 혼자 남은 나는 그 집을 기어이 끝까지 지은 것이다...
정말, 고집이라는 말 이외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내 마음은 오로지 한 생각뿐이다. 퇴원만 하면 곧바로 그 집으로 달려 가서 초야에 묻혀 책을 읽고 텃밭을 가꾸며 은퇴생활을 하겠다던 그의 마지막 모습, ...그 새로운 땅에 처음으로 들어섯을 때 환호하던 그의 모습, 당장 서둘러 계약하라고 병실에 누워서도 말하던 모습, 서너 번 그 주인과 만나면서 내가 기운이 없어서 자주 못오더라도 집사람과 함께 모든 것이 끝까지 잘 진해되도록 도아 달라고 손을 잡고 부탁하던 그 모습,. .병실에 있을 때도 외출해서 그 곳을 손수운전하여 찾아 가고 퇴원해 있을 때도 기운이 다 쇠해진 마지막 날까지도 그 곳에 집지으려고 몰두하던 그 모습을 내가 어찌 지우고 돌아서겟는가? 그가 어떤 다른 생각을 하고 어떤 생활을 하였다고 해도, 나는 양평집을 꿈꾸어 오던 그의 영혼을 내 영혼과의 가장 애틋하고 아름다운 공유부분으로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 , 우리가 아직 아무런 대책도없이 지니고 있으면서 틈만 나면 가서 텐트를 치고 자면서 꽃나무나 심고 텃밭 흉내도 내고 하던 그 안 땅을 가지게 된 사연만 해도 내게는 눈물겹다. 대학강의를 하고 다니면서도 나는 어처구니없게도 복부인 소리를 들어 가며 집장사까지 한 사람이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것으로 집안경제를 말아 먹은 사람으로 되어 있다...그런 야기를 언제 다 하겠는가...그 이야기는 다음에 언제고 할 기회가 있을 것도 같다. 한 마디로, 그와 나는 누가 보아도 이해하기 힘든 삶을 살면서 서로의 관계도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엄다. 말하자면, 때로는 함께, 때로는 각기 혼자서, 고집에 또 다른 고집을 잇대어 왔다고 할까,, 가히, 동키호테적인 삶이엇다. 그런데, 그가 가버린 지금도, 내 삶의 구체적인 내용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그 자세만은 달라질 것 같지가 않다...
어린아에서 노인까지, 사실은, 누구라도, 알고 보면 다 무단하지 않은 고집쟁이들이다. 그것이 단순한 어떤 것에 대한 집착이든, 생리이든, 철학이든,...그것이 없음은 생명이 없음이다. 고집이라고 말하기가 꺼려질 때 다른 말을 쓸 뿐이고 자기와 같은 행동을 취해 주지 않는 다른 사람의 내면의 이유를 깊히 알지 못할 때, 그것을 무단히 고집을 부리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 안의 이유야 어떻든,간에, 그 행위만 같아 ㅂ모여도 사람들은 그 행위 안에 들어 있는 다른 고집은 더욱 알아채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채로, 동류인 줄 알다가 배반하고 배반 당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사실, 보기에는 달라 보이는 행위도, 그 안의 이유, 동기느 똑같을 수도 있고, 같아 보이는 행위도 그 이유는 다를 수도 있다. 같은 행위도 그 행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기도 하다. 그런 내면의 이유가 그 사람의삶의 자세이자, 목적이며 그 수행방식을 포함할 때, 그것을 그의 스타일이라고 해야 될 것이다. 그것은, 남에게 보이는대로가 아니라, 그 자신이 자신의 행위에 부여하는 의미라야 한다. 그런 자신의 스타일을 모른다는 것은 바로 자신을 모르고, 자신의 존재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상황에서도 그 어떤 고정틀에 매립되지 않고 자기답게 수행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피할 수 없는 상황은 즐기라고 하는 말이 있지만,나는 그 말이 어떤 상황을 닥치는대로 생짜 그대로 즐긴라는 말이기보다,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우리 자신의 스타일을 즐기라는 말로 받아 들이고 싶다. .그것도 아니면, 존재는 너무 무으미하므로....그렇다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받아 들여야 할 스타일이 있는 고집은 어떤 것일까?
어제,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 말씀 중에 나온 성경말씀 한 ㅜㄱ절은 전도서 12장, 1절에서 8절까지였다.. 성경의 번역이 내 마음에 안들어서 그 원문을 보기 좋아하는 나는 어제도 그것을 들여다 보며 군데 군데 이해가 안가던 부분을 조금더 알게 되었는데,그러다 보니, 그런 내 행위가 바로 내가 지금 내내 궁구하고자 하던 바로 그 의미와 당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작은 의미도 놓치지 않고 자꾸 들여다 보고 또 보면 큰 의미와 닿아 있다는 것...그렇다면, 인생의 작은 의미들이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는 뜻이 아닌가? ..그 성경말씀은 .우리가 젊어서 추구하고 구가하던 그 모든 의미들이 다 부질없다는 것이다..무의미..그러니, 모든 세상과 너의 한께가 오기 전에, 하나님께로 오라....meaningless,...헛되고 헛되고 또 헛되도다..그렇다면, ..다 버리고,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나서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헛된, 작은 의미들을 다 버리라는 말은 인생의 작은 의미들에게 접근하여 즐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 작은 의미들을 놓치지 말고 즐기되, 그 안에 갇히지 말고 그것을 벗고 넘어서서 더 큰 고집, 궁극적인 고집에 이르라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가히, 모든 고지들을 총망라한 대고집이다. 우스개 소리 같지만, 종교란 가히, 그런 고집이 있지 않고서는 제대로 가져지지가 않을 것 같다. 언제까지고, 공허로이 흉내만 내고 있을 뿐....그러므로...내 고집이든, 남의 고집이든, 새처럼 작은 인생의 소소한 의미들을 헛되다, 무단하다고 함부로 버리고, 그야말로 헛되이, 무작정 사랑하라, 용서하라고 외치기만 하지 않고 , 일일이 제대로 들여다 보고 이해하려는 성실한 삶의 자세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면 성경의 의미를 무단히 뒤집으려는 것은 아니리라..
오늘은 발렌타인 데이...잠시라도 안보이면 서로 찾으면서도, 무단히 고집 부리기를 잘 하는 준오와 이제는 조금 컸다고 준오, 그러면 매매한다? 하며 아빠 흉내도 내면서도 저 또한 자신의 고집의 의미를 잘 모 몰라서 그저, 서로 니가 문제야, 내가 문제야 다투기도 잘 하는 녀석들이 엄마가 마련해 준 선물 보따리를 들고 학교로 갔다. 녀석들이 정말, 고집과 고집 사이의 관계와 그 사랑의 의미를 다 알게 되는 날은 언제일까? 아마, 내가 이 모든 부질없는 의미들을 다 버리고 떠난 후이겠지..이제 .봄이 시작되려고 하는 2월 하고 도 중순, 그 동안, 작은 초코랫 하나 만한 소소한 작은 의미들일망정, 서로 가까이 맛보고 들여다 보고 부비고 비비대면서 열심히 살거라..귀여운 .녀석들...인생의 봄하고도 초봄이 막 시작되려는, 너희들이 돌아올 시간이 다 되었구나...하나님이 보시기엔 거기서 거기일지도 모르나, 이 조금 더 큰고집이라고 생각하는 할미가 너희들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