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히 떼쓰기
요즘 들어, 무단히, 무단히...라는 말이 좋아졌다. 그냥이라는 말보다는 좀 부정적인 분위기로 쓰는 말이지만, 나는 예전에 엄마가 쓰시던 이 말을 기억해 내고는 괜히 즐겁다. 아, 그러고 보니, 괜히라는 말의 옛날 말이로구나. 괜히도 예전엔 공연히라고 했던 말을 줄인 말이겠다. 모두 이유없이, 근거없이라는 뜻이리라...아무튼, 나는 요즘 모든 내 언행이 그렇게 뚜렷한 이유도 근거도 없이 꾸어지는 꿈처럼 흘러 가는 것을 즐기고 있다. 무념무상은못되고 우두망찰일지언정, 어린아이와도 같이 순간순간의 느낌과 생각에 따를 뿐이다. 되는대로, 캥기는대로, 꼴리는대로.., 나는 내가 그러고 있을 때가 매우 신기하고 재미있다.
준오가 하는 양을 보면 꼭 그렇다. 금새 까르르 웃으며 뛰놀다가도 금새 잊어 버리고 블럭이나 게임기에 열중하는 준오...어느 순간도 그 앞뒤와 무관하게 자유로우면서도 진지하다. 그러다가 지치면 떼를 쓰는데, 특히, 그럴 때는 무단히 그런다는 것 외에는 이러고 저러고 이유를따 지고 묻는 것이 무의미하다. 나 지금 피곤해, 네 살배기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이 그냥 누구의 흉내를 내고 있는가 햇더니, 그게 아니고 진짜로 피곤한 것이어서, 그 떼쓰는 말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다. 노,노,.노. 그래, 그럼, 너 잠 좀 자거라. 나 자기 싫어기 있어. 여기 있기 싫어. 그럼, 뭐 좀 먹을래? 먹기 싫어. 마음대로 해..으아앙....그러고는 아무리 더 소리쳐도 좀 시끄러울 뿐, 그냥 놔 두면 곧 다시 제 놀잇감을 찾아서 놀거나 할모니, 나 뭐 좀 주실래요? 상냥하게 말하거나 쓸쓸 잠이 든다...그러니, 떼를 쓴다는 것은 알고 보면 외적인 행동이 그렇다는 것이고, 사실은 저 중요한 이유, 피곤하다는 것, 그것이 있는데, 무슨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자꾸 묻고 따지고 그러겠는가? 알고 보면, 세상에 무단히라는 말은 그 진짜 이유를 알지 못한 사람들의 표면적 관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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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 오랫동안 따지고 재고 계획하고 수행하고 피이드백하면서..언제나 일관성 있는 합리적인 행동방식을 유지하려고 해왔다. 그러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그러지 못하는 듯이 보이는 사람이 참 답답해 보였다. 더구나, 무엇인가를 함께 도모하고 있는 상대방이 어떤 일을두고, 하게 되면 하겠다, 되는대로 하겠다는 말을 할 때, 나는 참 한심하기까지 했다. 그 태도가 오만하지 않더라도, 되는대로라니? 무계획하고 무책임하고무도덕한 사람으로 ㅂ모였다. 그런데, 내가 요즘 그런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꼭, 틀림없이, 절대로 어떤 행돋을 하겠다고 말하지 않게 되고 그 가치를 믿지도 않게 되어가는 것이다.준오가 언제 또 지치면 다 거부하고 떼를 쓸 건지 알 수 없다는 걸 늘 염두에 두듯이... 사실, 준오도, , 기본활수칙 몇 가지는 이미 숙지되었고,, 모든 걸 거의 다 들어주는 엄마가 없을 땐 말귀도 너무 잘 알아듣고 무엇이 옳은 것인가도 너무 잘 알아서 상냥하기만 하다. 옛어른들의 말대로 시근(소견)이 멀쩡한 것이다. 무엇이 정말 중요한가? 밥을 먹든, 잠을 자든, 그냥, 네가 선택해라, 네가 무단히 행했던 일에 대해 너 스스로 그 무단하지 않은 이유를 보게 될 것이다...진짜 합리주의는 바로 그것 아닐까...
어쨌든, 그 무단한 자유를 나 스스로에게도 허용하게 된 것이다. 이게 뭘까? 윳십 여년을 살아 와서, 나는 정말,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일까? 노인은 어린아이와 같아진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그래도, 나는 준오처럼 떼를 쓰지는 않는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도 아니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더 이상 내가 싫은 일을 마지못해 하는 일이 적어졌고 구구한 변명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오로지, 한 가지 변명이라면, 내가 그렇게 해도, 너희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지 않는가 하는 것뿐. 모든 사회적인관계에 신경을 쓰고 쿵짝을 맞추는 일이 다 귀찮아진 것이다. 정장을 갖추고 나가는 일은 될수록 피하 고 복장만 해도, 주로, 운동화와 청바지 차림에 그저 편하게만 입는다. 그것도 떼라면 떼가 아니겠는가?
지난 일요일에는 그 동안 별로 내키지 않는다고 떼를 썼던 교회에 처음으로 따라 갔다. 수 시티와 수 폴즈, 버밀리언을 통틀러 열댓 가족뿐이라는데, 근처의 대학에 유학 온 학샏들이 있어서 한 5, 6십명이 그래도 제법 분위기 있는 찬양과 예배를 이끌어 가고 있어서 놀랐다. 미국인 교회를 빌어서 쓰고 있어서 시설은 지하에 농구장이 있을 정도로 넓고 깨끗하였다. 복음성가는 한 곡도 내 귀에 익은 것이 업ㅁㅅ었지만 멜로디와 가사가 편안하게 다가오고, 모두들 매우 진지하고 어느 대학생의 성경 이야기도 참 순수하다. 특히 에미의 바이얼린 반주가 내 귀에 쏙 들어 온다. 식사시간 이외엔 남에게 그리 신경쓸 일이 없어서 더욱 편하다.
주말이면 이 집 저 집에서 초대해서 저녁을 함께 먹고 놀다가 오는데, 나는 아직 그런 개인집 초대에는 가고 싶지 않다. 서로 얼굴 마주 보며 긴 이야기하고 있기도 피곤하고 젊은 사람들 모여 노는데 괜히 노인네 하나 끼어서 함께 돌아가도, 멍청히 앉아 있어도 무단히 젊은 사람들을더 신경쓰게만 할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는 내가 눈이 잘 안보여서 버벅거리는 게 싫다고만 햇더니, 어머니는 가만 앉아만 계시면 되는데요고만 하니, 내가 원래 그런 성격이라고 ,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좋다고 말했더니 이제야 내 마음을 조금 더 알게 되는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하다. 또 혼자 되고나서 , 혹은 눈이 너무 나빠져서 의기소침해졋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실제로, 이 사람들은 모이면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게임하면서 시간을 즐기는데, 저 양반이 살아 있었다면 또 그를 위해서라도 따라 나서서 즐기는 척이라도 하다 보면 즐거워질 수도 있겠지만, 이제, 누구를 위해서 꼭 그래야 할 이유도 없으니 귀찮기만 한 것이다. 내 신경은 쓰지 말고 잘 놀다 오거라...그래도, 꼭 돌아올 때는 메인 디쉬를 한 가지씩 챙겨서 온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그러기가 쉽지 않을 텐데 다들 참 고맙다...집에까지 음식을 일부러 해 온 것도 몇 번이나 된다...
학교와 집 사이를 콩닥콩닥 뛰면서 순간마다 온갖 생활의 지그쏘 퍼즐을 꿰맞추며 사는 태오 에미를 보면 매우 측은하기도 하지만, 정말 대견하다. 그래, 너는 지금 그렇게 살아야 행복할 때다. 언제든지 퍼즐 조각들을 적재적소에 잘 맞추어 넣었을 때의 만족감...아무리 힘들어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게 더 편안치 않은 사람이 너인 것 같고 그게 너무 마음에 든다. 나도 그랬으니까...게다가, 놀라운 것은, 그런 힘든 사이 사이의 친교는 물론이고, 휴식과 오락도 충분히 즐길 줄 안다. 식구들 하나 하나가 다 제대로 즐기게 하는데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정작 나 자신은 그 시간을 진짜로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나와는 달리, 에미는 전혀 가식없이 그 속에 몰입이 된다는 것이다. 얼마나 다행한가? 나는 의식과잉이엇고 에미는 순수한 탐미주의 그 자체이다. 나는 얼마나 나 자신의 감성에 충실치 못하엿던가?
그렇다. 나는 무엇을 해도 그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그것을 즐기고 잇는 식구들을 보는 것으로만족하였다. 대리만족은. 자아가 성숙하지 못해서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보다 남이 원하는 것에 맞추는 것이라는 말은 적어도 부모의 마음을 너무 모르는 소리라고 치부하고. 나는 그것을 기꺼이 하고 후회가 없엇다.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식구들의행복인 걸 어쩌랴...내가 공부한답시고 물자와 시간을 썼다고 해도, 적어도 식구들의 건강과 공부와 안전이 이 더 우선순위였다. 지금은 될수록 내가 원하는 것을 취하려 하고 실제로 그럴 수 있는 나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충분히 주어졋지만, 그 우선순의는 마찬가지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보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는 것이 더 좋은 사람이다. 그러고 보면, 나에게 있어서는, 하고 싶은 것과 해야고 생각하는 것은 거의 동의어이다. 그 점에서 자주 깜짝 놀랄 만큼 에미와 의사소통이 잘 안되기도 한다. 에미가 마트에 갈 때마다 어머니, 무엇이 필요하세요?라고 물으면, 적어도 먹거리에 관한 한, 나는 당연히 식구들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기준으로 답하는데, 에미는 내가무엇을 좋아하는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묻고 이해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그거 싫다고 하셧잖아요...그건 식구들 건강에 안좋아서 그런 것이라는 말을 차마, 강하게 못하는 것은 내가 하는 말을 에미가 어떻게 생각할른지가 두려워서다..
나는 에미에게 지금까지 에미에 대한 내 마음속 생각들을 말한 적이 거의 없다. 에미는 그녀의 바이얼린 소리처럼 모든 일에 너무도 당당하고 분명해서 내가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같지가 않다. 젊은 날, 나도 저랬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은 누구보다도 생각이 올곧고 선하고 아름답다고 믿는 자존심이 강한 만큼, 주변 사람들이나 식구들에게 자신의 많은 것을 내놓고 봉사하지만, 그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지 않지 않았던가? 나의 시어머니는 늘 나에게 너의 생각은 너무도 훌륭하고 선하다. 너는 천사이고 나의 며느리라기보다 나의 선생이다라고 ,하셧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어머니가 그만큼 겸손해지신 순간에 하신 말씀일 뿐이다. 혹시, 내가 그런 말을 듣기 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셔서 그러셨을지도 모르겠다...남들에게까지 그렇게 말씀하신 것도, 자식자랑하기 즐거운 마음에서 그러신 것 아닐까? 누구나 그렇듯이...ㅎㅎ
아무튼, 근본적으로, , 좋고 싫다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사람과 그게 더 중요하다는 사람 사이의 대화가 늘 그렇다. . 오늘은 그래서 마음먹고, 내가 말했다. 어머니 입네는 좀달 거예요, 라든가, 어머니한테도 그다지 안 달 거예요....이런 말에 대해 그 동안,마음 속으로는 내내 불편하면서도 내게 신경써 주는 것을 고마워해야 하는 상황으로만 (내 시어머니도 늘 그랫을지 모른다.)묵인해 왓던 것을 오늘은 나도 나지만, 너네들 모두에게, 특히, 저 에비에게, 설탕은 안좋은 거니까, 좀 적게 먹었으면 좋겠다...라는데까지만.....지금은 맨식빵은 있어도 거의 에미와 나만 먹는다. 나도 알고 있다.
나는 이제 주부도 아니고 이 지에서도 그저 할머니의 위치일 뿐이라는 것을..모든 것이 주부중심으로 돌아가야지, 내가 자꾸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해 봣자 얼마나 큰 변화가 오겠는가? 여기서 아무리 좀 되어 봤자, 이제 저 혼자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또 도로아미타불이 될 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이제 말을 조금씩 하고 싶다. 아니, 해야 한다. ...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말하지못해도, 이 집의 식습관이 정말 걱정이라고....소금과 설탕이 잔뜩 들어간 과자와 빵, 야체는 거의 안먹고 고기만 먹는 식단, ,..나는 될수록 매끼 야채 샐러드를 준비한다. 에비한테는,이미 몇 번 말했다. 너 그렇게만 계속하다가는 나이 오십도 못채우고 가는 수가 있어...이제까지는 그 동안 제대로 멋먹은 것 봉충한 셈 쳐도 이제는 안돼...에비는 허리둘레가 지금 최악으로, 자그만치 42인치이다. 먹는 건 거의 양만큼 다 먹고 운동은 아직 못하니까...
그래도, 그런 내 생각이 조금은 전달되었는지, 며칠 전에는 오마하의 큰 한국식품점에 갈 때 내가 부탁한 것들을 거의 다 사와서 저녁엔 현미와 잡곡으로 밥을 지어 안먹겟다는 태오를 이리저리 달래가며 먹이려고 애쓰는 모습이 너무 고맙다. 얘들은 이거 안먹어요...하던 말을 이젠 더 이상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애들의 접시에도 샐러드가 꼭 올라간다. 이제 40일쯤, 남은 기간동안, 과연, 얼마나 달라질지 모르지만, 나는 꾸준히 떼를 써 볼 것이다. 나, 이게 제일 좋아...만으로는 안되고 너희들도 이거 먹어야 키가 크고 스마트한 사람이 돼... 에미도 에비도 쿵짝을 맞추며 샐러드 한 입이라도 더 먹으려고 애를 쓴다. 전에도 오죽 애를 썼으랴마는 포기하다시피한 모양인데, 이제 이 할미의 떼를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다....요즘은 그래도 좀 조심하는 눈치이지만, 이제, 저 달디 단 빵과 과자를 간식으로라도 제발 좀 사오지 말라고 말할 차례인데, 어떻게 받아들여질른지 모르겠다.. 마음 같아서는 싸움을 하더라도 꼭 그러라고 말하고 싶은데, 에미는 그런 부분에서는 또 마음이 너무 약한 것 같다. 먹겟다는 에비를 차마 못말리고, 못먹겟다는 아이를 억지로 먹이면서 마음이 아파 못견딘다.
오마하에는 안신경과 의사를 만나러 갔던 것이다. 의사는 아직 몇 달 동안의 자연치유의 기갖을 기다리면 대부분 좋아질 것이라고, 아무런 처방도 따로 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만 해도 얼마나 좋은 뉴스인가? 눈의 춧점이 잘 맞지 않아서 아직도 이메일도 다 에미가 읽어 주고대필해 주고 책은 커녕 티비의 자막도 잘 못읽어서 에미는 영화제목을 말해 주고 태오는 스포츠 게임 스코어를 말해 주어야 하지만, 내 휴대폰의 문자는 나보다 더 잘 읽어 준다. 집안에서는 보조기 없이도 제법 걷는다. 이제, 다음 주부터쯤 수영장에도 들락거리겠단다. .길고 더디지만, 앞으로 몇 달 더, 저 재활센타의 치료와 자연치유의 과정을 거치면서 제발, 제발, 모든 건강관리와 섭생의 방식이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그러나, 그것보다는, 내가 한국에 돌아갈 때 같이 가서, 6월학기 시작하기 전 두 달 동안이라도, 침도 맞고 단전호흡도 하고 좀 그러자고 꼬시는 중인데 여러가지 걱정을 하면서 잘 들을 태세가 아니다...하긴, 누가 그런 거 모르나? 그래도, 모든 것중에 무엇이 제일 중요한가를 생각해야지...내 딴엔, 무단히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걸, 쟤네들도 모르는 바는 아닌데, 지금 누가 떼를 쓰고 있는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결국, 어디에 있든, 자기건강은 자기가 지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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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무단히 글을 쓰고 싶지가 않아 이 방 저 방 마실만 다녔는데, 오늘은 또 무단히 써서 두서없는대로 올립니다. . 그 동안의 생각들도 정리하고, 님들에게 소식도 전하고 싶었으니, 결국, 또 무단히는 아닌 것이지요? ㅎㅎ
또 너무 길지만, 설연휴에 다른 집들 오라 오는 글 없을까 하여...ㅎㅎ
이제 해가 뜨면 거기서는 음력설날 전야가 되는 여기 이른 아침에. 쓰고 눈붙이러 들어갑니다...^^
님들 모두 모두 설명절 푹푹 잘 쇠시고, 이제 진짜 복 많이 많이 받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