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안단테, 안단테...

해선녀 2010. 1. 26. 11:05

 

, 그 추운 곳에 당신이 누워 잇다니. 비몽사몽 거실로 나와 봐도소파 위엔 더 이상 당신이 없다. 소파에 눕는데, 어디서 들려 오는 노래 소리... 그 밝던 창에 어둠 가득 찼네...내 사랑 낸나 병든 그 때부터...이유도 없이 눈물이 나던 그런 노래들이 내 노래가 될 줄이야. 보일러 스위치를 누른다. 여보, 춥지?  커피 끓일까? 응,  아니, 차 한 잔...커피가 끓는 동안, 너무도 현실적인 비현실 속에서 나인지 당신인지 알 수도 없는 흰새 한 마리가커다란 날개를 저으며 먼데, 당신이 누워 잇던 그 눈덮힌 산쪽으로 날아 간다. 

 

 두릅을 따고  아기 소나무 한 그루 캐 오던 양자산 계곡을 지나앞서 가는 당신을 따라 간다..힘들지?아니, 응, 그래 조금 쉬자.베낭을 내려 놓고 그 찌그러진 코펠 주전자에커피를 끓이는 당신 옆에서 나는 늘 그랫듯이 당신의 공주가 된다.   그래,  이젠 내가, 그 산아래, 그 창고집에 당신이 원하던  벽난로 하나 만들어 놓고 당신이 있는 그 양동쪽 산을 건너다 보며 커피를 끓일게.추웠지?아니, 난 괜찮아. 이제 내 옆에 앉아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당신.그 연기처럼,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자유로웟던 당신...  

 

 

 

 

어딜가나, 그의 존재의 여운이  대지를 덮는 저 눈처럼 나를  덮는다. 싸락 싸락 그의 옷깃이 스치는 고요의 소리가 들린다.  그가 마지막으로 즐기던 타바코 향이 코끝에 스민다. 손길이 와닿는 체온을 느낀다. 하는 일마다 그에게 물어 봐야지, 생각을 한다.   나물 반찬 하나에도 그의 생각을 버무리고,시도 때도 없이 나를 아득하게 하던 그의 짜증까지도 내겐 너무나 리얼한 내 존재의 습관이다. 깨고 나면 소소한 한 두 장면만 희미하게 남지만 밤마다 그와 함께 하는 일상의 꿈을 꾼다 .장난끼 넘치는 개구장이 모습이 대부분이다.  어젯밤도, 그가 뒤에 서 잇는 어떤 제자에게 자기가 먹고 있는 밥을 먹어 보라고 머리 위로 한 숟가락 휙 넘겨 준다  .손이.흔들려서 음식이 떨어질까봐 내가 그 숟가락을 바로 해서 그 제자가 잘 받아 먹게 한 마지막 장면만 생각난다.

 

올해는 정초부터 연거푸 하얀 눈이 내렸다. 모든 것을 하얗게 덮고  새로 시작하라는 서설이다. 당신과 내가 살앗던 그 세월도 그렇게 하얗게 덮힐  수 잇을까? 그리고 그 하얀 눈속에서  나는 다시 태어날 수 잇을까?   

그의 제자들과 함께 그의 숲에 갔다. 눈은 온산을 뒤덮고 그의 나무도 한 그루 이름없는 나무로 눈속에 발을 딛고 높이 높이 서 있다.  겨울햇살이 하얀 눈이불 위에서 한없는 고요와 평화 속에서 반짝이고 그의 제자들은 여전한 사랑과 존경의 꽃을 바치고 나무를 안고 어루만지거나 그 아래 누워 올려다 보기도 하고, 나는 우두커니 그의 나무 발치에 앉아서 그와 함께 산 아래를 내려다 보기도 하고 숲속 눈밭을 서성거리기도 한다.   

 

 

 

발아래 마루바닥이 따뜻해져 온다. 언젠가, 그와 내가 켜 놓고 바라 보던 향초를 하나 찾아 내어 불을 붙인다. 가물가물 깊이 숨어 잇던 심지가 일어서며 불꽃이 커진다. 그래, 나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저 밝아지는 촛불 같은 새 눈으로 나는  나를 바라 보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언젠가부터 알 수도 없이  잇어 온 내 영혼의 눈이다. 오래 잊엇던 그 눈으로 나는 다시 나를 바라 보는 것이다. 잔설을 혜치고  마른 풀이 다시 태어나듯, 나는 저 하얀 눈을 내 속에 모두 잦아들게 하고  대지로 다 내렷다가 내 안에서 다시 자아 올려야 한다. .저 눈속의 그의 나목이 이제 그리할 것이듯......

  

그가 매어 주던 등산화 끈을 혼자서 메고 그가 조여 주던 스틱을 혼자 조아서  비틀비틀 길을 나선다. 자동차들이 곰과 맷되지와 토끼들처럼 덤불에서 나무그늘에서 불쑥 불쑥 튀어 나와 내 옆을 지난다. 사람들은 나무들처럼 팔을 벌리고 서서 혹은 휘저으며, 혹은 웅크리고 앉아 나를 바라 본다. 초췌하고 볼품없는 한 여인을 무심히 혹은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 본다. 더듬더듬 지하철 계단을 내려 가며 등산길 불안한 고비마다 내가 붙들기도전에나를 잡아주던 그의 팔 대신 싸늘한  철제 난간을 잡는다.  

 

그래, 싸늘할 뿐이겠는가? 어느 순간에 눈속을 둟고 튀어 나온 나뭇가지에 찔릴 수도 잇고 발이 미글어져 굴러 떨어질 수도 잇다.  그런데도,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만남과 헤어짐들을,  다람쥐가 크코 작은 도토리를 주우며 놀듯, 그렇게  유유하고 자적하며 해낼 수 잇을까?  보이지 않아 더듬거리는 길을 순간마다 초긴장하여 걷지 않고 산책하듯이 갈 수 잇겟느냐고...

 

 

 

자신에게 주문을 외운다.  천천히 걷자. 무슨 일에서도 어떤 만남과 헤어짐에서도,  나는 느릿느릿, 천천히 걸을 것이다.  보이는 만큼만 속도를 낼 일이다. 토끼처럼 뛰지 말자. 맷되지처럼 돌진하지 말자. 그들을 바라 보며 즐기며 나는 곰처럼 어슬렁 어슬렁 그렇게 가야 한다. 앞이 영 보이지 않게 되어도 나는 걸으리라. 나는 천천히 느릿느릿 걸으리라.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던 내 젊은 날들의 추억마저 이젠 다 그렇게 느릿느릿 흘려 보내며....들려 오는 모든 소리와 보이는 모든 모습들에 찔리지 않고 상처받지 않으리라.  아니,들리지 앟는 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모습들을 바라 보며늘  즐기며 가볍게 걸으리라... 안단테, 안단테...이것은 내 오랜 주문이엇지만, 잘 되지 않앗다.

 

눈이 아직도 몇 번은 더 내리리라고 한다. 전례 드문 폭설이라지만, 나는그 송이 송이 눈송이들이 모두  더 깊이 내 안에 잦아들게 하고 그 안에서 작고 낮게 살고 싶다. .그의 여운을 내 안에 머금고 그와 내가 즐기던 커피향처럼 즐기면서 그가 못다 여미고 간 삶을 함께 다독거리며 이젠 이승에서 내게만 남은 짧은 시간을 가난하지만 재미잇고 아기자기하게, 느리고 한가롭게...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원래도 그랫던 그가  마지막으로 다시 찾고 싶어 했던  삶은 바로 그런 것이었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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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단테, 또는 모데라토로 2005. 01. 23 4

                                                                             

여름이 지나가고 있는 골목 2007-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