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눈은 사시사철 내린다
샤갈의 눈은 온세상 골목마다 사시사철 내린다. 3월에도 눈이 오고 5월에도 눈이 오고 한여름에도 눈이 내린다. 그의 붓은 골목 안 어디든지 언제나 걸려 있다...그러나, 삶은 우리들에게,될수록 몸을 오그리고 그 붓끝에서 떨어지는 혼몽한 물색에 물들지 않고 지나갈 것을 요구하곤 한다. 사람들은 골목 끝까지, 너무도 멀쩡히 걸어 가면서 눈인가, 어물거리고 있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 본다.그 때의 그들의 눈엔 눈이 보이지 않는 게 분명하다.
여보세요, 눈이 내리고 있어요...나는 맥없이, 그들의 옷깃을 붙들고 말을 걸어 보기도 한다. 나는 눈에 젖어서 눈에 묻혀서, 한 발짝도 더 이상.걸어나갈 수가 없을 것 같은데, 그들은 무슨 눈이 온다고 그래요, 하거나, 기껏, 잠시 속도를 늦추면서 아, 그래요,해 주는 것이 고작이다. 전단지를 내미는 손을 차마 밀쳐내지는 못하고, 잠시 머뭇거리는 것이다. 그들은 갈 길이 너무 바쁘다. 그렇다. 나도 그럴 때가 많다. 사시사철, 눈 속에서 강아지처럼 땅바닥에 뒹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오래 시선을 줄 수가 없다. 아, 나도 한 번씩, 그런 때가 있지, 욕보소, 하며 지나간다. .
DAUM 블로그는 바로 그런 사람들만을 위해 만들어진 마을이다. 시시때때로 눈에 젖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사시사철 눈이 내리는 이 마을의 골목 골목엔 거적때기 하나씩 둘러 쳐 놓고 동전 그릇 하나씩 그 앞에 두고 자리잡고 눈사랑을 애원하며 앉아 있다. 그들은 거적때기 이웃집들을 바람처럼 자유로이 기웃거리면서 서로 장단을 맞춘다. 아, 눈, 눈, 눈이다. 골목에는 언제나 휘날리는 눈발 속에 오고 가는 눈들이 마주친다.눈이 내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이 마을이 재미있는 것은,같은 순간 같은 눈발 아래에서도사람들은 제각기 조금씩 다른 눈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이 마을 바깥에서도 그래온 일이지만, 이 마을의 골목에 들어서고 보면 그 현상이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어떤 이가 함박눈을 맞고 있다고 하면, 어떤 이는 싸락눈을 맞고 있다고 하는가 하면, 또어떤 이는 진눈깨비, 또는, 아예 비가 오고 있다고도 하고 심지어는 지금 햇살이 곱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 휘날리는 눈들도, 자신이 바람이라고 하다가 종내는 자신이 비라고도 하면서 철퍼덕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린다. 각자, 함께, 집단환각에 빠지는 것이다. 그 결말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금새 툭툭 털고 일어나서,어디론가 빠져 나간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올 때까지 이 마을을 까맣게 잊기도 한다..
나는 지금 이 마을에 무엇으로 오고 있는가 그대는 나를 무엇으로 맞고 있는가...나는 안다. 이제 점점 내 눈은 눈도 아니게,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내가 눈인지 비인지, 또는 안개인지 바람인지도 모르고 그냥, 그 무엇에 나는 젖는다. 그 젖음을 함께 하기 위햐여 또 젖는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옷소매를 붙들고 인사부터 주고 받기 바쁘다. 딴에는, 그것이'예의'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적어도 전단지를 받아들고 관심있는 척이라도 해 주는 것이..그러나, 돌아서며, 나는 좀 부끄러움을 느낀다. 내가 왜, 이 골목에까지 와서 이러고 다녀야 하는가. 나는 미처 스스로 젖을 새도 없이 삭막하고 건조한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 나가기 바쁘다...
아닌게 아니라, 이 마을엔, 모든 것들이 샤갈의 그림을 닮아 있다. 그의 붓끝에서 떨어진 눈물에 젖어 모든 영상들은 서로 번지고 흐르다가 겹쳐지기도 하고 난데없이 분리되기도 한다. 현실도 아니고 꿈도 아닌 경계에서 우리는 자유여행을 한다. 사람들은 나에게 그러잖아도 사물의 경계가 분간이 잘 안되는 내 여린 눈을 위하여, 이 요지경속 같은 마을에 자주 드나들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럴까? 골목을 빠져 나가려다 말고 그러나 나는 말한다. 그래, 나는 나간다. 그러나, 바깥세상은 어차피 더 어지러운 곳. 어지럽기만 한 곳. 그 곳에서 나는 더욱 나를 잃고 실종된다. 아무 때고 와서 내가 맞고 싶은 눈을 맞고 싶은 만큼만 조용히 맞을 수 있는 마을, 이 마을로 나는 다시 오리라. 와서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리다가 거적때기 하나 깔고 조용히 엎드리리라. 킆릭, 클릭, 더도 말고, 同情, 어떤 눈으로든 눈을 함께 즐긴다는 표시의 동전 몇 닢 떨어지는 소리만 나도 나는 행복하리...
사진:순례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