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학습자의 심리 - 3
아우: 자네는 줄 위에서 걸을 수 있는 사람은 걸을 수 없는 사람보다 더 큰 영혼을 가졌다고 생각할 테지?
에보: 그건 좀 다른 문제가 아닐까. 줄타기는 단순히, 기술일 뿐이라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테니.
아우: 그것이 왜 기술인가를 묻고 싶다네. 그런 것들은 그가 배운 것이라는 것 때문에?
에보: 그렇지.
아우: 그렇다면, 사람이 배우는 것은 무엇이나 다 기술이라고 하게 되겠네?
에보: 왜 아니겠나. 배워서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기술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아우: 조금 전에 우리가 아야기했던 그런 아이는 부모로부터 몸짓하는 것을 배운 게 아닌가?
에보: 틀림없이 그렇지.
아우: 그러면, 그것은 영혼의 성장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단순한 기술모방이라고 생각해야 되지 않는가?
에보: 그런 좀 받아들이기 어렵네.
아우: 그러니까, 배워서 된 것은 모두 기술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는 거지. 자네가 방금 말한 것과는 반대로 말이야.
에보: 아니, 아무래도, 기술문제 같긴 한데...
아우: 그렇다면, 그 아이는 그 몸짓을 배운 것이 아니란 말인가? 자네도 그렇게 인정하지 않았는가?
에보: 아니, 그건 배운 것은 틀림없어. 그런데, 그렇다고, 기술도 아니네.
아우: 그렇지만, 자네는 방금, 배우는 것은 뭐든지 다 기술이라고 단언하지 않았나.
에보: 글쎄. 그렇긴 하네. 말하기나 몸짓이나 둘 다 배운 것이라는 점에서는 기술이지.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봄으로써 스스로 배울 수 있는 기술도 있고, 교사로부터 얻어내는 기술도 있지 않겠나.
아우: 영혼이 성장함으로써 얻게 되는 기술은, 그 둘 중에서 어느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에보: 둘 다 그런 건 아니고, 전자만 그렇겠지.
아우: 줄 위에서 걷기는, 거기에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단 말이지? 그걸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 기술을 배우지 아니겠나.
에보: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네. 그렇지만, 남이 하는 것을 관찰하고 그것을 아무리 세심히 연구한다고 해도, 그것을 다 마스터할 수는 없고, 역시 기술선생에게 가야 되네.
아우: 그 말 잘했어. 말하기에 대한 내 대답도 바로 그거야. 그리스인들 중에는,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을, 줄타기보다 더 많이 보아 온 사람들이 있지,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우리 나라 말을 배우려면 우리가 그 나라 말을 배우려고 할 때도 마찬가지겠지만, 교사한테 가야 하네. 그러니, 나는 자네가 왜 사람이 말하는 것은 영혼의 성장이고 줄타기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지 알고 싶네.
에보: 어째서 그런 지는 모르지만, 자네는 문제를 혼동하고 있네. 우리 말을 배우기 위해 교사한테 가는 사람은 이미 다른 어떤 언어, 말하자면, 자기 모국어를 알고 있고, 그 모국어가 바로 그의 영혼이 성장하는데 따라 배운 것이라고 생각하네. 그렇지만, 그가 다른 나라의 말을 배울 때에는, 그건 영혼의 성장 때문이 아니라, 기술을 배우는 것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은 걸세.
아우: 귀가 안 들리면서 말도 못하는 그런 사람들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다가, 아직 어릴 적에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그 전까지 어떤 언어도 배운 일이 없다가 그 사람들의 언어를 처음으로 배우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자네는 그런 아이가 말하기를 배우고 있을 때도 영혼이 커진다고 생각하는가?
에보: 그렇게 말할 정도로 무모해지고 싶지는 않네. 나는 우리가 말을 한다는 사실 그 자체로서 영혼이 성장했다는 어떤 근거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렇게 생각한다면, 영혼이 성장함으로써 다른 모든 기술도 배우게 된 것이라고 해야 될 테지. 그렇게 말한다면, 이렇게 말해야겠네? 영혼은 어떤 것을 잊어버릴 때마다 그 크기가 작아지는 거라고,
아우: 자네는 문제를 정말 잘 파악하고 있네. 실제로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테지. 어떤 의미에서는, 영혼은 학습을 함으로써 성장하고, 그 반대로, 무엇을 잊어버릴 때에는 그 만큼 영혼이 축소되는 것이라고, 그렇지만, 그건 은유적으로 하는 말이지. 우리가 전에 말한 것처럼. 우리는 영혼이 성장한다는 것이, 영혼이 더 큰 공간을 차지하게 된다는 걸 의미하게 되지는 않도록 주의해야 할 걸세. 영혼은 교육을 받으면 교육을 받지 않았을 때보다 그 능력이 더 커진다는 것이란 말이지.
그런데, 영혼이 배운다는 것과 성장한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지.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네. 신체적 발달을 놓고 이야기하자면, 자연스럽고 조화있는 발달, 그것 한 가지만 성장이리고 말할 수 있네. 두 번째 종류로는, 신체의 어느 한 부분만 발달됨으로써 신체적 부조화를 초래하는, 피상적인 성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예컨대, 손가락이 여섯 개로 태어난다거나 그런 종류야. 그런 사람들이 정상인과 너무 차이가 있을 때, 그런 성장을 보고 우리는 “기형”이라고 하지. 세 번째 것은 아예, “종양”이라고 하는 것으로, 악성적인 성장을 말하지. 여기에서도 신체의 한 부분이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은 할 수 있고, 실제로 그것이 더 큰 공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지만, 그것은 결국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것이지.
. 영혼에도 선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가치들을 지향함으로써 성장해 나가는, (소위) “자연적 성장”이라는 것이 있다네. 그러나, 우리가 그런 유익함을 추구하기 보다도, 단순히 호기심 때문에 무엇인가를 배운다면, 그런 학습도 어디엔가는 쓸모 있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성장”에 불과할 것일세. 예컨대, 바로우(Varro)1)**에서나 들을 수 있을 만한 대단한 플루우트 연주자가 있다면, 플루우트를 잘 불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것으로 그가 왕으로 추대된다고 해도, 우리는 그런 종류의 기술 때문에 그의 영혼이 성장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지.
어떤 사람의 치아가 하도 커서 적을 물어 죽였다는 소리를 들었다 해도, 우리는 우리의 치아가 그렇게 커지기를 바라지 않아. 영혼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는 유해한 기술, 예컨대, 쏘오스의 냄새와 맛을 감별하는 기술, 어떤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인지 알아내는 기술, 포도주의 제조연도를 알아내는 기술, 이런 기술들은 그렇게 가치로운 기술은 아닐세. 영혼이 그런 기술들만 키워 나가고 그 사람의 마음은 돌보지 않고 감각 쪽으로만 지향해 나간다면, 그것은 종양이나, 아니면, 아예 영혼의 말살이라고까지 해야 하네.
에보: 전적으로 자네 말에 동감하네. 그런데, 나는 갓난 아기의 영혼은 모든 것에 대해 전혀 무지하고 아무 기술도 없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자꾸 한다네. 영혼이 영원불멸하다면, 왜 우리가 태어날 때 아무 기술도 안 가지고 태어나는가 말이지?
아우: 자네가 제기한 문제는 정말 중요한 것이네. 난 정말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다고 생각해. 그에 대한 의견들이 하도 분분해서, 한 편에서는 자네처럼 영혼은 아무 기술도 없이 태어난다고 생각들 하지만, 또 한 편에서는, 나처럼 영혼이 모든 기술을 다 가지고 태어날 뿐 아니라, 학습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들을 기억해내고 회상하는 일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네.2)** 그나 저나, 자네는 지금은 그런 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물을 때가 아니라는 걸 알겠지? 우리는 지금, 영혼이라는 것은 그것이 차지하는 공간의 크기에 따라 크다, 작다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려고 하고 있는 마당이니까.
영혼의 외현에 대해서는, 영혼이 외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있다고 하면, 자네가 한 네 번째 질문 즉, 왜 영혼이 신체에 주어졌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검토할 때, 그 때 함께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 영혼의 크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마당에서는, 그것이 지금까지 항상 존재해 왔는지 안 왔는지, 미래에도 항상 존재할 것인지 아닌지, 혹은 그것이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가 또 어떤 때 지식을 가지게 되는지 어쩐지 하는 그런 문제들은 일단 상관이 없지 않겠는가?
정말, 우리가 이미 확인했던 대로, 신체에 있어서도 시간의 흐름 자체가 그 크기 변화의 원인이라고 볼 수 없네. 그리고, 우리는 성장해가면서도 기술이 전혀 없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나이가 든 후에야 그것이 나타나게 되는 경우도 보아 왔네. 그 외에도 많은 주장들이 있지. 어쨌든, 내 생각에는 그런 것들이 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신체의 성장에 따라 영혼의 크기도 커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하네.
그러면, 자네만 좋다면, 이제, 영혼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기는 하지만, 자네가 촉감은 우리의 영혼에 의해서 우리가 전신으로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에 대해서도 한 번 분석해 보기로 하세.
에보: 나는 사실, 힘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무언가 더 이야기해 보고 싶다네. 그렇지만, 일단 방금 그 문제를 다루는데 대해서는 찬성하네. 영혼이 신체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나이가 듦에 따라 신체가 커지면서 우리는 영혼에서도 더 큰 힘이 있음을 볼 수 있게 되지 않는가 말일세. 물론, 미덕은 대개 정신적인 것으로, 힘은 신체적인 것으로 돌리지. 그렇지만, 나는 영혼이 없는 신체는 힘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영혼에도 힘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네.
물론, 영혼이 그 힘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신체라는 매체를 통하여서일 뿐이라는 것은 인정해야겠지. 그러니까, 영혼도 신체라는 도구를 통해서 감각이라는 것을 사용하지. 그렇지만, 힘과 감각적인 지각능력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인간이 가진 기능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신체에 속하기 보다 영혼에 속하는 것이라는 점을 의심할 수가 없어.
그런데, 실제로 그렇듯이, 나이가 든 아이일수록 갓난아이보다 눙력이 더 커진다는 것, 그리고 사춘기와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노인기에 들어가서 다시 힘이 줄어들기 전까 지는, 하루 하루 능력이 더해진다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영혼은 신체의 성장과 함께 커가고 신체의 노쇠와 함께 또한 쇠퇴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는 거지.
1) **역주:
2) **역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