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너기
오래 간직하고 있던 행운의 열쇠를 꺼내려고 장 한 쪽을 가리고 있는 책상을 치웠다. 먼 길 떠나는 막내 비행기표값에라도 보탤까 하여. 아, 그 장에 열쇠가 없다. 황당해 하며 온집안을 들쑤셔 샅샅이 뒤진 끝에, 아이고, 베란다 잡용품 서랍에서 열쇠가 나오네. 세상에, 책상을 그리로 옮길 때 금방 쓰게 될까 하며 안 쓰는 안경갑 속에.그것을 넣어 그 서랍 깊숙히 넣어 두지 않았던가. 그저, 기억이 어렴풋한 채로 무심히 버릴 수도 있었던 그 안경갑...사소한 것도 아니고 딴엔 그렇게 소중한 것을 어이 그리도 까맣게 잊는단 말인가.
덕분에 오래된 사진 상자 하나를 건졌다. 반갑다. 하나 하나 들여다 보면 대부분 새록새록 기억이 떠오르지만,도무지 어디서 누구와 찍었던 것인지 알 수 없는 것도 있다. 그런 것들은 추려내고 다시.뚜껑을 덮고 넣어 둔다. 언제 또 그렇게 내 헤설픈 기억을 더듬어 가며 일부러 들여다 볼 일 있겠는가. 어쩌다, 또 무엇인가를 잃어버려 뒤지다가 만나면, 나는 또 얼마를 추려내게 될까.
사진들이여, 그 날까지 내 기억창고 속에서 꼭꼭 잠들어 있을 지어다. 널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며, 망각의 강을 건너 가는 날이 올 때는 오더라도 나는 아직 너를 일부러 강물에 버리지는 못하겠네. 그러는 나 자신도, 누군가의 강물 속에 버려지겠지. 우린 몇 개의 강을 건너다 보면 동행을 잃어 버리고 이내 무슨 강을 건넜던지조차 잊어버리고 말아. 삶은 그런 거야. 어느 강을 건너야 할른지조차 몰라 헤매다가 겨우 찾은 강물 앞에서 자신을 가벼이 추스리고 건너 가기도 힘들어 하지. 사진들아, 미안하다. 나는 너를 버리지도 못하고 데리고 가지도 못하며 엉거주춤 일어서서 또 다음 강을 건너 가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