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12월의 기차여행

해선녀 2004. 12. 2. 10:14

 

어제는 12월 첫날, 오늘은 그래서, 겨울이 시작된 날, 하하, 어때요? 어제 글을 올리지 못하고 오늘로 미룬 핑계랍니다.  님들은 12월을 어떻게 맞이하셨는지요?  미루님은 아직도 슬프세요, 저 기차 소리가? 저는 지금 기차소리를 즐기며 타고 가고 있어요. 오늘은 신새벽부터 이 기차 소리를 들으면서 잠이 깨었답니다. 어린 시절, 기찻길 옆에 살던 때처럼. 그러나 그건, 오늘따라 저보다도 먼저 일어난 남편이 알커피를 가는 소리였어요...

 

이 기차는 좀더 아름다운 우리 자신을 찾아 떠나는 기차이지요. 지금 창밖에는 12월 초입의 아침노을이 시작되고 있어요.  기차를 타신 분들은 다 알지요.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우리는 기차와 함께 앞칸에서 뒷칸으로, 뒷칸에서 앞칸으로, 끊임없이 밀러가고 밀려 오게 되어 있다는 것을. 가을에서 겨울로, 겨울에서 또 봄으로...이음새 부분에서는 잠시 잠시 불안하기도 하겠지만, 그럴  일도 아니었지요. 예. 저는 아직 젊고 아름다우신 님들과  이렇게 함께 이 기차를 타게 된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아침식사로 오늘은 야채와 참치 샐러드에 맨인절미를 조금 넉넉히 구웠어요. 님들도 좀 드셔 보세요. 꿀 대신에 메이플 시럽도 부드러워서 괜찮은데요. 그런데, 우리를 이렇게 한 기차에 타게 해 준 것은 무엇일까요. 굳이 신의 개념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이 세상엔 순전한 우연이라는 건 없어 보이거든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고 또 오는 세상과 사람들...그러고 보니, 푸른샘님 방에서 읽있던 '나비효과'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나비의 날갯짓의 효과에 이어지는 효과들...저는 그 나비가 날갯짓을 하게 된 그 앞의 원인이 무엇이었을까가 궁금하더군요. 혹시, 아무 이유도 원인도 없이, 그냥 그래보고 싶었을까...인간의 마음과 행위에 관한 한, 나비 효과를 너무 믿어서는 안되겠지만, 그것들이 서로 인과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참 재미있는 해석이잖아요. 굳이 이론을 들먹거리지 않아도 말이예요.

 

이왕에, 효과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마음에 대한 좀더 오래된 또 하나의 합리적 이해, 플라시보 효과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마음에 관한 한, 우리의 마음의 요소들이 그렇게 서로 인과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나비효과라면,플라시보 효과는 그 요소들 하나 하나는 알고 보면 허무맹랑, 아무런 근거도 없는 단순한 믿음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많은 경우에 우리들은 그런 일은 자신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싶지요. 특히, 신앙인들은, 그 이론이 결국, 신앙심이란, 나비의 날갯짓만한 근거조차 없는, 본질적으로 맹목적인 자기최면 효과일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 그런 이론을 기피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35년 전, 처음으로 플라시보 효과에 대해 배웠을 때, 저는 그 설명에 홀딱 반해서 그에 관해 더 많은 책을 읽으려고 광화문의 범한서적에 가서 뒤지다가, 어찌 어찌 신경심리학 책을 하나 손에 넣었습니다. 인간의 감성성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데서 더 나아가서, 그 책은 마음이 우리의 행위뿐 아니라, 곧바로 신체에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싸이코 조매틱 이론의 직접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있었지요. 뇌의 어느 부분이 어떤 종류의 지능이나 심리적 상태를 관장하는지를 설명하는 그 이론에 매료되어 사전을 찾아가며 밤을 새워 읽기도 힜습니다. 아, 내 마음은 아무런 근거 없이도 제 생긴대로 돌아갈 수도 있겠구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로구나...

 

 아, 순례자님도 들어오시네요. 기차소리가 달음질쳐 가는 것을 바라보며 기차 밖에 서계시는 줄 알았더니. 안으로 들어와 계셨군요. 그러나, 그 책이 너무 어렵기도 했지만, 저는 곧 흥미를 잃었습니다. 인간의 마음과 행위를 그런 식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내가 지금 무엇을 먹고 싶고 내가 지금 누구를 왜 사랑하고 내가 앞으로 무슨 행돋을 할지, 그것이 모두, 마치 라디오의 부붚처럼 그 기능이 저 혼자 규정되고 발동되는 뇌의 구조와 화학반응의 인과적 법칙에 달렸다니...

 

저는 그 때 통계학도 버렸습니다. 그렇게 시시콜콜이 합리적으로 분석된 마음의 요소들간의 관계를상관계수로 파악하고 설명할 수 있다는 것에 너무 자존심도 상할 뿐더러 무모하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나일 뿐, 아무 것으로도 나를 설명할 수가 없다. 마음은 마음으로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다...지금 생각해 보면 매우 유치한 생각이었지만, 그 때의 저로서는 그것은 마치, 요즘의 디지탈 사진기로 내 마음의 갈피들을 한 올 한 올 고스란히 다 찍어낼 수 있고 어떤 수술만 하면 조작할 수도 있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면, 엄격한 인과법칙도 아니고, 맹목적인 감성적 믿음일 가능성도 절대 없는, 마음에 관한 또다른 이해가 있는가요? .그렇다고, 남에 대해서는 플라시보적으로만, 자신에 대해서는 그것을 빼놓고 나비효과적 인과관계로만 이해할 수도 없고...미루님, 저기 터널이 다가오고 있어요. 저 터널을 지나면 마음을 다르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내 마음에 대해 다른 이해를 하고 내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말입니다.

 

12월이 되면 내가 좀 달라질까, 그런 기대도 없지 않았어요.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자신에 대해서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푹 동면에 빠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그렇습니다. 저는 자꾸만 저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해보려고 한답니다. 그것은 그러나, 그다지 달라질 것도 없는 자신을 새로이 꾸며 내어 놓아 다른 상품인 것처럼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내가 나를 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끝없는 자기설명놀음이기도 합니다. 꼭 어떤 이론이 아니더라도, 그것들은 나를 보는 새로운 관점들이니까요.

 

커피를 더 따라 드릴까요? 커피는 역시, 금방 갈아서 끓이는 게 향기가 좋지요?  아니면, 저 노을빛 하우스 와인도 한 잔 곁들여 볼까요? 떡이 싫으시면 마늘빵도 있으니 함께 드셔 보세요. 그 새로운 관점에 따라서 우리는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다른 반응을 하고  그것이 또 다른 반응을 낳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오로지, 자기 자신 때문에 달라질 것이지만, 더 아름답게 달라지기 위하여, 조금씩이라도 끊임없이, 또 다른 자신에 대한 관점를 가져야 하지요.

 

그게 바로 나비효과라구요? 맞아요..내 안의 나비효과..그러나 플라시보의 가능성도 늘 열려 있는...그러고 보니,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움직일 수 있다는 말도 생각납니다. 결국, 마음의 변화에 관한 한, 나비효과나 플라시보 효과나, 그 전체적 관계를 보느냐, 부분적 성격을 보느냐의 관점만 다를 뿐이지요. 우리는 아름다운 허무의 성을 쌓을 수도 있어요. 마음은 그 실체가 없는 것이므로. 아, 그렇다고 너무 허무해 하지 맙시다. 플라시보 효과론도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지, 마음은 근거없는 믿음으로만 가득 차 있다는 소리를 한 것 아니잖아요.

 

아, 노을이 벌써 걷혀 가고 있어요. 그게 아니라, 기차가 남쪽으로 방향을 조금 더 돌렸나요? 그래도, 잘 하면 우리 뒷쪽에서 해가 떠오른 모습을 볼 수 있겠어요...그러니, 미루님, 우리들의 아름다운 여행을 위하여, 유리창에 더 가까이 다가 오셔서 저 뒷쪽에서 나올 해를 보세요. 그리고는 또 다른 눈으로 저를  좀 봐 주세요. 저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러시는 미루님은요? 에이, 참, 똑같다고요? 하하,  기차는 지금 12월 초입의 역에서 잠시 멈추어 섰습니다.  다음 역을 향하여 출발하기 전에, 아직도 이 기차에 오르지 못하신 분 계시면 타시라고 하십시다. 어서 타세요. 진짜 여행은 이제부터일 수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