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가을 저녁에
해선녀
2004. 10. 14. 23:16
서쪽 숲으로
햇살이 비끼는 가을저녁에
커피 한 잔을 들고 창가에 앉는다.
나무가지 사이로 아른아른
비로소 보이는 여백의 하늘
뜬금없이, 이름조차 잊어버린
유년의 친구들이 생각난다.
똘망한 까만 눈에 도돔한 입술로
끊임없이 재잘거리던
계집아이가 생각난다.
내 안경을 떨어트려 깨어 놓고
겁먹은 눈에 눈물이 반짝이던
머스매도 생각난다.
나뭇잎 그림자 사이로
흔들리던 기억조각들이
깊숙히 땅속으로 스며들 즈음.
나는 주홍색 단풍빛깔이 가득 번진
수채화 한 장이 된다.
사진: 순례자 / 칼럼 황혼의 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