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되세요
릴케는 오곡과일 다 무르익고 포도주에 단맛 들 수 있도록 이틀만 더 달라고 하였다지만, 인생의 가을을 맞이하는 나이에 들어, 나는 어쩌면 남은 평생을 다 주어도 그 단맛 다 들지 못하고 쓴맛인채로 그냥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 나는 그런 생각이 제일 두렵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쓴맛인채, 자신을 속이면서라도 종종, 인생은 달다, 달다 하며 조바심을 내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자꾸 달다, 달다 하면 진짜로 달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거짓말도 자꾸 하면 참말인듯 자기최면에 걸리듯이. 시를 쓰는 마음에도 다분히 그런 마음이 들어있을 것입니다. 시인은 허가받은 거짓말쟁이인 것이지요.
나이가 들수록 추억어린 글들을 읽으면서 자주 웃음을 짓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그 글이 단순히, 나도 그랬었지 하는, 좋은 기억이든, 나븐 기억이든, 비슷한 종류의 경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기 때문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 글이, 내가 가지고 있는 그 기억에 대한 느낌이나 삶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에 의미있는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때문에 추억은 소중해집니다. 추억은 단순한 기억이 아닙니다.
기억은 꿈처럼, 살아가는 동안에 점점 희미해지거나 영영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추억은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추억은 기억을 마음 속에 아름답게 되살리는 일입니다. 기억이라는 포도 알갱이들을 넣고 오래 숙성시킨 것입니다. 추억은 그리움을 동반합니다.그러니까, 추억이라는 말은 말 그 자체로 이미 아름다운 것이지요, 나이가 들면 추억 먹고 산다는 말, 나쁜 뜻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추억은 과거이든 현재이든, 그 현실이 힘들수록, 오히려 더 보름달처럼 중천에 둥 떠오릅니다. 아무리 작은 기억에서 시작되었더라도, 추억은 먹으면 먹을수록 더 커지면서, 포도주에 단맛 들듯 더 깊은 맛이 드는 그런 것입니다..
추억은 과거에 대한 꿈입니다.꿈이 다 그렇듯이, 추억은 기억을 왜곡하거나 변형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추억이 아전인수격으로 자신을 미화하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자신을 포함한 그 상황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더 깊은 이해와 연민을 가지고 바라보면서 인생을 재해석하는 일입니다. 추억은 여기 저기 단편적으로 의미없이 흝어져 있는 맹목적인 기억들을 뒤에서 천천히 따라가며 확인하여, 내가 만들어 가는 내 삶의 좌표 위에 끊임없이 자리매김해 주는 그런 일입니다.
'거짓말 같이' 아름다운 추억, 단순한 기억만이 아닌 추억의 용량은 샘물처럼 끝이 없습니다. 추억 만들기라는 말도 있지만, 그래서 '추억꺼리'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여행도 하고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다시 생각해 보면, 추억은 기억의 양과는 무관합니다. 자리에 앉으면 끝도 없이 많은 기억들을 쏟아낼 수 있지만, So what? 아직은 그 의미를 도무지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황당합니다.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일들을 비롯하여, 우리가 살아온 동안 경험한 모든 사소한 일이 다 추억꺼리입니다. 어느 순간에 문득 그 작은 추억의 심지들에 불이 켜지면, 추억은 어둠을 밝혀 주는 한 줄기 빛이 되어 우리들이 원래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비추어 줍니다. 추억이 없는 삶이 있다면 그 삶은 맹목입니다.
나의 미래에 대한 꿈은 무엇보다도 삶의 단맛을 다 알고 가겠다는 꿈, 추억의 부자가 되겠다는 그 꿈입니다. 그렇지요, 돈이 있고 없고 간에, 어떤 일에 종사했던 간에, 인생의 쓴맛만 알고 가는 노년은 그 젊음 분 아니라 그 삶 전부를 잃고 가는 것이지요. 노년엔, 다른 부자는 못되어도 내 안에서부터 삶의 단맛을 길어 올리는 추억의 부자는 되고 싶습니다.
추억은 아름다워라. 오곡과일 무르익는 중추가절하고도 추석연휴, 깊어가는 밤에, 마음 속에 아직도 가득한 풋과일 같은 기억들,썩은 기억들, 하나하나 들여다 보며, 골라내고 뒤집어도 보며, 아름다운 추억으로 갈무리해나갈 궁리를 해봅니다. 여려분도 부다, 부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