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비낀 숲에서

가위 눌린 봄

해선녀 2004. 3. 3. 00:11

 

 

 

1.



소리지르라데요, 퍼지르라데요.

 

눈물 속에서 떠내려 가라데요.

 

 

 

못박힌 상처 속으로 들어가서

 

또 문을 열고 들어가서

 

간구하라데요.

 

 

 

티비는 밤새도록 속보를 전하고,

 

눈가에는 그 죽어 넘어진 아이처럼

 

파리 한 마리가 꼼지락거리고

 

목소리는 가맣게 빗장 질러져

 

 

 

잠이 든 것인지, 아닌지,

 

머리 위는 바그다드의 땡볕뿐이었어요.


 

 

 

 

 

2.

 


봄이라네요.

 

그래도 봄이라네요.

 

 

 

탱크와 폭격기와 미사일들이 내뿜는

 

화염과 굉음을 뚫고

 

그래도 봄은 스며들어 왔어요.

 

 

 

까르르 웃으면서

 

내 얄팍한 장지문을 열고 들어와

 

가슴뼈 아래 질펀히 흐르던

 

내  피를 핥아 줄 거라네요.

 

 

 

아, 넝마 같은 명분이여.

 

잔인한 봄이여.


 


 


 

 

3.

 


미사일 탄도 끝에서 산산히 부서진

 

영혼들이 세상을 하직하는 곳

 

그다드의 성에도 그대는  찾아와

 

 

 

피 낭자한 거리에서 숨을 죽이고

 

모래바람 속으로 슬픔에 사무쳐

 

걸어가고 있구나,  그대, 봄이여.

 

 

 

얼굴 비뚜름히 멈추어 섰다가

 

아무 것도 모르고 또 이 땅에 태어나는

 

생명들을 와락 끌어안고 말았는가.


 

 

소멸의 계절로 추락해 가면서도

 

그 밝은 얼굴 끝내 감추지 못한

 

그대, 슬픈 지구촌의 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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