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시원한 공기가 관악산 봉우리에서부터 신선의 옷자락을 타고 내려와 숲을 건너 마을로 내려오는 동네...봉천 11동...나는 이 동네가 좋다. 봉천동, 그 이름이야, 좀 촌스러우면 어떤가마는, 달동네 빈티도 벗을 겸, 서울에서 제일 크다는 11개 동이나 되는 행정구역이 번호순대로만 나열되어 있는 몰개성도 벗을 겸, 동네 이름이 인헌동이라고 바뀌더니, 이제는 인헌길이라는 좀더 세련된 이름으로 바뀔 모양이다. 인헌은 강감찬 장군의 시호엿다던가, 인헌초등, 중, 고등학교가 다 잇어 왓으니, 하긴, 주민들에게도 이미 낯설지 않으니, 너무 멋내기도 아니고, 너무 촌티도 아닌, 이 이름이 한 십년쯤 뒤면 우리 입에 더 익어 잇을 날도 올 것 같다.
초저녁잠에서 깨어 나면, 뻐꾹이 소리, 아직도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후, 후, 후, 후, 네 박자로 우는 새소리, 먼숲에서는 소쩍새 우는 소리까지 들리는 동네...봉천동...반듯반듯하게 구획이 지어진 길 사이사이로 구불구불한 작은 골목들이 각양각색의 집들을 꽃처럼 이고 지고 달고 이어지다가 그 끝에 재래시장이 옷섶처럼 열리는 동네...상점과 마트와 병원과 은행들이 빼곡히 들어차서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웬만한 일들은 다 볼 수 있고, 그 끝은 다시, 남부순환대로로 이어져 온갖 노선버스들이 다 있고, 땅속으로 속 들어 가면 2호선 지하철이 나를 어디로든 데려다 주는 동네, 봉천동....인근의 신림동 시절을 포함하면, 근 40년을 이 어름에서 살아온 나는 이 동네를 떠날 어떤 이유도 아직은 없다. 아직도, 저녁까지 초여름 햇살이 두어 시간은 남은 다서시 반 무렵, 복지관에서 이런 저런 공부를 끝내고, 봉천동 끝에서 끝까지 두 정거장, 지하철을 타고 와서 마을버스로 환승하여 마을로 올라 오는 길은 참 한가롭다. 시장에 들려, 양손 가득, 찬거리들을 사들고, 관악산 봉우리를 바라 보며 올라 오는 것도, 내 오래된 일상이지만, 날씨가 더워지면서부터는 웬만하면, 마트에서 주문배달해다가 먹고, 그냥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 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요근래, 한 3, 4년, 썬캡과 썬글라스와 운동화와 청바지를 거의 유니폼처럼 착용하고, 거의 매일 복지관에 나가서 무엇인가를 배우고 들어 오는 일상이다. 요즘은 한동안 심취햇던 도자기보다 언어에 더 재미를 들여서, 중국어, 일어, 스페인어, 이태리어, 독일어...다섯 가지 언어수업을 듣는다. 말이 5개국어이지, 특히, 스페인어와 이태리어를 맨날 혼동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겨우 겨우 꼴찌로나 따라 가는 나는, 배운 것들을 7,80프로는 다 잊어버리는 나 자신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수업시간에서만은 하나라도 내가 모르면 절대로 그냥 넘어 갈 수 없었던 그 옛날의 내가 아닌지 벌써 오래다. 주마간산일지언정, 버스를 타고 가며 바깥 풍경을 즐기는 사람처럼, 5개국어 아니라, 아마, 십개국어라도, 그런 식으로, 구경할 기회만 잇으면 나는 들여다 보고 재미잇어할 것 같다. 달달 외워서 그 언어를 구사할 엄두는 못낸다. 그저, 그 언어들이 세상과 사람에 대하여, 무슨 소리를 하고 잇는지, 오히려, 더 많은 문장을 풍부히 접하면서 그 언어 속에 들어 있는 마음들을 만나고 싶을 뿐이다 버스 안의 사람들의 얼굴도 이제,내가 먼저 알아 보고 먼저 말을 건네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들이 누구이든 간에, 그 현장에서 그들이 하는 못짓과 대화를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귀를 기울이며, 그들의 마음을 만진다. 아마, 눈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어도 나는 여전히 그럴 것이다. 아니 더할 것이다.
한 80대 할머니가 버스에 오르니 한 젊은 아낙이 자리를 내준다. 지팡이를 들었지만, 그다지 거동이 굼뜨지도 않은데, 한 70대 할아버지가 큰소리로 말한다. 아니, 노인네가 집에 가만히 게시지 않고 왜 맨날 그렇게 나와 다니고 그러세요? 그러다 다치면 자식들이 고생하잖아요? 할머니는 아무 말 안하고 웃기만 하는데, 옆에서 한 60대 할머니들이 그런다. 에구, 모르는 말슴 마세요. 노인들이 한 번씩 밖에도 나가 줘야 며느리도 편타고요.병원에도 다니고, 시장에서 마늘이라도 몇 개 사와서 까고...왜 할 일이 없어요/ 그러고 보니, 지난해 말까지도 보이던, 한 90였을까, 아주 더 힘들어 보였던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천천히, 아주 느리게 그 할아버지가 버스를 내려 간 후, 어느 아저시가 저 할아버지는 버스비도 한 번 안내시면서 왜 맨날 저러고 다니시게 자식들이 방치하는지 모르겟다고 한다. 저 할아버지는 혼자 사세요. 매일 버스가 한가한 시간에 저렇게 동네를 몇 바퀴 돌고 들어 가시는 게 유일한 낙이지요...그런 말을 하는 기사가 참 고맙기도 하더니, 혹시, 지난 겨울에 어찌 되시기라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저 할머니는 저 할아버지의 말에 너무 기죽지 말앗으면 좋겟다.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고 보고 싶고 하고 싶고 생각하고 싶은 것, 그것이 생명의 아름다움이 아니던 가아니, 아무래도, 이미 서로 잘 아는 사람들끼리의 농담 따먹기였을 것이다.
아카시아 냄새가 어린시절 오래 오래 가지고 놀며 코를 박고 냄새맡게 하던 엄마의 빈 코티 분통 속처럼 온동네를 은은한 향기로 가득 채우더니 며칠 전, 비가 온 뒤로, 요즘은 그 냄새도 완전히 사라지고, 이젠, 한층 짙어져 가는 초록의 빛이 나를 산책로로 유혹한다. 오늘은 그냥 지나친다.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큰길에서 미리 내리지 않고, 거의 빈차로 산공기를 가득 채우고 큰긱 건너편 산자락을 한바퀴 더 돌고 나오는 버스에 앉아 있는다. 과학관 옆 공원을 지날 때, 어느 자전거를 탄 아저시가 버스기사에게 음료수 한 병을 건넨다. 오늘 쉬는 기사님이란다. 저 친구, 살을 더 빼야 하는데, 걱정이예요. 연신 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자전거를 끌고 천천히 오르막길을 걸어 오는 아저시를 뒤로 하고 버스는 큰길 쪽으로 다시 나온다. 기사님, 이젠 아카시아 냄새가 다 없어졋네요. 그러게요, 그래도, 난 이 동네 쪽으로 올 때가 제일 기분 좋아요...양봉업자들이 꿀통을 놓앗더니, 올해는 꿀 좀 얻엇나 모르겟네요...
큰길에서 다시 한 정거장 올라 오면 종점. 버스 기사님은 우리 골목에 머리를 디밀고 회차하기 직전에 나를 먼저 내려 준다. 아마, 조금이라도 덜 걷게 해주려는 배려이리라...나도 60대. 노인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기사님, 미안하지만, 제가 눈이 너무 나ㅂ빠서 그러니, 저 병원 옆 부동산 전화 번호 좀 봐 주시겟어요? 부탁했더니, 나, 그럴 시간 없어요, 퉁명스럽게 소리치던 그 기사도 요즘 안보인다. 어느 날은, 전날밤, 과음이 아직 안풀렷던가, 아침부터 운전대에 머리를 박고 피곤에 젖어 잇다가 신경질적으로 부르릉 떠나더니, 어디 더 좋은 데라도 취직해 갔을까? 아니면, 어떤 답답한 승객과 말싸움이라도 난 끝에 홧김에 무작정 운전대를 던져 버렷을까? 아무튼, 그런 성급하고 여유없는 양반은 이 동네 버스기사로는 맞지가 않다...ㅎ
한 30분즘이라도 연습할 틈도 없이, 플륫 샘에게 한 시간 렛슨을 받는다. 내내 숨이 짧고 손가락이 흔들린다. 한 2년을 쉬는 사이, 내 끝 두 손가락은 영 힘이 더 없어져서 컴퓨터 자판도 쌍기역이니 쌍씨옷을 잘 치지 못하지 않는가? 호흡법도 다시 연습해야 할 일이다. 곡이랄 것도 없이 짧디 짧아서, 예전엔 몇 번만 들으면 다 외워버릴 수 있었던, 곡들을 몇 마디도 외울 수가 없다. 샘에게 그냥, 녹음만 부탁하고 렛슨을 끝낸다. 일주일이면, 설마, 저 숙제들을 연습할 시간이 잇겟지, 하면서도 또 컴부터 켠다. 손가락에 피가 나도록 바이얼린 줄을 누르며 활을 긋는 연습을 하는 그런 끈기는 태오에비에게도 없었느데, 그걸 해낸 태오에미가 새삼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 저기, 마실을 둘러 보아도 새로 올라 온 글들도 없는데, 두어 바퀴 더 돌아 보고야, 있던 반찬으로 저녁밥을 대충 먹고 침대로 들면, 5분 내로 초저녁 잠이 든다.
버릇대로, 한밤중에 깨고 보니, 그와 함께 잇었다. 여전히, 내 어릴 적 친정집앞 방천둑을 걷다가 철길을 사이에 두고 그와 내가 떨어져 걷고 있는데, 기차가 오고 있다.누가 앞서 가고 있었던지는 기억에 없다. 힘이 없는 그가 막 건너 오려고 하는 찰나에, 그가 넘어지면 어쩌나, 거리를 가늠하고 내가 먼저 그에게로 건너 갔다. 안도하며 철길을 바라보는데, 거기 내가 넘어져 잇는 장면이 머리에 스친다. 모른 척, 다시 방둑을 걷는데, 말은 없지만, 그가 내 마음을 아는 듯하다. 예전 같으면, 택도 없는 일을 내가 햇는데도, 그는 이제 받아들이는 것이다. 거기 가만히 서 잇어, 소리치지 않아도, 그의 눈빛만 보아도, 나는 감히 건너갈 꿈도 못꾸엇을 게 아닌가? 요즘 와서, 그의 카리스마 강하던 모습보다, 힘없고 약해졋던 마지막 모습들이 꿈에 보인다...
'내 마음이 들리니..그건 어떤 드라마에요?
내 마음이 누구에게 들리는 것일까?
'내 마음에 들리니...'라는 연속 방송극을 촬영한 곳이라는 평강 식물원에 갓던 이야기를 슨 미루님 방에, 이런 댓글을 섰었다. 그 날따라, 갑자기, 제주도에 갓던 그와의 마지막 여행에서, 지금 그 이름도 잊었지만, 그가 히말라야에 함께 갔던 적이 잇는 두 젊은 산악인들의 추모탑 앞에서 소주를 따루어 주며 울음을 터뜨리던 일이 생각나서 가슴이 멍멍하던 날이엇다. 그 두 달 후쯤, 그도 갔다...
마음이 마음에게 들린다는 것, 그 드라마를 본 적도 없지만,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너와 나 사이,...꿈과 실제와, 현실과 허구와 , 삶과 죽음를 초월하고 가로지르며 강물처럼 흐르는 생각들...경계와 구분도 없는 어떤 영혼 같은의 교류랄까, 순환이까...서로 부르고 화답하는...말하지 않아도, 대답하지 않아도, 아니, 맨날 거꿀잽이로 청개구리 삼신이 들어 앉은 소리만 주고 받아도...속마음이 서로 다 통하는...그런 관계에 대해서...세상은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서로 가닿지 못하는 영혼들이 외롭게 떠다니고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리려는 허무한 수작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버스 안의 그 할아버지도, 그 할머니들도, 다, 그 때 그 순간의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 잠시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어서, 그 순간 스친 생각들을 내뱉엇을 뿐, 다음에 다른 버스를 탔을 땐, 또, 서로가 했던 말을 바꾸어서 하고 잇을 지도 모른다. 우리의 말과 생각들이 항상 똑같기만 하다면, 우리가 어디 살아간다고 할 수나 잇을 것인가?
오늘은 어머니 제삿날이다. 이제 이 글 올려 놓고, 한들한들 걸어 시장에 내려 가서 마트에서 몇 가지 제수꺼리를 배달시키고, 또 한들한들, 관악산 봉우리들을 바라 보며 몇 가지 더 사들고 올라 올 지 모른다. 빈손으로 올라 오는 건 늘 허전하다는 것이, 늘상, 식구들이 먹을 거리들을 사다 나르던 주부의 오랜 습관이려니 하면서도, 순전히 맹목적인 욕심 그 자체 때문에 오는 허전함인지도 모르겟다. 음식은 늘 해오던대로 장만할 요량이다. 이제, 가을쯤엔, 큰집에도 새며느리가 들어 올 것 같으니, 나도 음식장만은 이제 그만 졸업하게 될 것 같다. 형님은 지난 해부터 교회에 나가시면서, 시부모님의 제사도 하루로 줄이고, 간소히 치르시겟단다. 제사든, 추도회든, 새아기와 함께, 형님이 마련하실 새로운 예법을 따를 예정이다. 그저,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든, 조상의 뜻을 기리고, 조신하게 지내는 삶, 결국, 그 자세를 잊지 않는 것, 그게 중요하지 않겠는가?